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 유독 심하다? 뿌리깊은 美 네포티즘[Who, What, Why]

민병기 기자 2024. 12. 11. 09:2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What - 美정치 ‘족벌주의’
美정치 ‘화목한 가정’ 선전요소
패밀리 정치 부작용도 잇따라
트럼프 장남 인수위서 ‘입김’
佛대사·중동고문엔 사돈 임명
JFK, 동생 법무장관 앉혀 논란
1967년 ‘네포티즘 금지법’ 제정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잇따라 주요 요직에 친·인척을 기용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퇴임 전 차남을 사면하면서 미국 정치의 ‘족벌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족벌주의는 권력자가 자신의 친족에게 관직이나 지위, 정당하지 않은 권한을 주는 것을 뜻하는 말로 네포티즘(nepotism)이라고도 한다. 네포티즘은 조카(nephew)를 뜻하는 라틴어 네포스(nepos)에 편애(favoritism)가 합쳐진 말로, 15~16세기 교황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조카(네포스)로 위장시켜 온갖 특혜를 베풀던 관행에서 유래됐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화목한 가정, 가족과의 끈끈한 유대가 주요한 선전 요소다 보니 그 부작용으로 족벌주의 정치 행태가 꾸준히 있어 왔다. 이 때문에 1967년 공직자는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컨트롤하는 자리에 친·인척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연방법 3110조, 이른바 네포티즘금지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족벌주의’ 논란 끊이지 않은 미국 정치사(史)= 10일(현지시간)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2016년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족벌주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패밀리 정치’를 실현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인수위원회 집행위원 16명 중 4명이 가족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큰딸 이방카를 요직에 기용하려 했지만 네포티즘금지법에 따라 여의치 않자 의회 인준이 필요 없는 백악관 고문직에 임명했다. 2기 행정부에서는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트럼프가 인수위에서 활동하며 인사에 적극 개입했고 둘째 며느리 라라 트럼프가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으며 돈과 조직을 챙겼다. 이뿐 아니다. 장녀의 시아버지는 주프랑스 대사로, 차녀 티파니의 시아버지는 아랍·중동문제 담당 대통령 고문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또 주그리스 대사에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녀 킴벌리 길포일을 지명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대표적인 네포티즘의 사례이자 최초 사례로 꼽히는 인물은 부자(父子)가 모두 대통령직에 오른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6대 대통령 퀸시 애덤스다. 당시 애덤스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아들 퀸시를 프러시아 대사로 임명했다. 단 당시에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퀸시가 전임 정부인 조지 워싱턴 정부에서 네덜란드·포르투갈 대사를 지내는 등 직업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퀸시는 이후 5대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까지 지내고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논란을 빚은 사례로는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를 들 수 있다. 그는 사촌을 과테말라 대사에 임명하고 처가 친·인척을 라이프치히 영사, 뉴올리언스 세관장에 기용했다. 이들은 네포티즘으로 오른 그 자리를 자신들의 부(富)를 부정한 방식으로 축적하는 데 악용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

◇케네디 가문 때문에 만들어진 네포티즘금지법=네포티즘금지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가문인 ‘케네디가’가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는데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당시 35세에 불과했던 로버트는 장관직에 기용되기 전까지 뚜렷한 공직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사석에서 “로버트가 제대로 된 변호사가 되기 전에 실습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로버트는 이후 미국 진보 진영의 간판이 될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커졌지만 그 시작은 형의 ‘사적인 배려’ 혹은 ‘부정한 특혜’가 있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이에 존슨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1967년 네포티즘금지법을 추진했다. 케네디가 외에도 부부가 대선 후보로 잇따라 나왔던 클린턴 가문, 부자가 대통령에 오른 부시 가문 등 엘리트 정치 가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가족이나 친척이 고위 공직 경험이 있는 인물이 3분의 1가량이 될 정도로 미국에서 네포티즘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공연하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을 퇴임 직전 사면한 사례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맹비난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 때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사돈이었던 찰스 쿠슈너를 사면했다. 당시 쿠슈너는 불법 선거자금 기부, 세금 회피 등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날이던 2001년 1월 20일 마약 유통 혐의로 유죄를 받은 이복동생을 사면했다가 의회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가족의 역할은 인정하는 미국 정치=미국 정치는 부당하게 권력을 건네는 네포티즘은 배격하려 하지만 정치인에게 있어 가족의 역할은 강조한다. 우리나라 정치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 선출 때는 떨어진 경쟁자, 당내 유력 인사들과 함께 마지막 무대에 오르지만 미국에서는 부인,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이 무대를 채운다.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 때는 트럼프 당선인의 자녀와 손자·손녀가 연설에 나서 화제가 됐고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정·부통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팀 월즈 미네소타주지사의 가족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두고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인터뷰에서 “미국 정치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가족들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며 “후보가 되는 사람들의 패밀리 스토리, 가족들의 면면을 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부인들의 역할도 대체로 폭넓게 인정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부인 힐러리를 보건의료정책 개혁 태스크포스(TF) 위원장으로 기용하려 했을 때 당시 법원은 “영부인은 사실상의 공직자”라고 판단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은 일부 국무회의에 참석하기도 했고 남편 대신 순방을 가기도 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