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직후 ‘호외’ 발행 인상적…독자로서 감사드린다”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12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정연우 위원장(세명대 명예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김봉신(여론조사기업 메타보이스(주) 부대표), 김소리(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 김지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정은숙(도서출판 마음산책 대표),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박은정 위원(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구혜영 정치부문장이 함께했다.
독자위원들은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경향신문이 호외를 발행해 사태의 엄중함과 향후 파장을 신속히 알린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의 칼럼 <윤 정권 퇴진 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는 탄핵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차분하게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와 배우 정우성씨의 비혼 출산 문제를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시킨 보도가 돋보였다는 의견도 많았다. 일부 독자위원들은 현안에 대한 정부·여당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책임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광고면의 기자 바이라인이 붙은 기사가 독자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부적절한 편집이라는 충고도 있었다.
■김지원 = <오세아니아서 만난 지속가능한 농업>을 흥미롭게 봤다. 인터뷰와 현장조사를 통해 실제 적용방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11월14일자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 인터뷰 기사는 전통문화 계승, 젊은 세대 소통 등 두 가지 주제를 풍부하게 다뤘다. 그러나 기술 활용 과정의 부작용 같은 우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전 관장의 고민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11월14일자 <재택근무 일상인 유튜브 스태프…재판부 “단톡방 대화도 노동”>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확장시킨 중요한 판결을 시의성 있게 보도한 기사였다. 평소 국제면의 ‘시스루피플’ 시리즈를 꼼꼼히 챙겨본다. 11월19일자 <포르투갈 ‘평화 혁명’ 상징 설레스트 카에이루 별세>는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신변을 같이 담아 읽을거리가 풍부했지만 대부분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 아쉬웠다. 11월20일자 <“대만 민주주의…중국 압박에도 지켜낼 것”> 기사는 대만의 결단력,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하는 의지가 인상 깊었다. 11월26일자 <“작년 교제폭력에 스러진 우리를 기억하라”…192켤레의 외침>은 교제폭력에 대한 문제 인식을 높이는 의미 있는 기사였다. 함께 보도한 <15년째 교제살인 피해자 숫자 기록…“정부, 정확한 통계 안 내고 구조적 성차별 외면”>은 자원활동가들이 15년간 ‘분노의 게이지’라는 보고서를 내고 있는데도 정부 무관심으로 이어가기 힘들다는 내용이다. 다만 보고서의 중요성과 왜 기록이 의미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졌다. 활동가들이 기록해온 성과를 강조했다면 보고서 가치를 좀 더 높이 평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소리 =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관련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11월23일자 <동덕여대 학생들은 묻는다, 지금 여기서 ‘여대란 무엇인가’>(주간경향)가 돋보였다. 여대의 사회적 의미, 존립 이유를 짚으면서 특히 여대에 재학 중인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통해 성평등에 대한 존재적 고민을 제기했다. 온라인판 12월3일자 <소통으로 교육 본분 지킨 광주여대, 동덕여대와 달랐다>도 시위가 법적 갈등으로 치닫지 않고 잘 해결된 사례를 보여준 기사였다. 몽골 출신 이주 청년 강태완씨 사망 사건을 다룬 11월13일자 <작업대에 끼여 부서진 몽골 이주 청년의 ‘꿈’> 기사도 눈여겨봤다. 최근 화성 아리셀 참사 등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 이슈를 심층보도해 주길 바란다. 배우 정우성씨 비혼 출산 이슈와 관련해 11월26일자 사설 <늘어나는 비혼 출산,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온라인판 11월29일자 <‘다양한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 등 다양한 기사들이 있었다. 가십으로 소비될 뻔한 이슈였는데 비혼 출산, 가족구성권, 다양한 가족 형태 등 중요한 의제를 다뤄서 인상 깊었다. 우여곡절 끝에 상담사로 채용된 지적장애 3급 정인선씨 인터뷰(12월2일자)나 성소수자 중에서도 덜 가시화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 <트랜스젠더 청년 3인의 이야기> 기획(11월18일자)도 주요한 기사였다. 크루나 소모임이 연애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규칙을 만들고 제지하는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 11월29일자 매거진L <크루시대 각종 금지 규정에 담긴 천태만상>도 잘 몰랐던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이승환 = 11월8일자 <보이스피싱 미끼 담은 국제문자 전송 485억 범죄수익> 기사는 6개 업체가 문자 28억건을 보내 챙긴 이익을 다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는지 추적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11월5일자 <‘누구나 가입’ 온라인노조 출범> 기사를 보며 플랫폼 형식의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신선했는데 일반 노조와 같은 힘이 생길 것인지에 대해 보완했으면 더 알찬 내용이었을 것 같다. 11월25일자 사진기사 <“거주사실확인서 발급” 망루 세운 구룡마을 주민들>은 왜 우리 사회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방식을 택해야만 듣는 척을 하는지, 안타까운 현실을 사진으로 잘 표현했다. ‘사장님의 기후’ 시리즈는 글로벌 탄소 규제에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어려워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고, 이후 온실가스 배출·기후협약과 불투명해진 기후공시를 다뤄 환경 문제에 집중한 점이 시선을 끌었다. 동덕여대 시위 관련한 기사가 많았는데, 여대 존립 근거가 페미니즘 이슈로만 접근할 문제인가 싶었다. 많은 대학이 사라지는 등 현실은 냉정한데, 다른 문제로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11월18일자 <세입자 보호 위해 만든 ‘전세금 보증보험’이 되레 전세시장 위협?>은 부동산을 잘 다루지 않는 경향신문이 해당 문제점을 충실하게 잘 정리한 기사였다. 11월12일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의 칼럼 <윤 정권 퇴진 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는 탄핵 사유와 탄핵 이후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잘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계엄 당일 호외 발행에 독자로서 감사드린다.
