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명분' 예산안 삭감, 정확한 예산 보도 많았더라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 12. 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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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도하는 YTN 방송 화면을 기자가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내란이 발생했다. 내란의 명분 중 하나는 야당의 예산안 삭감이다. 슬프게도 야당이 예산안을 삭감했다고 해서 내란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논박해야 할 때다. 그러나 더 슬프게도 정확한 보도가 부족하여 재대로 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언론이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을 정확히 보도하지 못한 이유는 국회의 예산안 심의 절차와 관행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결위는 예결소위와 예결위 전체회의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예결위 전체회의는 그냥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곳이다. 실제 정부 예산안의 증감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정부 예산안 세부사업이 논의되는 곳은 예결위 소위원회다. 예결소위에서는 상임위에서 논의된 사업과 예결위원이 미리 서면질의를 통해 논의하고자 하는 예산안을 논의한다. 예결위에 논의되는 사업은 전체 예산안 사업의 10% 정도다. 나머지 90%는 그냥 정부 원안이 국회 논의조차 없이 그대로 통과된다. 국회 예산안 심의권이 애초에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예결소위는 예결위 논의 안건 전체를 세부 사업별로 심의한다. 여야 합의된 부분은 합의 통과하고 합의가 안 되는 부분은 보류로 넘긴다. 원칙대로 하자면 보류가 된 부분만 따로 재논의를 하고 그래도 합의되지 않는 부분은 재재논의를 거듭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보통 1회독(1차 논의)을 끝내면 종종 멱살을 잡았다. 언론은 멱살잡은 이유를 반말을 해서, 또는 대통령을 모욕해서 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행을 위한 절차다. 즉, 멱살을 잡아서 파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파행을 위해 멱살을 잡는 측면도 있다. 파행이 되어야 안 보이는 곳에서 여야 예산안 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소위'의 시작이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 이후부터는 멱살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보통 1회독이 끝나면, 공식적으로 간사 간 협의체(소소위)에 넘긴다. 그리고 물밑에서 소소위 협상을 한다. 그리고 소소위 협상 전략은 대게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의 전략은 내가 가장 극단적 '무데뽀' 정신으로 무장했다는 것을 상대에 인식시키는 것이다. 준예산도 불사한다는 극단적 선언이 오간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 언사는 치킨게임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극단적 언사 뒤에도 협상이 안 되어 준예산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언론은 매년 '극적 타결' 소식을 전한다. '극적 타결'이 매년 반복된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극단적 언사와 극적 타결은 예정된 국회 예산안 처리 관행이다. 다선 의원들은 극단적 언사는 치킨게임의 전략일 뿐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국미의힘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청과 당사 강당에서 비상 대기하며 후속 조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그런데 정치관행을 모르는 대통령은 야당의 극단적 언사를 치킨게임에서의 정치적 전략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정치적 수단인 내란을 택했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과 협상이다. 타협과 협상이 어떤 정치적 관행을 통해 구현되는지 모르는 대통령의 분노가 내란의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올해는 과거와 달리 예결위를 사실상 단독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올해 예산안 논의의 핵심은 예결위 합의안이 아니라 본회의 수정안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국회의 예산안 심의 절차를 알아야 한다. 예산안 심의는 상임위 예산안 심의를 거쳐 예결위에서 재심의된다. 그래서 상임위 심사는 예비심사, 예결위 심의는 본심사라고 한다. 상임위에서 증액된 사업은 보통 예결위에서 원점(정부안)에서부터 재논의된다. 그래서 통상 상임위 증액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상임위 감액은 예결위에서 되돌릴 수가 없다. 법이 그렇다(국회법 제84조). 그래서 상임위 감액에 대해 예결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임위 재의 요청밖에 없다.

그런데 예결위가 재의하라고 해서 다시 상임위를 소집하고 재논의를 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그럼, 예비비, 특수활동비 삭감 같은 상임위 감액안은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예결위에서는 상임위 삭감을 되돌릴 수 없지만 '본회의 수정안' 형식으로는 상임위 감액도 되돌릴 수 있다. 그래서 증액 논의가 여야 이견의 핵심일 때는 예결위 소소위 논의가 중요하고, 상임위 감액 논의가 여야 이견의 핵심일 때는 국회 수정안 논의가 핵심이 된다. 즉, 올해는 어차피 예결위 통과 이후에 본회의 수정안이 국회 여야 예산안 심의의 핵심이 된다.

▲ 12월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예산안 감액안을 실제로 들여다 보자. 가장 큰 삭감 사업은 예비비 2.4조원 감액이다. 예비비는 말 그대로 국회 심의 없이 행정부가 지출할 수 있는 돈이다. 정부는 속성상 예비비가 많으면 좋고, 국회는 예산심의권 강화를 위해 예비비는 적으면 좋다. 예비비를 깎자는 국회와, 예비비를 늘리고자 하는 정부 모두 합리적 측면이 있다. 예산은 정치며, 정치는 선악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다.

둘째로 많이 삭감된 사업은 국채이자상환으로 0.5조원을 삭감했다. 이는 실제 이자지급액을 깎은 것이 아니다. 단순히 국채 금리 예측에 따른 이자비용을 재계산 한것에 불과하다. 불용액을 낮추는 효과는 있어도 실제 이자지급액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즉, 국가 운용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삭감이다.

국회감액 총 1.2조원 중, 예비비와 국채이자 감액만 전체 국회 감액의 70%가 넘는다. 특활비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감액도 상당부분이 불용을 줄이는 기술적 감액에 불과하다. 이런 기술적 감액을 정국의 주도권을 위해 여도 야도 과장하고 강조하곤 한다. 즉, 정치적 절차와 관행을 모르면 대단히 극단적인 감액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치킨게임에 임하는 전략에 불과하다. 이를 제대로 안다면, 매년 예상 못한 '극적 타결'이 이루어졌다고 같이 놀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정치적 절차와 관행에 대해 모르는 자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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