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이 취임 1년…‘불평등한 개혁’에 더 가난해진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 211%서 166%로 떨어져…국가재정 흑자로
상반기 빈곤율 53%까지 치솟고 ‘증오정치’ 피로감 커져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아웃사이더 후보였던 하비에르 밀레이(사진)가 전기톱을 들어올렸다. 그는 좌파 정부의 ‘퍼주기’가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며 쓸모없는 정부 보조금을 전부 도려내겠다고 약속했다. 극심한 경제난에 지친 시민들은 밀레이표 ‘전기톱 개혁’에 열렬히 호응했다. 그해 11월 정계 입문 3년 차 ‘극우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밀레이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끝낼 것이란 기대를 업고 지난해 12월10일 임기를 시작한 지 1년여가 흘렀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정부 복지예산 삭감, 공공기관 민영화 등 공약을 숨 고를 틈 없이 밀어붙였다. 18개였던 정부 부처를 8개로 줄였고, 2만4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해고했다. 이어 각종 연금과 의료서비스 등 사회보장 정책을 축소했다.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건설 노동자 약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부는 “국가를 건 도박”으로 평가할 정도로 극단적인 개혁이었다.
이 같은 밀레이 대통령의 ‘충격 요법’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일단 최우선 과제로 꼽혔던 물가 안정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많다. 1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12월 211.4%(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11월 166.0%까지 떨어졌다. 현지 경제분석가 이그나시오 라바키는 “인플레이션은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하락했다”며 “이는 밀레이 대통령이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는 가장 큰 기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밀레이 대통령 취임 전부터 누적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AP통신은 짚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공부문 지출을 대폭 줄이면서 ‘만년 적자’였던 국가 재정도 16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밀레이 대통령 취임 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4%선이었던 재정 적자가 올해 상반기엔 0.2%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고강도 긴축을 통한 재정 흑자 달성은 빈곤층을 양산했다. 대중교통 지원금 등 일상과 밀접한 보조금마저 사라지면서 올해 상반기 빈곤율은 53%까지 치솟았다. 이는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치로, 지난해 하반기 빈곤율(42%)과 비교해도 크게 늘었다. 또 소비지출이 지난해보다 20% 줄어들면서 경기 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 지지율에서도 ‘불평등한 개혁’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아 갤럽이 발표한 조사를 보면 지지율은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 집단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59%를 기록했지만, 소득 하위 20% 집단에선 지지율이 39%까지 떨어졌다.
이에 밀레이 대통령의 고강도 경제개혁이 일부 취약계층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싱크탱크 ‘CELAG’의 알프레도 세라노 만실라 대표는 “(밀레이 정부 개혁안은) 구조적인 경제 회복이 아니며, 유효 기간이 매우 짧은 모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자신의 개혁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야당과 비판자들을 적대시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4월 공립대학 예산 문제를 두고 일어난 정부와 학교 측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가가 계속 오르는데도 밀레이 정부가 공립대학 예산 동결 계획을 발표하자, 학생과 교사들은 ‘사실상 예산을 삭감한 것’이라고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일부 대학에선 촛불만 켜고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저항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반발이 커지자 상원은 예산 수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밀레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그는 공립대학이 “좌파 급진주의자들의 본거지”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벌인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UBA)에는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자신의 개혁안 추진을 방해하는 법안은 모두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은 온갖 막말과 폭언을 일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임기 초반 밀레이 대통령이 발표한 1000여개 법령 개정안이 여소야대 의회에서 가로막히자, 그는 의회가 “쥐들의 소굴”이라고 비난했다. 정부 출범 50일 만에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대량 해고, 파업권 제한 등 조치에 반발한 총파업이 일어났을 때는 노동조합을 “사기꾼”이라고 싸잡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밀레이 대통령의 ‘증오정치’가 시민들의 피로감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현지 매체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전했다. 여론조사업체 주반 코르도바가 지난 9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 65.7%가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후 “증오와 편협함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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