■김봉신 = 비상계엄 호외가 인상적이었다. 시민들 심경, 정치권 입장, 향후 파장 등 4개 면을 짧은 시간에 어떻게 구성했을까 싶을 정도로 흐름을 잘 잡았다. 11월22일자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소장 칼럼 <민주당의 안일한 원전 실용론>, 12월2일자 <가상자산 과세도 유예…또 물러선 민주당> 등 야당 행보를 질책하는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조세정의 원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12월2일자 유정훈 변호사 칼럼 <푸른 잎과 빨간 단풍과 하얀 눈>에선 미국에서 올해 추가되는 발전 용량의 약 58%가 태양광 발전이라고 언급한 대목을 통해 우리가 뒤처졌음을 알 수 있었다. 12월2일자 ‘여적’ <통계도 안 잡히는 ‘이주노동자 죽음’>은 이주노동자들은 죽어야 기사가 나오는 현실을 잘 짚었다. 명태균씨 관련 의혹을 단계별로 짚어나가는 흐름이 좋았다. 12월4일자 <김건희 근처도 못 간 명태균 수사, 검찰 존립 걸렸다> 사설은 본질에 잘 접근했다. 그러나 온라인판 11월15일자 <강혜경 “김건희, ‘준석아’ 할 정도로 이준석과 친하게 지내”>는 가십성이 짙어 아쉬웠다. 12월4일자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의 칼럼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에서 대한민국이 총체적인 마비 상태인 걸 잘 지적했는데, (칼럼 작성 시점에서) 곧바로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 놀랐다. 미국 대선 관련해서 초박빙 예측이 빗나간 여론조사를 비판하는 건 적절했지만, 많은 부분이 온라인에 의존한 조사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1월 초중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오차범위 밖에서 국민의힘을 넘어섰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경향신문은 다루지 않았다. 야당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여당을 밀어낸 적이 없는 만큼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경향이 민주당에 박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정은숙 = 11월 기사 중 동덕여대, 정우성씨 등 성별 인식이 반영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 동덕여대 사안은 단순히 여대라는 공간, 개별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4년제 여자대학이 7곳인데, 여성 교육 문제까지 폭넓게 다뤄 인상적이었다. 정우성 배우의 미혼 상태 출산 문제의 경우 11월27일자 <유럽에서는 흔한 ‘비혼 출생’, 한국은 ‘정상 가족’ 벽에 막혀>를 통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닌 사회문제로 조명했다. 비혼 출생을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만 인식하고, 동거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정비되지 못한 점을 중요하게 다뤘다. 11월12일자 이종필 교수의 <유독 눈에 밟히는 연구실의 ‘성별 불평등’> 칼럼은 재미, 의미를 충족시켰다. 11월25일자 ‘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칼럼 <트럼프와 미국의 4B운동, 한국의 페미니즘>에선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 등 4B운동의 시초는 한국이고, 이런 문제가 여성 문제를 넘어 청년·사회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4B운동이 사회적 결핍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이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사려 깊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동의했다. 그 와중에 메가스터디 회장이 과거 공부를 못하는 제자를 성매매 여성에 빗대 말한 사실을 밝혔는데,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경향신문이 다루는 성차별, 청년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조상식 = 지난달 오피니언엔 정치·경제 부분이 많았다. 앞으로도 사설, 기고, 칼럼 주제가 거의 비상계엄과 탄핵 내용일 텐데 주제 배분과 다양성을 고려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고령시대에 맞춰 심리치료, 마음 챙김 쪽 외부 필진을 보강하면 좋겠다. 11월27일자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의 칼럼 <종이교과서로 회귀하는 북유럽>은 자세한 정보를 전달했지만 시기적으로 한발 늦은 내용이었다. 부산에서 열린 유엔 국제 플라스틱협약 정부 간 협상회의 관련 사설이 2개나 실렸는데 개최국의 책무성을 철저하게 다뤄서 굉장히 좋았다. 교육 쪽에선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계속 화두가 될 것이다. 교육 현장의 저항이 심하고 향후 동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어 AI 디지털 교과서 문제는 계속 보도해야 할 것 같다. 동덕여대 사태와 관련해 다른 측면이지만 여중·여고를 공학으로 바꾸는 추세를 경향신문은 다루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 입시에서 여학생들의 이익 등 여러 요인이 있으니 이런 부분도 짚어주길 기대한다.
