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에 맞선 MZ의 대답 "응원봉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다시 열린 탄핵의 문 5편
탄핵 표결 무렵 국회 지킨 사람들
지지와 응원 더해주려는 시도
8년 전 박근혜 탄핵 집회부터
12·3 내란 막으려 온 시민들
같은 MZ세대라지만 우려도 있어
집회에 온 젊은 세대는 여성이 다수
위기 다시 왔을 때 함께 뭉칠 수 있나
그날 밤 사람들은 국회를 떠나지 않았다. 또다른 누군가가 국회를 덮칠까 손수 바리게이드를 치고, 몸으로 진을 쳤다. 지금 그 자리는 또다른 시민들이 지키고 있다.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가 강한 세대라며 지적받았던 MZ세대는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으로 나와 제 목소리를 냈다. 권력층은 폭력이라는 야만적인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대한민국 시민은 '진화한 민주주의'로 맞대응했다. 그 현장에 가봤다.
# 타임라인❶ 12월 6일 밤 탄핵표결 전날=야6당이 제기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6일 저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엔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해가 지자 형형색색의 응원봉에 빛이 들어왔다. 해가 떠있을 땐 '인터뷰 요청'을 난감해했던 젊은 세대들은 무대 위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시민들이 의견을 밝히는 걸 지켜보다 취재팀의 질문에 응했다. 밤 11시가 갓 넘어갈 무렵이었다
취재팀: 윤 대통령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민 A씨(30대): "계엄은 21세기에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가족들도 함께 나오기로 했어요."
#타임라인❷ 12월 7일 탄핵표결일 새벽=그날 밤 집회가 끝났는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은 젊은 시민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지는 대부분 국회를 둘러싼 '담장'이었다. 국회에는 크게 7개의 출입문이 있다. 자정을 한참 넘긴 다음날(7일) 새벽 두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정문에서부터 차를 타고 시계 방향으로 국회 주변을 달렸다. 정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마지막 출입구인 일곱번째 문까지 모든 곳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두꺼운 패딩을 걸친 사람들은 국회 담장에 기대 있거나 바닥에 앉아있었다. 몇몇 시민은 자신이 가져온 차를 국회 문 앞에 대놓기도 했다. 누군가가 함부로 진입할 수 없도록 '시민표 바리케이드'를 세운 셈이었다. 그 바리케이드 주변에선 초록색ㆍ파란색ㆍ노란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이 박혀 있었다. 시민표 경고등이었다.
국회를 돌다가 6번 출입문 앞에서 내렸다. 막 자리를 잡은 듯한 시민 두명에게 물었다.
취재팀: 시간이 늦었습니다. 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계신가요?
공덕동 주민 B씨(30대): "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왔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잠도 안 와요. 뉴스를 보느라 잠을 이룰 수 없어요."
두 사람은 그냥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이날 최저 기온은 영하 2.5도였다. B씨가 말했다. "그냥 여기서 자려고요. 그러려고 왔어요. 밤에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다들 걱정하는데 국회 출입구 지키는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계엄은 분명 사람들에게 공포를 줬다.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계엄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목도했으니,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탄핵 표결을 앞둔 시민들은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공포'에 짓눌리지 않았다. 시민이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을 몸소 시현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왔다고 밝힌 20대 중반의 시민은 다른 이들과 둥글게 앉아 있었다. 성심당에서 사 온 빵을 나눠주며 그는 국회 출입구에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계엄령이 떨어진 날 밤 맨손으로 총을 잡는 안귀령 대변인(더불어민주당)을 봤습니다. 두려움 앞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왔습니다."
# 타임라인❸ 12월 7일 탄핵표결일 밤=다시 저녁. 탄핵 표결을 앞둔 오후 5시께. 국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심은 국민의힘에서 얼마나 많은 이탈표(탄핵찬성)가 나오느냐에 쏠렸다. 시민들은 뉴스 한토막 한토막에 귀를 세웠다.
그럴수록 응원봉이 신명나게 춤을 췄다. 가지각색의 응원봉은 '민주주의'의 장場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거기엔 젊은 세대, 특히나 여성이 많았다. 대통령이 구시대의 무기를 꺼내들었던 말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단계 더 진화한 듯했다.
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20대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막상 나와보니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놀랐어요." 그는 '전국과체중고양이연합'이란 깃발 아래에 있었다. "시위에 배후 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보수층의 발언을 조롱하기 위해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에 등장했던 '자유로운 깃발'이 이번에도 나부꼈다.
"재미있는 깃발 아래에 있으니 분위기가 밝은 것 같아요. 다른 시민들과 간식도 나눠먹는 등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 혼자서만 (계엄령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큰 소득입니다."
말 많고 논란도 많은 MZ세대. 1980~1994년생의 밀레니얼(M) 세대와 1995~2004년생을 묶은 제너레이션 Z(Generation) 세대를 포괄한 말이다. 20대 시민은 엄밀히 따지면 Z세대다. 혹자는 이들을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매몰된 세대'라고 꼬집는다. 국가와 전체주의를 혼동하고, 어른과 꼰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세대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세대론은 편견일 수 있다. 민주화 세대라 일컬어지는 586세대 중엔 '민주'와 거리가 먼 사람들도 많다. 신세대라 불렸던 X세대(1973년 중심) 가운데에도 '꼰대문화'에 절어 있는 이들이 숱하다. MZ세대가 '극한의 개인주의'라는 건 편견이다. MZ세대 상당수는 권력자의 오류를 바로잡는 자리라면 '응원봉'을 챙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12ㆍ3 내란 후 거리에 나온 MZ세대 대부분은 여성이다. 시민이 가져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MZ세대도 있지만 거리에 나오지 않는 MZ세대도 적지 않았다. MZ세대의 남성과 여성이 같은 방향을 보지 않았다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반대하던 '거리집회'가 열렸던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을 질타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던 2016년과 달라진 점이다. MZ세대의 '분화'는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다.
서울 구로구에 살고 있다고 밝힌 한 30대 초반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이 현장엔 기성세대와 MZ세대가 함께 있다. 하지만 언뜻 봐도 젊은 세대 10명 중 7명은 여성이다. 10년 뒤 20년 뒤 불행한 역사가 또 반복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미래세대를 도울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2ㆍ3 계엄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야 정치권이 '탄핵'에 동의하더라도 헌법재판소란 관문이 남아있다. 하지만 불법 계엄에 항의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MZ세대가 흔드는 응원봉의 춤사위도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MZ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긴 하지만, 모든 세대는 과제를 안고 산다. 이런 시민의 진화를 언제쯤이면 정치가 알아챌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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