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 탱크 떠올라 무서워요" 계엄 충격…'PTSD' 경고한 의사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전국민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다. 밤새 기습적으로 내려진 비상계엄과 포고령,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을 침입한 계엄군, 대통령이 탄핵 이슈에 내몰리는 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도로 위의 탱크가 떠올라 무섭다", "나라를 잃은 듯한 우울감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사람도 적잖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사상 유례없던 이번 사태에서 자칫 정신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계엄령은 쿠데타와 함께했다. 계엄령 하에서 질서가 잡혀가거나, 문제가 차곡차곡 제거되는 상황이 아니지 않았느냐"며 "따라서 이번 계엄령은 많은 국민에게 '밤에 함부로 외출하지 못하고, 도로에 탱크가 주둔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냉각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연상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란 게 최 교수의 견해다. 그는 "계엄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택시 운전사'가 각각 1000만 관객을 돌파했을 정도로 많이 봤는데, 영화 속 내용처럼 '계엄령' 하면 '쿠데타'를 연상케 하는 영화 속 내용처럼 이번 사태를 겪은 국민 상당수가 쿠데타와 내란 상황에 연상되는 공포와 불안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수준을 넘을 정도로 크고, 트라우마 반응이 이어지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외상이란 '생명이 위협받는' 정도로, 일상에서 흔한 스트레스 수준을 뛰어넘는다. △재난 △전투 상황 △납치 △살해 위협 등이 '외상'에 해당한다. 이런 외상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당시 국회의사당에 있던 사람뿐 아니라 이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일반 국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을 주축으로 해외에서 진행된 다수 연구에 따르면 미국 9·11 사건이 터졌을 때 폭격받은 건물 현장이 아니라 옆에서 목격한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다가 살아난 사람 중 PTSD가 생기지 않았는데, 이 장면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 중 PTSD가 생기는 경우도 발견됐다. 최 교수는 "꼭 사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당사자에게만 PTSD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당시엔 안전을 확보했지만)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에게도 트라우마에 가까운 반응, PTSD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계엄 사태는 이런 사건과 달리 계엄령의 통제를 받는 대상이 전체 국민이라는 점에서 여느 사건보다 광범위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내가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위협을 받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정신의학적으로 '전투 피로증' 또는 '전장 공포증'으로 빗댈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전쟁 상황에서 전장 공포증에 시달리는 한 군인이 매복지에서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나 뛰어 도망친다면 적군에게 아군의 위치가 노출돼 주변 동료들이 몰살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이에 전투 현장에선 이런 전장 공포증에 시달리는 군인에 대해 빠르게 조처해야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장 공포증 군인을 일단 후방으로 빼줘 '더는 전투상황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안심을 시켜준다(1단계). 그리고서 2박 3일간 진정제를 투여하며 증상이 나아지면 원대 복귀시킨다(2단계). 최 교수는 "이번에 충격에 빠진 국민이 집단 우울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선 초동 단계 즉, 처음에 불안·공포 상태를 잘 극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전장 공포증을 해소하는 1·2단계를 조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국민을 안심시켜주는 1단계로 '우리나라에 이런 계엄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인을 시켜주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2차 비상계엄은 없을 것"이라고 대국민 약속한 점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후 '진정제'를 투여하는 2단계로 '이 상황이 완전히 종료됐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 예로 수사를 통해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을 가려내고, 처벌하는 것이라는 것. 최 교수는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받고, 이 문제가 잘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확인해줘야 국민적 불안감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신건강의학적으로 사람에게 가장 큰 불안을 야기하는 건 '동굴의 안쪽'처럼 안쪽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상태라고 한다. 최 교수는 "이번에 실시간 생중계를 통해 현장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계엄령 선포 이후 사태에 대한 부정적인 상상을 막고 불안감을 줄여줬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사당 안팎의 생중계가 계엄령 선포 이후 불안감을 그나마 낮추는 데 도움 됐다는 얘기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수면의 질도 중요하다. 계엄 사태를 다룬 뉴스를 밤늦은 시간까지 시청하면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더 쌓일 수 있다는 것. 최 교수는 "낮에 계속 고민하고 생각한 일을 밤에 꿈꾸며 정리하기도 한다"며 "이를 위해선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질 좋은 수면을 통해 뇌를 청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했거나 당시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경우, 가족 또는 주변에 희생자가 있는 경우, 이번 계엄 사태로 받는 충격은 상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공포와 불안감이 있다면 정신건강을 다루는 전문 의료기관에서 도움받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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