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 계엄 사태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기사와 논조… 더 과감해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별아(소설가),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비상계엄>
-3일 밤 비상계엄 선포와 다음 날 새벽 계엄 해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부결 등 위헌적 계엄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전하는 조선일보의 톤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화 이후 40여 년 쌓아온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과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을 받는 입장에선 조선일보가 좀 더 과감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계엄 준비설’ 제기… 김민석이 맞았다>(12월 4일 자 A4면)는 과거 김 의원이 잇따라 제기한 계엄령 의혹이 명확한 증거를 대지 못해 음모론으로 치부됐지만, 이번에 그의 주장이 현실이 됐다는 내용이다. 지난 8월 당 회의에서 김 의원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준비 작전을 꺼냈을 때 조선일보는 <[社說]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9월 4일 자 A35면)을 통해 민주당과 김 의원을 비판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계엄령이 발동됐다.
-이후 <[양상훈 칼럼]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12월 5일 자 A34면)에서 주필이 공개적으로 ‘사과’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취재를 ‘업(業)’의 본질로 하는 언론사로서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복기’하고 그 결과를 독자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오보나 표절 사태가 벌어지면 경위를 취재해 그 결과를 독자에게 상세히 알려준다. 언론사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재발 방지 효과를 갖게 된다. ‘괴담’이 사실이 된 것과 관련, 두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지난 8~9월 분명히 ‘괴담’이던 계엄령이 이후 어느 시점에 현실이 됐거나, 계엄령이 이미 8~9월 시점부터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후자가 사실이라면 취재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편집국이나 논설실의 어떤 바이어스(bias·편향)로 인해 조선일보 전체가 일종의 집단 사고(group think)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국가의 미래와 민생은 모두 팽개치고 오로지 정권을 잡아 권력을 향유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 모두가 빚은 일이다. 여야 모두 소속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패거리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집단 불참한 여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날카로운 비판이 있어야 마땅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개별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정에서 이 같은 집단행동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12월 6일 자 A1·2면), <망가진 軍>(12월 7일 자 A1·5면) 등은 이번 계엄 사태에서 크게 상처받은 우리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군을 잘못 운용한 통수권자는 마땅히 비난해야 하지만, 계엄령 당일 내용도 모르고 명령에 따라 현장에 갔던 군인들이 자괴감과 트라우마를 갖지 않도록 조선일보가 보호해 주길 바란다. 군인의 명예가 너무 훼손되지 않도록 방향을 잘 잡아주면 좋겠다.
<AI 교과서>
-<AI 교과서 76종 검정 통과했는데… 국회선 ‘교과서 지위 박탈법’ 논의>(11월 30일 자 A12면)는 정부가 추진하는 AI 교과서 사업이 민주당의 반대로 지장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AI 교과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기존 방침에 비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학교장 재량에 따른 도입 방안을 ‘격하’라고 표현했다.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을 AI 교과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해석한 것인데, 다소 과한 표현이다. 정쟁의 관점보다 학생·학부모·교사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시각을 함께 다뤘어야 했다.
-우리 사회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70%를 웃도는데, OECD 국가들을 압도하는 높은 수치다. 학력 지상주의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포퓰리즘적인 국가장학금도 한몫하고 있다. <대학생 75%에 뿌리는 국가장학금>(11월 22일 자 A1면), <포퓰리즘 정책이 키우는 ‘대학 거품’>(11월 23일 자 A1면) 등이 적절히 지적했다.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외의 국가장학금 운영 방식을 함께 알아보고, 많은 국내 대기업 등에서 시행하는 자녀 학자금 지원의 문제점도 짚었으면 한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에 따른 학생들의 과격 시위와 농성 사태와 관련, 학생회 측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언동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졌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진학 연령대 학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 한계에 봉착한 대학의 문제가 가뜩이나 모집 대상에 제한이 있는 여대에 집중되면서 불거졌다는 점을 짚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공익 제보자>
-<[태평로] ‘이재명 법카’ 제보자로 산다는 것>(12월 2일 자 A35면)은 공익 제보자로 산다는 것이 고난과 위협을 무릅쓰는 일임을 잘 보여줬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답답하고 어이없는 현실 속에서 ‘승리해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 사회가 공익 제보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후속 취재와 보도가 나오면 좋겠다.
