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정치 얘기할 위치가 아니라고? 정치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알아서 할게. 걱정은 정말 고마워. 우리 더 나은 세상에서 살자. 그런 세상에서 우리 맘껏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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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채연이 12월 8일 팬들과의 소통 앱에서 보낸 메시지다. 시위에 나간다는 팬들에게 “다들 몸조심하고 건강 챙겨가면서 해,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라고 하자, 누군가 “정치 얘기할 위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데 답한 것이다. 한 누리꾼이 “이 시국에 뭐하냐”라고 하자 “뭐요”라고 응수하며 “제가 정치인인가요, 왜 목소리를 내요”라고 받아 친 임영웅과는 상반되는 대응이다.
“정치 이야기할 위치가 아니다”라는 말, 그리고 “제가 정치인인가요, 왜 목소리를 내요”라는 두 발언을 한 자리에 놓고 살필 필요가 있다. 임영웅이 말한대로 연예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만이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란 무엇인가? 헌법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은 누구나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우리 모두는 직업인이기 앞서 시민이고 국민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이야기하는 데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위치’를 자신의 ‘안위’로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성립 가능한 이야기겠다.
이채연 뿐 아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 출연한 배우 고민시는 SNS에 “3시”라는 집회 시간과 촛불 이모티콘을 함께 올렸다. 루셈블의 혜주는 소통 앱에 시위에 참여한 사진을 보내며 “누군가는 내가 의견을 밝히는 게 불편할 수 있겠지만 난 아이돌이기 이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난 이게 맞다고 생각해”라 말했고, 배우 박보영은 시위에 나가는 팬들에게 “봄이 올 때까지 서로 안아주고 응원하면서 잘 버텨보자”라는 응원의 말을, 배우 이주영은 시위 참여 사진을, 배우 고아성은 여의도 사진을 배경으로 “한국이 싫어서 X, 한국을 구해야 해서 O”라는 말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또렷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체로 2030 여성들이다. 그들이 들고 나온 케이팝 아이돌 응원봉이 가지각색으로 시위 현장을 물들이는 가운데, 집회 참석자뿐 아니라 이름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며 소신을 밝히는 용감한 이들 역시 그들이다. 2030 여성들의 높아진 정치 참여율, 정치 의식에 대해서는 지난 총선 때부터 2030 남성들의 우경화와 함께 여러 지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시위에 참여한 4050 남성이 아닌 2030 남성은 퀴어 비율이 높은 까닭에 “성소수자가 다수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어쩌면 2030 남성들 위주로 돌아가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이는 ‘중립 기어’라는 말에서 그들의 시대정신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들은 ‘중립’을 지키는가? 또한 의제 자체를 모르쇠 하는 것을 어째서 ‘중립’이라고 믿게 되었는가? “뭐요”, “제가 왜 목소리를 내요”라고 반문하는 91년생 임영웅을 보며,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중립 기어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12·3 친위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도 잘못했지만 민주당의 ‘방탄 국회’도 잘못했다”는 식으로 양비론을 펼치거나 침묵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옳고 그름 상황에서의 중립이 아닌, 이게 이길지 저게 이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조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 가해와 피해의 정황, 다수와 소수의 상황, 기득권과 소외계층의 계급성이 명백히 갈리는 문제에 있어 침묵, 즉 ‘중립’이란 곧 가해자, 다수, 기득권의 권리를 엄호하도록 작동된다. 거기서 중립이란 자신을 기득권에 포함시키는 전략이며, 태어나 단 한번도 ‘소수자’가 된 적 없던 젊은 남성들 스스로의 위치 인식일 것이다. 여기서 침묵을 깨는 ‘목소리 내기’란, 발언하기란 우리의 정당한 권리이자 민주사회의 논의를 진전시키는 필수적인 요소다. 자신의 목소리를 자청해서 소거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중립’이라 믿는다면, 우리는 기득권의 헤게모니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되기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뷰를 진행하며 에디터로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점은 바로 중립을,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음’을 택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홍보팀의 스탠스다. 공격으로부터 아티스트를 보호할 권리가 있는 그들의 입장 역시 백분 이해하나, 질문지의 모든 질문들에서, 콘텐츠의 기획이나 제목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빼 달라는 요청, 여성들의 연대 혹은 권리에 대해 말한 배우의 답변을 삭제해달라는 요청, 여성 외에도 성소수자, 장애인, 인종, 어떤 이슈에도 말 얹기를 자제하는 걸 넘어 목소리 자체를 지우길 택하는 요청.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예술은 세계를 반영하고 세계는 예술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공간적 맥락이 제거된 예술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할 수나 있는가? 세계와 아티스트를 유리시키려는 그 모든 요청 속에서 어떤 것이 아티스트를 지키면서도 그의 진짜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일지, 숱한 고민과 조율 끝에 인터뷰는 가까스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에겐 목소리가 있다. 입을 열어 말을 하거나, 타이핑을 해 글자를 쓰거나, 두 손으로 수어를 할 수 있다. ‘중립 기어’를 박고, 회피하고, 외면하고, 모르쇠하고, 침묵하는 건 당신을 안전한 기득권으로 편입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노예로 만드는 전략이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치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라고 되물으며 “걱정은 정말 고마워. 우리 더 나은 세상에서 살자. 그런 세상에서 우리 맘껏 사랑하자”라고 말한 스물 네 살 이채연에게,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나는 무한한 지지와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디렉터가 <GQ>, <아레나>, <씨네21>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은 격주 수요일 낮 12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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