12·3 내란사태의 뿌리에는 검찰이 있다! [.txt]
검찰의 과도한 권력 및 부패·타락과 관련
검찰 권한 축소와 기구 조정 등 절실해
12·3 내란사태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국군통수권자가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침탈했으므로 일차적으로는 군을 지목해야 하리라. 그러나 군보다 더 깊은 바탕에 검찰의 존재가 있다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내란의 주범이 검찰총장 출신이고, 그의 대통령 당선 이후 검찰이 그와 거의 한 몸이 되어 대한민국을 ‘검찰 국가’로 만들어 왔음을 모두가 보았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에 가까운 검찰 권력과 대통령의 ‘검사스러운’ 통치 방식이 만나 피워 올린 불꽃이 바로 12·3 내란사태였다는 해석이 지나친 것일까.
‘검사의 탄생’은 검찰 개혁 문제에 관심을 지닌 이들이 ‘검찰연구모임 리셋’ 이름으로 지난해부터 모여 공부하고 토론을 벌인 결과를 77개의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법학자 오병두·한상희, 변호사 백민·백승헌·전수진, 시민단체 활동가 이재근, 풍부한 법조 취재 경험을 지닌 이춘재·정은주 기자 등 8명이 참여했다. 검찰 조직의 작동 원리와 위험한 속성, 검찰 개혁을 둘러싼 복잡한 법적 논란과 맥락을 알기 쉽게 풀어 쓴데다, 검찰 개혁 일지와 30개의 주요 검사 비리·부패 사건 개요를 부록으로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문제의 출발은 대한민국 검찰에 주어진, 기형적으로 과도한 권력에 있다. 검찰이 국가를 대리해 범죄자를 소추하고 재판의 원고로서 형사소송을 수행한다는 공소 기능은 어느 나라 검찰이건 마찬가지로 지닌다. 그러나 검사만 기소할 수 있다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 여부를 검사의 재량에 맡긴다는 기소편의주의는 한국 검찰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여지를 남긴다. 게다가 대한민국 검찰은 공소 기능에 더해 직접 수사 기능을 지님으로써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들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자신의 권력을 키워 간다. 특히 검찰총장을 꼭짓점으로 하는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찰 우두머리에게 막강한 권한을 집중시킴으로써 권력의 오남용을 불러온다.
제도와 구조에 관한 이런 설명이 추상적이라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자. 검사들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삼성 X파일’ 사건에서는 돈을 받은 전·현직 검사 7명의 이름이 드러났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수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으며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고발 사주 사건으로 기소된 검사 손준성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재판을 받던 중인 2023년 9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반대로 대통령 부인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명품백 수수 사건을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수뇌부는 2024년 5월 인사에서 ‘좌천성 승진’을 통해 수사 지휘 자리에서 배제됐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음에도 검찰은 지난 10월 핵심 관련자인 대통령 부인을 불기소(무혐의) 처분했다. 명품백 수수 의혹 역시 무혐의 처분했다. 2021년 10월에 터진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사건에는 전 검찰총장과 검사장 등이 연루되어 있지만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3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역시 검사 출신인 ‘김학의 성 뇌물 사건’에서도 첫 언론 보도 이후 검찰이 기소를 6년이나 미루는 바람에 공소시효를 넘겨 성접대 혐의에 면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밖에도 스폰서와 접대 및 향응, 공짜 주식 수령, 조직 내 성폭력 등 당연히 무거운 처벌이 따랐어야 할 검찰발 범죄에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는 사실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검찰의 오만과 타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란사태 이후 검찰이 자신들에게는 수사권도 없는 이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나섰지만, 검찰의 ‘흑역사’는 그 진의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런 검찰을 개혁할 필요성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검언 유착’이다. 검찰은 대형 범죄나 커다란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출입 기자들에게 피의 사실을 조금씩 흘리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피의자를 압박한다. 기자들은 검찰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작성하고 그 보답으로 검찰발 ‘단독’ 기사를 얻어 쓴다. 검찰과 검찰 출입 기자를 가리켜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로 설명하거나 더 나아가 “기자가 검사의 하위 파트너”라고 규정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 자신 법조 기자로 오래 일했던 이춘재 한겨레 논설위원이 검찰 기자단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이처럼 문제가 쌓여 있는 검찰을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 권한은 유지하되 수사권을 빼앗는 것, 공수처와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설립해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법, 수사와 기소 등의 권한을 검찰총장이 아닌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넘기고 그 검사장은 선거로 뽑는 등의 방안이 제시된다. 검찰의 권한 행사를 감시할 시민 참여 기구를 실효적·독립적으로 운영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 6월에 공동 집필자들이 한 대담에서 이춘재 위원은 현 정부가 “검찰의 권력 방식을 정치에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같은 대담에서 백승헌 변호사는 “(검찰 개혁의)기회는 윤석열 정부의 말기에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12·3 내란사태를 내다보기라도 한 듯 혜안이 빛나는 발언들이다.
검찰의 문제점과 개혁 필요성 얘기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검찰 정권의 민낯을 만천하에 보여준 지금이야말로 검찰 개혁의 둘도 없는 적기라 하겠다. 그러자면 국민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 양식 있는 시민들이 ‘검사의 탄생’을 꼼꼼히 읽고 검찰 개혁에 힘을 실어 주어야 제2의 12·3 내란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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