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 나라 '한강 물결'의 주역…스웨덴어 번역가 부부를 만나다 [인터뷰]
"번역된 시를 읽는 건, 비옷을 입고 샤워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영화 <패터슨>에는 번역 문학이 본 언어의 감동을 온전히 전달하는 일의 어려움을 짐작케 하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비옷을 입고 하는 샤워는, 샤워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꺼운 옷을 한 꺼풀 벗겨내듯 공고한 언어의 장벽을 허물며 세계 독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데에 성공한 부부가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을 비롯해 온 국민을 감동시킨 노벨상 강연의 스웨덴어 번역을 맡은 박옥경 번역가와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 한국학 교수 부부를 줌으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세계 무대에 처음으로 한강을 알리며 '맨부커상'을 이끌었다면, 이번 '노벨문학상'의 일등공신은 스웨덴어로 번역된 <작별하지 않는다>로 꼽힙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한림원이 스웨덴 기관인만큼, 자국 언어 번역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원래 다들 외국 나오면 애국자 되는 것 아니겠어요." 번역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박옥경 번역가는 멋쩍게 웃으며 1990년대 스웨덴 서점가의 풍경을 회고했습니다. 30년 전 학부 시절 스웨덴어 전공을 마친 후 언어의 본고장으로 오른 유학길에서 서점을 돌아볼 때마다 깊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책은 턱턱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데, 매대에서 한국 책은 단 한 권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낯선 이국의 서점에서 느낀 안타까운 마음이 자신을 번역가의 길로 인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웨덴인인 남편 칼손 교수는 한국학자. 당시 같은 학교인 스톡홀름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학부 전공시절, 한·중·일 3국 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한국이었다고 말합니다. "한국어는 매력이 많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 내용도 그렇지만, 언어 자체가 그렇습니다."
한국 사랑으로 뭉친 한국인-스웨덴인 부부가 한뜻으로 시작한 번역 일이지만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처음 스웨덴어 번역 작품을 들고 출판사 문을 두드릴 때마다 '출간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박옥경 번역가는 "지금은 거꾸로 출판사들로부터 이 책을 번역해 달라, 저 책을 번역해 달라 요청이 쇄도하는 상황, 우리도 미처 알지 못하는 젊은 한국 작가들을 미리 발굴해 번역을 요청하는 일도 많다"며 "한국 문학이 그만큼 세계 문학의 주류에 진입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강 작품만의 매력에 대해 묻자 둘 모두 입을 모아 "사용하는 언어들이 굉장히 시적이고 서정적"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사회적 억압이나 폭력, 갈등과 절망을 담은 내용이 많은데, 이를 그려내는 단어들이 워낙 아름다워 그 독특한 대비가 더 진한 감동을 유발한다"는 설명입니다. '흰색'과 '붉은색'의 모순적인 공존과 대비로 한강의 문학 세계를 집약한 엘렌 맛손 심사위원의 평과 일맥상통합니다.
올해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스웨덴에서는 연초부터 후보로 이름이 자주 오르내려, 조만간 받겠다는 생각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작가 중엔 언젠가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겠다' 정도였지, 그게 올해일 줄은 몰랐다" "굉장히 깜짝 놀랐고, 아주 기뻤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문학 작품 번역의 고충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습니다. 일반 정보지와 다르게 단어의 맥락, 뉘앙스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훨씬 많은 만큼 투자해야 하는 시간도 압도적으로 많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근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가장 자주 찾은 건 '사전'이었습니다. 국어 사전부터 스웨덴어 사전, 한국어-스웨덴어 사전까지, 번역에 들어갈 때면 온갖 사전을 섭렵하느라 분주해집니다.
"사투리, 너무 어렵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번역에서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을 묻자 칼손 교수는 '제주 방언'을 꼽았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사투리를 스웨덴 지방의 그것으로 치환해 번역한 경험도 있는데, 제주 4.3사건을 묘사한 해당 작품의 경우 사투리라는 사실 자체보다 각 표현이 품고 있는 뉘앙스나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한 단어에 깃든 여러 뜻부터 동의어, 유의어를 찾아보고, 스웨덴어 사전에서 비슷한 말을 찾아나가는 작업은 고역이면서도 보람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힘이 된 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배우자, 둘은 특히 번역이 어려운 부분은 서로 의견을 나누며 표현을 다듬어나간다고 설명하며 웃었습니다.
번역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품은 많이 드는데 번역료는 낮고, 워낙 처우가 열악해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는 번역가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특히 문학 작품의 경우 한두번 하다 다른 업을 찾아 나서는 번역가가 너무 많아 최근 폭증한 요청을 모두 소화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한강 작가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번역한 50여 명에 대해 "모든 문장마다, 문장 속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각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 바 있습니다. 높아진 세계 문학 시장에서의 위상에 걸맞는 번역가 대우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부부는 마지막으로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 수상을 정말 축하드린다"며 "특히 한국 시국이 불안정한 상황만큼 노벨상 시상식 등이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을 것 같아 아주 자랑스럽다"고 전했습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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