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원전 예산 삭감” 윤석열 주장은 거짓말…‘불법 계엄’ 정당화 시도

김규남 기자 2024. 12. 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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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원전 관련 예산 4889억원 그대로
2021년 12월29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이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본부를 방문해 건설이 중단된 상태였던 신한울원전 3, 4호기 부지를 둘러 본 뒤 발언하고 있는 모습. 울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2·3 내란사태’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의 원전 관련 예산 삭감’을 앞세워 자신의 불법 계엄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으나, 사실관계부터 대부분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깍아버렸다. 차세대 원전 개발 관련 예산은 거의 전액을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거대 야당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까지 꺼트리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동했던 자신의 계엄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원전 관련 내년도 예산(전체 24개 항목 4889억원 규모)은 모두 감액 없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는 윤 대통령의 거짓 주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체코 원전을 지원하는 사업인 ‘전력해외진출지원사업’ 예산 183억도 감액 없이 통과됐다. 윤 대통령이 “차세대 원전 개발 관련 예산”이라고 말한 것은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예산으로 풀이되는데, ‘에스엠알 제작지원센터 구축사업’ 예산 54억원과 ‘혁신형소형 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R&D)’ 예산 329억원도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혁신형소형 모듈원자로 기술개발’ 예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도 530억원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 역시 감액 없이 통과됐다.

원전 관련 사업 가운데 예산이 ‘90% 감액’된 것은, 산업부 관장 체코 원전 수출 모델인 ‘에이피알(APR)1000’과 관련없는 과기부 관장 ‘민관합작선진원자로수출기반구축사업’이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 중 하나인 차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의 기본설계 사업으로, 전체 70억원이던 예산이 “해당 사업에 대한 국민적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여야 합의에 따라 7억원으로 줄었다. 금융위원회가 관장하는 ‘원전산업성장펀드’ 사업 예산도 여야 합의에 따라 전체 400억원에서 350억원으로 50억원 감액됐는데, 이 역시 체코 원전 수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삭감 예산은 전체 원전 예산에서 미미한 규모로 주요 원전 사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특히 체코 원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내란 정당화를 위해 ‘원전 예산 삭감’을 앞세우는 것은 대국민 기만이고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액된 항목과 명세를 제대로 보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윤 대통령이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초과학 운운한 것은 어불성설이며,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고 담화를 발표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수사로 대통령이 되는 길을 닦았고, 임기 내내 원전에 과도하게 편향된 태도로 온갖 논란을 일으켜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담화를 통해 윤 대통령의 기후·환경 정책에 대한 시대착오적이고 박약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재확인 됐다”며 “주요국을 중심으로 이미 원전의 경제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양산업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찾아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 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창원/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특히 이날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도 말했는데, 신재생에너지를 국내 좌파 및 중국과 연결시키는 일부 극우 세력의 음모론이 여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원전 투자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인데, 좌파는 중국만 배불리는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려 한다’는 식의 왜곡된 인식이다. 불법 계엄 뒤 단톡방 등에선 ‘민주당은 원전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중국을 이롭게 했기 때문에 반국가세력이 맞다’는 식의 주장을 담은 ‘가짜뉴스’가 나돌았는데,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이를 쏙 빼닮은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쪽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은 내년 3월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 토마스 엘러 체코 산업부 원자력신기술 담당 국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불법 계엄과 탄핵 정국 등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해 “현재로선 계약 체결이나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 진행이 지연될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12일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야당이) 기초과학연구, 양자,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 예산도 대폭 삭감했고, 동해 가스전 시추 예산,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했다”고도 주장했다. 지난 국회 본회의에서 대왕고래 사업 예산은 505억원에서 497억원이 삭감됐고, 기초과학연구 등의 분야에서도 일부 예산이 삭감된 바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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