-<”결혼하길 잘했어… 우리는 잉꼬부부” 처음 75% 넘었다>(11월 18일 자 A10면)는 모처럼 접한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조사 결과라 반가웠다. 다만 결혼 만족도 상승의 요인을 가사 분담이 늘어난 것에서 찾았는데, 자기 의지에 따라 결혼 여부와 배우자를 결정한 자기 선택(self-selection) 성향이 연령이 낮을수록 강한 결과일 수도 있다.
-<’미복귀 전공의 처단’ 선포에… 사실상 멈춰버린 의료 개혁>(12월 5일 자 A12면)은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전공의를 처단 대상으로 삼은 포고령에 대한 의료계의 강한 반발과 혼란을 잘 담아냈다. 대통령이 전공의를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간 것은 의료인의 헌신과 역할을 무시하는 처사로, 의료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하는 중대한 실수다. 기사는 의료 개혁의 미래와 전공의 모집 등 실질적인 영향까지 언급해 독자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의대생 400명, 실기시험 문제 유출·유포” 경찰, 경상대 등 수사 착수>(12월 3일 자 A12면)는 실기 시험의 구조적 문제를 무시한 채 자칫 모든 의대생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처럼 일반화하는 식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 실기 시험의 핵심은 학생들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진단 과정을 통해 답을 도출하는가에 있다. 시험 시스템과 복원 문제의 학습상 맥락을 명확히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
-<뒤늦은 단죄… 의원 4년 다 누린 뒤에야 의원직 상실형>(11월 15일 자 A2면)은 윤미향 전 국회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은 것을 ‘뒤늦은 단죄’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사설에서 <6개월 전 임기 끝난 윤미향에 당선무효형, 재판 아닌 희극>이라고 했는데 ‘희극’은 굉장히 완화한 표현이다. ‘개판’이라고 해야 했다.
<성장률 1%>
-<[’성장률 1%’ 쇼크] (1) 경제, 끝없는 저성장 터널로>(11월 30일 자 A1~3면) 등 5회 연재한 기획물이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좋은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기획 의도가 좋았고, 취재도 탄탄했다. <일본 ‘제로 성장’ 30년 반도체 생산 클린룸이 상추 재배 작업장 됐다>에서 한국과 일본의 딥 팩터(deep factor)들을 비교한 표는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는 위기의 근원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입과 비슷하다. 다가오는 ‘침체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획 기사와 같은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
-<탕수육 6%, 샌드위치는 26% 인상… 無원칙 이중가격>(11월 27일 자 B1·3면)은 식당 가격과 배달앱 가격이 다르다는 것을 비판했다. 이중가격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소비자들이 이를 인식하고 소비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면 공감하지만, 업체마다 따라야 할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한다거나 이중가격 자체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같은 상품에 같은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엔 맹점이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투입된 노동 서비스 등을 모두 고려하면 사실 같은 상품이란 거의 없다.
-<기업 “20대? 경력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5060 은퇴세대와 경쟁>(11월 25일 자 A8면)에서 20대의 실업 문제를 5060 은퇴세대와 경쟁으로 표현한 것은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언급되는 현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이 주력해야 할 수출 시장은 아세안”>(11월 25일 자 B1·3면)은 세계 84국 경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코트라(KOTRA) 무역관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을 기사화했다. 아세안을 지목한 이유를 보니, 중국 수출은 미국의 대중 제재가 이어지며 떨어지고,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떨어져 세계 1·2위 시장이 매우 줄어들 것이니 다른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적인 생각으로, 수요에 기반을 둔 데이터 근거 없이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다.
<이스라엘 르포>
-<[김지원의 여기는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나하리야 르포… “헤즈볼라와 휴전했지만 폭격의 공포는 그대로”>(11월 30일 자 A1·14면)는 신선한 시도였다. 조선일보 기자가 국제적인 갈등과 역사의 현장에 출동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일본 언론과 비교해 보면 국제적인 현장 취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보다 언론 시장 규모가 훨씬 크고, 예산이나 취재 인력 면에서도 앞서는 일본 언론사들과 일대일 비교는 무리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갈등의 최전선까지 직접 나가 현장 상황을 생생히 전해준 것은 매우 돋보였다.
-<[萬物相] 딸이 된 아들>(11월 13일 자 A38면)은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적극 지지’로 바뀐 것은 성전환자인 아들이 준 충격 때문이라는 요지의 글이다. 유튜버 ‘풍자’의 아버지가 “’날 찌르고 가라’며 6시간 동안 칼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같은 예시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편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부모는 자식이 정상적 가족·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에서 ‘정상적’이라는 표현도 성 정체성 문제를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산물이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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