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세계⑫]해산물 요리로 지역경제를 살린 릭 스타인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 반면 돼지, 소, 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 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브로콜리, 셀러리, 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 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식기와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
예전부터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했다. 그러니 영국을 여행하면서 음식을 기대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전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핀란드 요리 다음으로 영국 요리가 형편없다.”는 발언으로 양국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심지어 그 말이 화근이 되어 당시 프랑스가 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그런 영국의 남서쪽 끝머리에 자리한 작은 어촌을 세계적인 음식관광 명소로 만든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요리사 릭 스타인(Rick Stein, 1947년~)이다. 스타인은 인구가 3500명에 불과한 콘월 카운티의 패스토우에 해산물식당을 차려 그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 요리로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어업이 활성화되었으며 나아가서 영국인들의 식습관까지 바꾸어 놓았다.
스타인은 영국 남동부의 옥스퍼드셔주 처칠에서 태어나 농장에서 성장했다. 명문 기숙학교 어핑엄 스쿨을 졸업했으나 학창 시절의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10대 후반에 호텔지배인이 되기 위해 영국 교통호텔 그룹(British Transport Hotels)에서 단기교육을 받았다. 그 과정에 런던에 있는 한 계열호텔에서 보조요리사로 6개월 동안 일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18세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많은 시련을 겪어야했다. 이듬해에 호주로 가서 철도수리공으로 일했고, 도축장과 해군조선소 등을 전전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후 뉴질랜드와 멕시코를 여행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고 그런 와중에도 폭넓게 독서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생각했다.
스타인은 자신의 지난 학업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옥스퍼드대학교에 지원했고 무난히 합격했다. 호주에서 겪은 고난과 다양한 독서가 진학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옥스퍼드의 입학시험에 “풍경을 묘사하라”는 작문문제가 나왔는데 그는 철도 수리하던 시절 목격했던 미개간지의 정경을 회상하여 현장감 넘치게 기술했다. 그의 인생 체험이 녹아있는 특이한 문장력에 옥스포드는 합격점을 주었다. 대학에서 영어전공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그는 패스토우로 갔다.
그곳에서 엉뚱하게 친구와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는데, 현지 어부들과 잦은 갈등과 싸움 때문에 경찰에 의해 업장이 폐쇄되고 만다. 스타인은 파산을 피하기 위해 같은 건물에 갖고 있던 레스토랑 면허를 이용해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1975년에 스타인은 패스토우에서 만난 동갑내기 질 뉴스테드와 결혼하고 함께 ‘해산물 식당(The Seafood Restaurant)’을 개업한다. 그는 독학으로 요리를 공부했지만,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스타인은 패스토우에 넘쳐나는 신선한 식재료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요리법을 응용하여 생선요리의 신세계를 열었다. 그의 식당은 전통적인 ‘피시 앤 칩스’는 물론, ‘해산물 모둠’, ‘패스토우 랍스터’, ‘양념한 아귀 꼬리’, ‘도버 통 가자미’등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식당은 대성공이었다. 스타인이 BBC에 출연해서 자신의 요리들을 소개하자 해산물 요리 붐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영국은 물론 전 유럽에서 패스토우로 인파가 몰려왔다. 식당이 좋은 평판을 얻고 패스토우가 해산물요리 명소로 부상하자, 관광객은 미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찾아왔다. 사람들이 생선요리를 많이 찾으면서 다른 스타요리사들도 패스토우로 와 식당을 앞다투어 개업했다. 그 후 패스토우는 항상 전체 주민 숫자보다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게 되었다. 관광객이 증가하니, 식당은 물론 호텔, 쇼핑, 서비스업, 어업 등 연관 산업까지 덩달아 발전하기 시작했다. 스타인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살면서도 생선을 많이 먹지 않던 영국인들의 뿌리 깊은 식사 취향을 바꿔 놓았다. 그의 식당이 유명해지면서 콘월 지역 해산물의 값어치도 올라가기 시작했고 출하량도 크게 늘어났다. 과거에는 영국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로 수출되었는데 그즈음부터는 절반가량이 국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스타인의 작은 식당이 영국 수산업의 변화를 견인해 낸 것이다.
◇릭 스타인, 영국 최고의 요리사로 등극하다
스타인의 활동은 점점 반경을 넓혀나갔다. 그는 ‘릭 스타인의 지중해 음식기행’, ‘상하이의 맛’, ‘릭 스타인의 롱 위크엔드’, ‘베니스에서 이스탄불까지’ 등 수많은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저술한 ‘릭 스타인의 해산물요리’ 등 20여 권의 요리책은 수백만 부가 팔려나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스타인의 사업도 번창하여 패스토우는 물론 다른 지역에까지 십여 개의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요리학교, 호텔사업에까지 진출했다. 호주에도 진출하여 두 개의 식당을 열었다. 커피숍과 식품점, 선물가게도 운영한다.
그는 ‘글렌피딕 트로피’를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며 영국 최고의 요리사로 등극했다. 2003년에는 콘월의 관광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정부로부터 4등급 OBE훈장을 받았으며, 2018년에는 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3등급 CBE훈장을 수훈했다. 참고로 CBE훈장은 우리나라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손자 정의선회장도 받은 바 있다. 스타인은 2007년에 질 뉴스테드와 이혼하고 2011년에 사라 번스와 재혼했다. 이혼 후에도 뉴스테드와 사업파트너로서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스타인은 사업에도 열심이지만 사회사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빈곤계층의 젊은이들을 돕고, 어업을 육성하며 바다를 지키는 여러 비영리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스타인이 패스토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지역 사람들은 그에게 스타인과 패스토우를 합성한 ‘패스타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 스타인과 패스토우의 스토리는 지역마케팅의 성공사례로 많은 나라들의 본보기가 된다. 세계 각국은 지역경제, 특히 침체된 지방도시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태국의 ‘송크란, 물의 축제’나 캐나다 빅토리아의 ‘꽃송이 세기 축제’처럼 축제를 하는 곳도 수없이 많고,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미술관을 독특하게 건축하여 지역을 알리는 데 성공한 곳도 있다. 일본 가가와현은 ‘우동’이라는 지역음식으로, 덴마크의 오덴세는 인데르센이라는 인물로 고장을 띄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역 곳곳에서 축제를 열고 있다. 그러나 들이는 노력에 비해 큰 성취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 스타인의 경우는 그런 결과를 의도하고 시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 하나가 지역경제를 살린 희귀한 사례이다. 투자 대비 성과로 따지면 엄청난 성공신화이다. 이런 전례를 귀감으로 삼아 잘 연구하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지역 활성화를 도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의 서두에 영국음식이 맛없다고 한 언급은 이쯤에서 정정이 필요하다. 이제 영국은 더 이상 맛없는 음식의 나라가 아니다. 요즈음 런던은 세계미식의 수도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의 맥주 광고에도 출연했던 셰프 고든 램지와 미슐랭 3스타로 빛나는 그의 스승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제이미 올리버, 헤스톤 블루멘탈같은 세계적인 요리사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릭 스타인은 말할 것도 없다. 요리사가 음식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면 그 삶은 얼마나 뿌듯할까. 스타인은 올해 77세이다. 그는 2년 전에 심장수술을 했는데 여전히 활동적이며 현역에서 물러날 생각도 없는 듯하다.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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