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군사반란에 무너진 민주화의 꿈[오늘의역사]

━

1961년 5월16일 쿠데타를 일으켜 약 18년간 독재한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이후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던 최규하는 1979년 11월10일 특별 담화를 통해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되 새 대통령은 가능한 빠른 기간 안에 민주헌법으로 개정한 후 다시 선거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야당인 신민당은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

9시간의 반란과정에서 총 3명의 군인이 숨졌다. 사망자는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다 반란군 총에 희생된 고 김오랑 소령(이후 중령 추서), 국방부 헌병중대 정선엽 병장, 수경사 33헌병대 소속 박윤관 일병 등 총 3명이다. 진압군 소속이었던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은 '전사자'로 분류돼 있지만 박윤관 일병은 '순직자'로 분류돼 있다.
숨진 군인이 반란군이었나 진압군 소속이었나가 한 때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당시 사망한 군인들이 본인 의사로 반란에 참여한 것이 아닌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

정승화 총장과 함께 서빙고 분실로 끌려간 인원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이건영 제3야전군 사령관, 문홍구 작전 본부장 등 5명이다. 장태완 소장은 소장 신분으로 강제 예편당하고 6개월간 가택 연금을 당했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을 잃기도 했다. 정병주 소장의 경우 소장 신분으로 강제 예편당하고 이후 1988년 10월에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이 났으나 차고 있던 시계가 실종될 무렵에 멈춰있어 타살 의혹이 남아있다. 김진기 준장은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조사를 받고 준장 신분으로 자진 예편했다. 전두환, 노태우가 수차례 공직을 제안했으나 모두 거부했다.
군사반란 이후 12월24일 국방부는 정 총장을 김재규와 관련한 내란방조죄로 구속 입건했다. 이밖에 이건영 중장, 장태완 소장, 정병주 소장, 문홍구 소장 등 4명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에게 돈을 받았으며 12.12 때 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조직적인 저항을 했다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은 군부뿐만이 아니라 국민도 함께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에는 대학교 방학기간과 겹쳐 큰 움직임이 없었으나 시간이 흘러 문제가 공론화가 되자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 물결이 일었다. 광주에서는 5.18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전두환은 이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하기도 했다.
박정은 기자 pje4545@mt.co.kr
Copyright © 동행미디어 시대 & sida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돈 필요 없다"… 이승환, 윤 대통령 탄핵 집회 무대 선다 - 머니S
- 김도연, 몸매 이 정도였나… 화끈한 한뼘 비키니+하의 실종 포착 - 머니S
- "아무말 없이 X꼭지 비틀어"… 선우은숙 친언니, 유영재 추행 증언 - 머니S
- "힘내세요"… '탄핵 집회' 참여자에 커피 500만원 선결제한 남성 - 머니S
- "절대 못 비켜"… 중국서 구급차 막아선 차, 환자 결국 숨져 - 머니S
- [오늘 날씨] 출근길 영하 6도 '뚝'… 강원·경북 동해안 새벽 눈·비 - 머니S
- [S리포트]"발행액 2조 줄었다" 탄핵 혼란에 연말 기업 회사채 자금조달 '한겨울' - 머니S
- TV홈쇼핑·백화점·대형마트 '납품업체 부담' 커졌다 - 머니S
- 비수기 맞나?… 제주-중국 하늘길 더 넓힌다 - 머니S
- 유임 오세철, 데뷔 이한우… '건설 빅2' 자존심 걸었다 - 머니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