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바깥의 ‘예외 상태’를 바로잡는 폭군 축출 합법적 ‘방벌’은 탄핵뿐 [.txt]
윤석열 계엄은 정치적 위기 벗어나려는 친위 쿠데타
예외상태 아닌 것을 예외상태로 속인 기만적 범죄
내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주권자의 결단 따라야
누군가에게는 한여름 밤의 꿈이었겠지만,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한겨울 밤의 악몽이었다. 지난 3일 밤늦게 대통령의 긴급담화를 통해 선포된 비상계엄과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그리고 거의 동시에 투입된 계엄군과 경찰의 국회 무력화 시도, 신속하게 진행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가결, 이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까지 긴급하게 흘러간 시간은 불과 6시간이었다. 이후 전개되고 있는 과정은 헌법과 관련 법률의 구체적 텍스트(문구)를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헌법 제77조 제1항)
△비상계엄은 (…)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의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계엄법 제2조 제2항)
비상계엄 담화문에서 대통령이 밝힌 국회의 공직자 탄핵소추와 예산 삭감이 우리 헌법과 법률이 정한 비상계엄의 요건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뒤에 상술하겠지만, 실체적 요건은 물론 법이 정한 절차적 요건도 따르지 않았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며 위법한 이유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어떤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제1항)고 하여 국회와 정당의 기능을 무력화하려 했고, 실제 계엄군과 경찰의 물리적 국회 봉쇄 시도가 있었다. 헌법에 반하고 법률을 위배한 것을 넘어 ‘내란죄’라는 중대 범죄가 성립한다.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형법 제87조) 내란죄는 정치학적으로는 일종의 ‘쿠데타’이다. 이번 비상계엄은 이미 권력을 쥔 세력이 권력을 공고히 하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불법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친위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과 같은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은 국가비상사태와 같은 예외상태(사실)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이 허용하는 예외상태(규범)다. 즉 국가긴급권은 ‘사실로서의 예외’를 ‘규범으로서의 예외’로 극복함으로써 법치국가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가 주목한 부분은 후자인 ‘규범으로서의 예외상태’, 곧 법의 질서와 헌법의 효력이 정지된 예외상태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외형을 지닌 전체주의 체제가 정적을 억압하고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합법적 내전을 수행할 때 ‘예외상태’ 개념은 설명력을 갖는다.
아감벤은 예외상태가 법의 바깥에 있지만 법이 효력을 갖는 역설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예외상태는 법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점에서 법의 바깥에 존재하지만, 법의 힘을 통해 작동하고 결국 법의 상태를 회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역설이다.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법의 경계이자 법의 한계로서, 생명이 정치 질서에서 포섭되거나 배제되는 지점이다. 그런 배제와 포섭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권이라는 점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명제가 가능하다.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누가 주권자이고, 누가 헌법을 수호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오늘날 확립된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주권자는 오로지 국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만이 오로지 법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이유다.
법은 주권적 결단을 통해 생명을 배제하거나 포섭하는 권력의 형식이다. 법은 포섭과 배제의 테크놀로지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법적 안정성’ 또는 ‘형식적 법치국가’ 이념은 법이 자신의 체계를 유지하고 심지어 확장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이처럼 법이 그 자체로 ‘바깥(예외)’을 상정하면서 바깥을 안으로 포섭하고자 할 때 빈번하게 사용하는 형식이 ‘제재’와 ‘절차’다.
‘제재’의 형식으로 규범 바깥을 규범으로 포섭하는 대표적인 법률은 형법이다. 예컨대 형법상 내란죄의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처벌한다”(제87조)고 할 때, 이는 내란 행위라는 법의 바깥을 애초부터 금지(배제)하거나, 내란행위자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규범 바깥의 사실을 형벌이라는 법규범으로 포섭한다.
법은 ‘절차’를 통해서 규범 바깥을 규범으로 포섭하기도 한다. 다시 계엄법을 살펴보자.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이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제2조 제2항). ▶법의 바깥(예외) 상황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제2조 제5항), 선포할 때에는 그 이유, 종류,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해야 하고(제3조),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제4조 제1항). ▶대처
△계엄 상황이 평상 상태로 회복되거나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지체 없이 해제하고 이를 공고해야 하며(제11조 제1항), 이때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제11조 제2항). ▶포섭
이처럼 법의 절차는 국가긴급권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외상태를 사전과 사후적으로 합법화하고 촘촘하게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상 먼저 언급한 ‘제재’ 또한 인간의 기본권이나 법적 권리가 제한(정지)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외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외상태를 형사소송법 등의 절차법, 그리고 적법절차원칙이라는 법이념을 통해 규범적으로 합법화하고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계엄과 같은 예외상태를 국회가 사전적으로 견제하고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민주적 법치국가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헌법과 법률이 설계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렇게 법이 자신을 보호하고 회복하기 위한 장치를 늘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법을 믿고 따라야 할 조금의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문제는 2024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 국가긴급권의 행사가 위헌, 위법 그리고 범죄라는 점이다. 이번 비상계엄은 처음부터 예외상태가 아닌 것을 예외상태인 것처럼 속임으로써 오히려 법의 바깥에 자리하고 그 자체가 불법이 되었다. 만약 이번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계엄포고령의 효력이 유지됐다면, 우리는 기본권과 인권의 바깥에 놓인 채, 불법한 국가폭력에 자의적으로 노출되는 운명에 처했을지 모른다. 앞서 아감벤이 우려했던바, 모든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행히 시민들의 발 빠른 대응과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요구로 우리가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할 위험은 일시적으로 피했다. 그렇다. 일시적일 뿐이다. 1979년 10·26 사태로 시작한 비상계엄이 그해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고, 다음해인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폭력적 탄압으로 이어졌던 역사적 경험을 떠올려보자. 군사반란의 수괴이자 내란행위자인 전두환이 그해 8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비로소 쿠데타가 완료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진행 중인 내란과 쿠데타의 시간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법에 기대고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불확실한 시기에 가장 확실한 것은 법이니까. 물론 ‘악법은 법’이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우리가 불법한 국가폭력에 대해 합법적인 제도와 절차에 따라 사태를 평가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앞서 언급한 형법상 내란죄와 그에 따른 형사처벌이 있지만, 특히 고위 공직자의 헌법 침해에 대해서는 탄핵제도가 유용하다. 국민의 대표이자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탄핵제도는 헌법을 수호하는 시의적절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탄핵이야말로 법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고위 공직자의 위헌, 위법, 범죄에 대해서 이들의 법적 권한을 정지시키고 민주적 법치국가를 회복할 수 있는 주권자의 합법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반복되는 탄핵에 피로감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위헌, 위법, 범죄를 직시하지 않은 채, 그 효과인 탄핵만을 피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복의 학습을 통해 보다 성찰적이고 세련된 제도 운용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24년 비상계엄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이 숙고 끝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맹자’ 양혜왕 편에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이 옳으냐”는 질문에 맹자가 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한 사람을 일부(一夫, 하찮은 사내)라고 한다. 일개 사내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질서 있는 퇴진’의 다른 이름이 헌법 절차인 탄핵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지금 이 순간 주권자 모두가 헌법 질서에 따른 ‘폭군 방벌(放伐)’인 탄핵을 결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김대근 고려대 법학박사
법철학과 정치철학 등 기초법 전공. 차별·인권·정의 문제에 관심이 크다. 국민통합위원회 민생사기 근절 특위, 경찰청 인권위원회 및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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