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韓, 문화경제적 성취에 자신감 갖고 현 혼란 신속 극복해야”

하정민 국제부 차장 2024. 12. 1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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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15년 취재한 팔레티 르피가로 亞특파원
2009년부터 15년간 한국을 취재해 온 세바스티앵 팔레티 프랑스 르피가로 아시아 특파원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행정부 붕괴로 모두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에 빠진 한국과 프랑스의 현 상황을 우려했다. 여론을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으로만 일관하는 각국 지도자가 전 세계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신속한 계엄 저지로 한국 민주주의의 우수성이 증명됐지만 현재의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의 지도자 모두 상대편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과 비슷한 의견에만 매몰되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자폐’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15년간 한국 사회를 속속들이 관찰해 온 세바스티앵 팔레티 기자(50)가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의 영어 대면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퇴진 거부 기자회견이 있은 12일 추가 전화 인터뷰를 갖고 현재의 한국과 프랑스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프랑스 주요 매체 기자 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한국 및 북한 관련 기사를 써 온 인물로 꼽힌다. 그 또한 “조국 프랑스, 제2의 조국처럼 느끼는 한국 모두 심각한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며 계엄 이후의 극한 갈등과 분열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1962년 이후 62년 만의 행정부 붕괴로 공공 행정이 마비되는 ‘셧다운(shutdown·정부 폐쇄)’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했다.》

두 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주의자의 득세, 반대 정파와의 대화 거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만 교류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및 확증편향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15년간 지켜본 한국의 문화경제적 성취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갖고 현 위기를 극복하라고 권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미셸 바르니에 전 프랑스 총리가 이끌었던 행정부가 붕괴된 4일,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12일 거듭 놀랐을 것 같다.

“한국과 프랑스의 지인들이 모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라고 한다. 두 나라의 공통점이 많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돌파구를 무리하게 찾으려다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 기존에 누적됐던 갈등이 ‘예산’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점, 두 나라 모두 지도자에 대한 퇴진 요구가 심상치 않다는 점 등이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고 보나.

“내가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다만 프랑스 상황을 들려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의사결정권자들이 바로잡을 기회가 많았는데도 잘못된 결정을 거듭했다.

프랑스에서는 6월 말∼7월 초 조기총선이 치러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 전부터 그가 속한 집권 연합 ‘앙상블’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선거를 강행했다. 총선에서 범여권이 2위에 그쳤는데도 1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 3위를 차지한 극우 국민연합(RN) 및 연대 세력과 협력하지 않았다. 1, 3당이 모두 반대하는데도 우파 성향의 바르니에 전 총리를 발탁했다. 민심을 무시한 것이다.

바르니에 전 총리 역시 좌파와 극우가 모두 반대하는데도 공공지출 감축을 골자로 한 2025년 예산안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한 좌파와 극우가 합심해 총리 불신임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고 총리 사퇴를 포함한 행정부 붕괴가 있었다. 현재로선 새 총리가 언제 취임할지 알 수 없다. 위기를 타개할 적절한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또 있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마크롱 대통령 또한 “2027년 5월까지의 임기를 지키겠다”며 퇴진 요구를 거부했다. 새 총리 또한 좌파나 극우 진영에서 찾지 않고 바르니에 전 총리와 비슷한 우파 성향 인물을 발탁하겠다며 굽히지 않는다. 재판을 받고 있는 야권 지도자가 ‘대통령 사임, 조기 대선 실시’를 요구한다는 점도 같다. 마린 르펜 전 RN 대표는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배정된 당 자금을 보좌진 급여 등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달 검찰은 ‘징역 5년,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구형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5개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치인을 포함한 의사결정권자들은 왜 잘못된 결정을 거듭할까.

“‘나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이 같은 반향실 효과와 확증편향의 단점을 극대화했다. 곳곳에서 음모론을 외치는 선동가 또한 난무한다. 의사결정권자가 정치적 자폐 상태에 빠지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정치인들이 일부 극단주의 세력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각국 중산층이 큰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한순간 빈곤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크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중산층의 불안감을 이용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시키며 ‘이게 다 저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식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내각제로의 개헌 등 이참에 정치 체제를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제도 변경은 ‘마법’이 아니다. 특정 제도가 현실을 모두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분열이 심한 상황에서 다른 제도로 바꾸는 과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탓하지만 자신 또한 그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세계 민주주의가 동반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곳곳에서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으로 ‘지구는 둥글다’ 같은 ‘단순한 사실(basic fact)’에 대해서조차 여러 세력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 또한 고조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언론인은 현재를 기록하는 역사학자라고 생각한다. 진실과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인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현 상황을 방치하면 인권, 자유 같은 인류의 기본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가치는 가졌을 때보다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5년간 겪은 한국은 어떤 곳인가.

“한국에서 근무한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이 ‘왜 가느냐’고 했다. 지금은 누구나 ‘멋지다. 나도 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긍정적이나 정작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선은 부정적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젊은 층은 ‘헬조선’ 같은 말을 쓰며 한국을 떠나겠다고 한다.

한국인은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반드시 자신이 남보다 한 등급은 위에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유례 없는 동료 집단의 압박과 눈치 보기, 스트레스 등이 이에 기인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이 이뤄낸 문화경제적 성취는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Z세대(Gen-Z)’에 한국의 소프트파워(soft power)는 매우 강력하다. 서구 젊은 층은 한국을 혁신, 새로운 트렌드의 요람으로 여긴다. 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자신감을 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두 인터뷰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광우병 시위 등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듯 했다. 2012년 접한 이 전 대통령은 솔직담백한 사람이었다. 15년 전보다 정치 혼란이 훨씬 심해진 지금 많은 한국인 또한 그가 세계 금융위기 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당시의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좋았다며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한 해 뒤 프랑스 방문을 앞둔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처음에는 인터뷰 답변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등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감안할 때 그가 걸어온 삶의 경로가 일반인의 삶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북한이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전체의 긴장도 격화하고 있다.

“북한은 제한적 지원만 해주는 중국에 불만이 많았고 미덥지 못하다고 여겼다. 이에 ‘새 스폰서’로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일종의 ‘위험 감수자(risk-taker)’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이 상당히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고 여길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더 밀착할 것으로 본다.”

세바스티앵 팔레티 佛 르피가로 아시아 특파원
19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유럽연합(EU) 정책결정학을 전공했다. 2009년부터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서울, 중국 베이징 및 상하이 등에서 근무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두 사람을 모두 인터뷰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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