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합총서’ 해물섞박지 김치 복원한 이하연 식품명인 [마이 라이프]
이하연 봉우리김치 대표 문헌에만 존재 ‘해물섞박지’ 복원 식품명인 반열 올라/전복·굴·낙지·소라 등 해산물 듬뿍 들어가/어렵게 길거리 음식으로 시작해 강남 유명 한정식 열어/2003년부터 다양한 김치 연구 2014년 대한민국식품명인 획득/3·4대 대한민국김치협회장 6년 역임/ 매년 초중고생 1000여명 대상 ‘찾아가는 김치교실’ 열어/김치세계화·김치테마파크 건립 꿈꿔
한정식집을 운영하던 이 대표가 김치 명인에 도전한 것은 2010년쯤이다. 1809년 빙허각 이씨가 만든 ‘여성생활백과’ 규합총서를 들여다보다 그만 ‘셧박지’에 꽂히고 말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해산물김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규합총서에는 다섯 가지 김치가 등장하는데 그중 셧박지는 스태미나 음식으로 잘 알려진 낙지와 굴에 전복과 소라까지 들어가는 아주 화려한 김치로 소개돼 있어요. 그때 무릎을 탁 쳤어요. 이 김치를 복원해서 많이 알려야겠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물론 식재료만 소개돼 있고 레시피는 없었죠. 그날로 연구에 매달려 매일 별의별 방법으로 만들어 식당 손님들에게 맛을 보게 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매달린 끝에 마음에 드는 레시피가 완성됐고 2014년 명인 심사를 신청했답니다. 심사위원이 맛을 보더니 문헌에서만 보던 셧박지를 이토록 매력적인 김치로 복원했다는 사실에 감탄했고 한 번에 심사를 통과했답니다.”
“2003년부터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김치를 만들어 봤는데 확실히 조선시대 양반가 김치가 맛이 있더군요. 지금은 산업화로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김치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됐답니다.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김치를 찾고 생산자는 원가절감을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재료가 덜 들어가고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설탕 등 화학 첨가물만 많이 들어갑니다. 제가 만드는 김치는 첨가물이 전혀 없고 오로지 식재료만으로 맛을 낸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김치를 담글 때 첨가물을 전혀 안 썼는데 이를 보고 배운 거죠. 해물섞박지는 정말 일반 김치와는 맛이 달라요. 국물에 소면을 말아 먹으면 희한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명인은 50가지 김치로 전시회를 할 정도로 국내 김치 명인 중 가장 많은 김치를 만들어 선보였는데 해물섞박지 명인답게 해산물 김치를 잘 만들기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식당 단골손님들에게 가끔 내놓았다. 하지만 요즘은 재료값이 너무 비싸 판매용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교육용으로만 소량 선보인다.
명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식품회사에서 영업일을 하던 명인은 남편 유학을 뒷바라지하느라 전셋집까지 처분하는 바람에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직접 꾸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길거리 음식 장사였다. 직접 담근 김치와 질 좋은 돼지 목살을 다져서 만들었는데 ‘길거리 고급 만두’로 소문나면서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그때 잘하면 음식 장사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것저것 하다가 서울 덕성여대 앞에서 호프집 ‘한국인’을 차렸는데 단골이던 교수가 손맛이 좋으니 한정식집을 한번 차려보라고 조언을 했어요. 반신반의하며 광화문의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음식을 먹어보니 충분히 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도 있었기에 자신감을 갖고 1997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한정식집 ‘봉우리’를 오픈했는데 해산물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엄청 몰려 왔답니다.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방문했을 정도예요. 한 해 매출 30억원을 넘길 정도로 잘나갔죠.”
‘김치의 날’ 제정도 그의 작품이다. 명인은 2018년부터 6년 동안 3·4대 대한민국김치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했는데 그의 공약이 김치의 날 제정이었다. “우리나라는 김치의 종주국인데 김치의 날이 없더군요. 이에 2018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를 끊임없이 설득해 2년 만에 김치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답니다. 김치 하나하나 재료에 22가지 효능이 있다는 뜻에서 11월22일로 정했어요. 실제 2006년 미국 헬스지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스페인 올리브, 그리스 요구르트, 일본 낫토, 인도 렌틸콩과 함께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어요. 또 같이 모여서 김장하고 김치를 나누는 우리 김장문화가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답니다. 김치는 장 건강에 아주 좋아요. 김치의 유산균이 유해균을 없애고 유익균을 만들어 내죠.” 명인은 올해도 김치의 날 행사에서 다양한 김치를 직접 만들어 소개했다.
●1958년 전북 익산 출생 ●전남과학대학교 호텔조리김치발효학과-청운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졸업 ●대한민국식품명인 제58호 지정(2014년·해물섞박지) ●대한민국김치협회 부회장(2011~2017년) ●대한민국김치협회 3·4대 회장(2018~2023년) ●대한민국명인협회 이사(2017~2023년) ●농업인의 날 대통령 표창(2012년) ●김치엑스포 대상(2007년) ●주요 저서(장안에 소문난 김치명인 이하연의 명품김치·내가 담근 우리집 첫 김치·이하연의 발효음식·이하연의 한국전통김치 DVD 제작) ●대학·기업 강의(경희대·혜전대·수원여대·동원대·우송대·전남대·수원과학대·삼성전자·LG패션 등)
남양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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