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아낌없이 내어주던 넉넉한 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그립습니다]

2024. 12. 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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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귀국한 뒤로도 그분 댁은 마음의 고향집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해, 아이 둘을 데리고 가니 자신의 방을 내주고 그분은 작은 방에서 자던 날, 하얗고 폭신한 침구에 어린 아들 녀석이 누렇게 지도를 그려놓았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분은 호호 웃으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분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레스토랑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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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겨울철 ‘산타’ 같았던 버지니아 여사를 기리며 <하>
1986년 버지니아(오른쪽 두 번째) 여사 댁을 방문한 필자(맨 오른쪽)와 크리스마스 파티 후 찍은 사진.

우리가 귀국한 뒤로도 그분 댁은 마음의 고향집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해, 아이 둘을 데리고 가니 자신의 방을 내주고 그분은 작은 방에서 자던 날, 하얗고 폭신한 침구에 어린 아들 녀석이 누렇게 지도를 그려놓았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분은 호호 웃으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다. 아이는 별도로 마련해준 간이침대에서 재워야 했음을 나중에야 어렴풋이 짐작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그분 집을 다니며 가족같이 지냈다. 주말 아침에는 근처 팬케이크하우스에서 브런치를 즐긴 적이 있다. 어른들은 얼굴만 한 보름달 모양의 팬케이크를, 아이들은 동전 모양의 ‘달러 팬케이크’에 단풍나무 시럽과 사과잼을 발라 먹으며 얼마나 유쾌한 시간을 보냈는지…. 팬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애틋한 추억들이 몽실몽실 그분의 하얀 얼굴과 겹친다.

몇 년 후 그곳을 방문 중이었다. 그분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레스토랑으로 모셨다. 커다란 캠핑카로 우리를 스프링필드며 미시시피강으로 데리고 다니던 분이 기우뚱기우뚱 느린 오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 이미 90여 개 국가를 여행했다는 건장한 모습은 간데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릅나무 길에 있는 그분의 집으로 부축해 갔다. 따스하고 화사했던 집 안이 찬 바람이 쓸고 간 듯 허전하고 스산해 보였다.

버지니아 여사 댁에서 선물로 받은 유품 같은 꽃병.

휠체어에 앉아 말없이 잉글리시 티를 호로록호로록 마시던 그분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고르라고 했다. 자신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이라고. 이미 헐렁해진 장식장에서 나는 산호로 만든 우윳빛 화병과 세계 여행을 하며 수집한 미니 찻잔 세트 등 몇 가지를 골라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아무 생각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던 시절이었다.

얼마 후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토록 헌신적인 어른, 모든 것을 내어주던 그분이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니었을까. 푸른 잎이며 열매, 시원한 그늘을 다 내어주고 스러져 가던 분, 휠체어에 앉은 채 망연히 손을 흔들던 그분을 한 번만이라도 꼭 안아주고 왔으면…. 안타까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다만 그분이 보여준 베푸는 사랑을 내 안에 새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는 무언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느릅나무 길에 있던 이층집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때처럼 대문을 활짝 열고는 넉넉한 품으로 안아줄까, 노란 알전구도 아늑한 색으로 빛나고 있을까.

한결 맑아진 꽃병에 자애로운 버지니아 여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변명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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