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尹, 지지층과 黨 부끄럽지 않게 탄핵·수사 임해야
무리한 계엄 지시 따라야 했던 軍 희생양 막는 노력도 필요
책임 회피 않는 당당한 자세가 상처 입힌 지지층에 대한 도리
윤석열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내는 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꾸준히 허물어 왔다. 취임하자마자 30대 당 대표에 검증되지 않은 혐의를 뒤집어 씌워 축출하며 신세대 보수를 등돌리게 했고, 대선 직전 후보 단일화를 했던 파트너를 ‘정권의 적’으로 몰면서 자신을 당선시킨 선거 연합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지난 4월 총선 때는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으로 조성된 집권당 다수 의석 전망을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2000명 대통령 담화로 이어지는 용산발 3대 악재 종합세트로 뒤엎어 버렸다. 험지 표밭을 4년 동안 갈아오면서 당선권에 들었던 여당 후보 30, 40명의 땀방울을 피눈물로 뒤바꿔 놨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해에 국민은 지칠 만큼 지쳤다. 더 이상 나빠질 게 뭐가 있겠냐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때까지는 전치 2, 3주의 경상에 불과했다. 12월 초 한밤중에 꿈인가 생시인가 눈과 의심을 의심케 하는 대통령의 계엄 포고는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하야보다는 탄핵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 믿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헌재에서 법리적으로 다퉈보겠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고 승소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청와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5대4 내지 4대5로 기각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속도 경쟁을 벌이는 국회의 탄핵과 수사기관의 구속 중 빠른 쪽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이 임명권을 행사한 수사기관보다는 정치적 동료인 국회의 탄핵 절차를 통하는 편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아 보인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했다. 김 전 장관에게 내란을 지시한 ‘수괴’ 혐의를 대통령 몫으로 비워둔 것이다.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긴급체포 혹은 영장체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침 출근길에 청취한 라디오 시사프로는 수사기관이 대통령의 인신을 확보하는 시점이 내주 초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11일 오후 현재 탄핵 소추안 표결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여당 의원은 5명이다. 가결에 필요한 8명에 바짝 다가섰고, 마음속에 결심을 굳힌 인원까지 합하면 이미 탄핵선을 넘었을지 모른다. 지난 주말 1차 표결에서 여당이 본회의장 집단퇴장으로 탄핵을 부결시키면서 “위헌적 계엄을 감싸는 것이냐”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다. 찬성표를 던질 경우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지지층의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대통령과 친윤 그룹이 “탄핵은 안 된다”고 막아선 가운데 탄핵안이 통과되면 여당은 찬성한 자와 반대한 자로 분열된다.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번 주말 2차 투표는 의원 각자의 소신대로 찬성과 반대를 표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한때 당의 어른이었던 대통령의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계엄 수사에 뛰어든 검찰, 경찰, 공수처는 ‘대통령 사냥’에 혈안이 돼 있다. 수명 다한 권력의 피냄새를 맡은 들짐승들을 보는 듯하다. 대통령 고교 선배인 김 전 국방장관은 구속을 앞둔 구치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다른 군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실현 불가능한 대통령 지시 때문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총체적 지휘 책임을 인정하는 가운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감싸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나같이 깨끗한 사람은 불체포 특권이 필요없다”고 폐지 공약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이 국회에 날아들자 단식 투쟁 끝에 동료 의원들에게 “부결시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 비루한 처신에 대한 실망감이 당내에서 30표 가까운 반란표를 부르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는 배경이 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가 걸린 갈림길에서 “역시 이재명과는 그릇이 달랐다”는 면모를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자신 때문에 상처입은 지지층과 당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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