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외계 생명

기자 2024. 12. 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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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광막한 우주에서 지적 생명이 우리 인류뿐이라면 이 얼마나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까?”라고 말했다. 과연 이 넓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지적 생명이 있을까? 현재까지 지구 밖에서 발견된 적은 없지만 많은 과학자가 생명의 출현은 우주 곳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유가 있다. 지구 생명을 출현시킨 물질적 근거에 특별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과 탄소가 중요했을 것으로 믿어지는데,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뿐 아니라 탄소도 우주에 지천이기 때문이다.

물이 기체 상태로만 존재할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여 화합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물이 고체 상태로만 존재하는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느려 화학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게 된다. 결국 물이 수증기 또는 얼음으로만 존재하는 행성에서는 생명현상에 꼭 필요한 다양한 화학반응이 적절한 속도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심별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있는 행성에서만 생명이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물론 적절한 거리는 생명 탄생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태양계에서도 지구뿐 아니라 금성도 적절한 거리에 있지만, 금성은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이어서 생명이 탄생해 유지되기 어렵다.

상당히 넓은 온도 영역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은 많은 물질을 녹일 수 있는 만능 용매에 가깝다. 또 비열이 커서 외부 온도가 빠르게 변해도 내부 온도가 천천히 변해 생명의 항상성에 도움이 된다. 물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할 때 밀도가 줄어드는 물질이라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얼음은 아래가 아닌 위부터 얼어서 많은 수중 생명은 꽁꽁 언 강물 아래 액체 상태의 물속에서 겨울을 버텨낼 수 있다. 물은 가시광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잘 투과시키는 특성도 있다. 태양이 지구로 방출하는 복사에너지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장 영역이 또 가시광선 영역이어서, 물속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이 태양 빛을 이용할 수 있다.

탄소는 바깥쪽에 네 개의 전자가 있는 독특한 원소다. 우리가 두 팔을 뻗어 연결해 강강술래를 할 수 있듯이, 탄소는 넷 중 두 전자를 양팔처럼 이용해서 이웃 탄소와 연결해 긴 사슬을 만들고, 남은 두 전자로 다른 다양한 원자와 연결해 길고 복잡한 탄소화합물을 만들어 낸다. 마찬가지로 네 개의 바깥 전자가 있는 규소에 기반한 생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규소는 탄소보다 원자의 반지름이 커서 바깥쪽 전자를 공유해 다른 원자와 결합해도 그 결합이 쉽게 깨질 수 있다. 지구에는 탄소보다 규소가 훨씬 많지만 지구 생명이 규소가 아닌 탄소에 기반한 이유다.

중심별로부터의 거리가 적절해 액체인 물이 존재하며 다양한 탄소화합물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행성이 넓은 우주에 지구만 있을 리는 없다. 아직 찾지는 못했어도 우주 여러 곳에서 생명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명의 출현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해서, 충분히 발달한 외계 문명의 발생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지구의 수십억 년 역사에서 발달한 과학을 가진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길게 잡아도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생명의 출현은 쉽지만 지적 생명의 출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외계에 지적 생명이 있다면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옳을까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지수 함수를 따라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 과학의 내재적 속성이라면, 그리고 다른 행성의 지적 생명이 위험한 존재인지 안전한 존재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면, 빠르게 먼저 발전한 외계 문명은 다른 초기 단계의 문명을 발견하는 즉시 가능한 한 빨리 소멸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극도로 발전한 문명을 이루는 시점까지는 조용히 몰래 바로 이곳 우주의 한구석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고도로 발전한 외계 문명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우리 인류가 겪고 있는 자멸적인 문명의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고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은 문명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주장이다. 내 생각은 후자에 가깝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 지적 생명과의 만남으로 그들이 어떻게 사춘기를 무사히 넘겨 평화를 이뤘는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작은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 자신의 소중한 행성의 기후를 위기의 상태로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지구인을 외계의 지적 생명은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볼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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