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언어에 대한 믿음이 글 쓰는 동력”
“글을 쓰려면 어떤 최소한의 믿음이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돼요. 언어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54)이 11일 오후(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나투르 오크 쿨투르’ 출판사 건물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한강의 책 네 권(‘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을 스웨덴어로 출판한 곳이다. 약 45분간 진행된 간담회. 30여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한강은 전날 밤 자정 넘어서까지 시상식 연회 일정을 소화하고 이날 아침에는 스톡홀름 외곽 링케뷔 도서관을 찾아 10~15세 현지 다문화 학생들을 만났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다음 일정을 위해 곧바로 자리를 뜰 정도로 빽빽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날 성대하게 치러진 시상식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뭐라고 해야 하지… 6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아, 참 길구나’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지난 6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첫 기자회견 때보다는 한층 편안해보였고, 자주 웃었다. “많은 사람이 준비한 행사구나, 지켜보는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한강은 이날 스웨덴의 어린이 관광지 ‘유니바켄’의 평생 무료 이용권을 받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니바켄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과 관련된 작품과 캐릭터 등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 겸 어린이 테마파크.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작품 세계’를 통과하는 곳이 있거든요. 딱 세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곳을 추천받아 갔어요. 그 얘기를 유니바켄 측에서 들으셨는지 저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으로 주셨어요(웃음).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어요.”


5~12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노벨 위크(Nobel Week)’ 일정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이날 오전 학교를 찾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10살에서 15살까지 학생들이 노래도 불러주고 자신들이 쓴 시도 낭독해줬다”며 “시 쓴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여자의 열매’를 읽고 쓴 시”라고 했다. 단편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시작이 되는 소설로, 어떤 여자가 정말로 식물로 변하는 내용이다. “내가 만약 토마토가 된다면, 너무 맛이 없을 테니까, 먹지 말아 달라. 토마토 수프에 넣지 말아 달라(웃음). 이런 시를 썼더라고요. 너무 재밌었고….”
‘어두운 역사나 폭력이 반복될 때, 어떤 사람들과는 도무지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어떻게 무력감을 이기고 힘을 내는지’ 묻자 한강은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이라며 “그게 아주 미약한 믿음이라고 해도, 꼭 어떤 사회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개인적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최소한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 기울여 듣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자체나 기관 등에서 추진하는 각종 기념사업에 대해서는 “제 책을 읽어주시는 것 외에는 바라는 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저는 책 속에 모든 게 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만약에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책 속에서 뭔가를 찾는 게 더 좋다고 생각이 들어요.”
노벨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강연문을 써야 했기 때문에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며 “나의 좌표를 알게 됐다. 지금 어디쯤 있고, 어디서 출발했고, 여기까지 왔구나. 스스로 파악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 더 쓸 거예요. 당연히 여태까지 글을 썼는데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이 돼서 계속 쓰던 대로 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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