■정연우 = 11월8일자 1면에 윤 대통령 담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이 아니라 대통령이 고개 숙인 모습을 ‘고개만 숙였다’는 제목을 달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11월11일자 사설 <사상 최저점 한·중관계, 트럼프 시대 외교균형 못 잡으면 재앙>은 저성장 국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적절히 전달했다. 지난달에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경향신문이 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심 선고를 앞두고 11월12일자 <‘100만 무죄 탄원’ 방벽 세운 민주당>, 11월13일자 <‘이재명 무죄’로 뭉치는 민주당>, 11월19일자 <민주당, 이재명 방어 총력전> 등 경향신문 보도는 민주당이 이 대표의 방탄 역할을 한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먼지떨기식 기소 등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검찰 수사의 불공정함을 지적한 11월15일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칼럼 <우리가 법원을 주목하는 까닭>, 11월28일자 김광호 논설위원 칼럼 <이재명 대표 선거법 1심의 다른 독법>은 균형점을 잡은 적절한 내용이었다. 11월18일자 <그냥 ‘쉬었음’ 청년 42만명>에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질수록 인적 자본 손실이 발생한다”는 우석진 명지대 교수의 코멘트가 나오는데 단순한 인적자원 시각이 아닌 이 청년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11월18일자 <“생존 기지촌 여성과 그 후손들 위해”>, 12월3일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칼럼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국가가 방조한 아픈 역사도 반성해야 한다는 경향신문의 시선을 명료하게 전달했다. 11월22일자 <청년 핑계 ‘포퓰리즘 감세’ 쏟아낸 한동훈>은 매우 적절한 기사다. 경향은 금융투자소득세, 가상자산 세금 부과 유예 등과 관련해 민주당만 크게 문제 삼았다. 민주당이 입장을 바꿨기 때문에 비판받을 수 있지만 주범은 정부·여당이므로 그들의 책임을 좀 더 부각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문제도 고용허가제 이후 뭐가 달라졌는지, 실제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실은 어떤지 등 기사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박은정 = 11월13일자 광고면에 특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기자 바이라인이 있는 <‘스무 살’ 지스타, 3281개 부스 역대 최대 규모> 기사가 실렸다. 바로 아래 4개 게임사의 게임 광고가 게재됐다. 매우 부적절한 편집 형태다. 11월18일자에서도 <세입자 보호 위해 만든 ‘전세금 보증보험’이 되레 전세시장 위협?> 기사 아래 ‘주목! 이곳 분양 돋보기’라는 제목을 단 3개 광고가 실렸다. 광고가 아닌 기사로 오해할 수 있는 편집이다. 11월15일자 매거진L <‘아이 성별 공개 파티’ 유난·축하 엇갈린 시선>, 11월22일자 <내 아이의 첫 화장> 내용은 공감을 살 수 있는 화젯거리이면서 고민을 던져주는 좋은 주제였다. 매거진L이 흥미를 돋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지면임을 확인시켰다. 11월15일자 김정호 수의사의 칼럼 <살아만다오 우리가 갈게>는 동물원에 대한 편견을 깨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11월15일자 <이젠 ‘수능 한파’ 대신 ‘수능 모기’?>는 시민들이 체감하는 기후변화의 현실을 시의성 있게 풀어낸 기사였다. 11월12일자 박래군 칼럼 <윤 정권 퇴진 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는 더 거세질 윤석열 정권 퇴진 요구 속 경향신문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답과 같은 글이었다. 11월22일자에는 영화 <히든페이스> 출연 배우를 인터뷰한 <순진함·욕망…흥미로운 캐릭터, 내가 더 유명했더라도 맡았을 것>이 실렸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출 연기를 한다는 배우에 대한 편견을 굳이 제목으로 뽑아야 했는지 아쉬웠다. 지역 취재 기사를 많이 보고 싶다. 아무래도 지자체 보도자료성 기사가 많은데, 지역에서도 취재를 충실히 한 기사를 많이 쓴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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