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해도, 침묵해도 ‘논란’… 연예인은 ‘정치’가 무섭다
박찬욱 등 영화인‘尹파면’성명
고아성·이엘 등 집회참석 인증
SNS엔 시민들 잇단 지지 표명
이병헌·송강호·황정민·정우성
‘의사 불표명’ 스타 리스트 작성
“정치적 의사 비공개 자유 있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이에 따른 탄핵 정국 속에서 연예계도 양극으로 갈라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고 소신 발언을 하는 연예인에겐 찬사가 쇄도하는 반면, 현 상황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연예인들에게는 매서운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의견의 표출 방식은 다양하기에 ‘침묵 = 탄핵 반대’로 몰아붙이거나,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배우 문소리를 비롯해 영화인 3000여 명과 81개 관련 단체는 지난 7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을 요구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배우 고아성, 이엘, 신소율 등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최근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촬영한 고아성은 “한국이 싫어서 X, 한국을 구해야 해서 O”라는 글과 함께 여의도로 향하는 버스 사진을, 이엘은 “몸 좀 녹이고 재정비하고 다시 국회로”라며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각각 올렸다.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후에는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이 날아들었다. 평소 정치적 소신을 가감없이 드러냈던 가수 이승환은 “내란의 공범임을 자처하시는 모습 잘 보았습니다”라고 꼬집었고 배우 이천희는 “쪽팔린다 쪽팔려”라고, 남명렬은 “책을 잡고 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찌할꼬. 이것들!”이라며 분노했다. 이들의 SNS에는 지지를 표명하는 네티즌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공개적으로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스타들의 실명을 담은 ‘탄핵 정국 불참 연예인 리스트’가 돌아 논란이 됐다.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택시운전사’의 송강호, ‘서울의 봄’의 황정민과 정우성 등 굵직한 현대사를 다룬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강요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외에도 가수 임영웅과 배우 차은우는 탄핵 표결 당일 SNS에 개인적인 게시물을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임영웅에게 그의 행동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지목받은 인물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네티즌들은 “대중적 영향력이 높은 유명인인 만큼 현 상황을 더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유명인이라고 사적인 공간에서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드러낼 의무는 없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 연예계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는 건 금기시되곤 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자칫 ‘좌파 연예인’이나 ‘우파 연예인’으로 분류돼 낙인이 찍히면 향후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개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낸 몇몇 연예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거리가 늘거나 줄어드는 부침을 겪고 있다.
일례로 최근 영화인들이 성명서를 내는 과정에서 강동원, 손예진, 전지현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 몇몇 언론은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앞세워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유명 배우가 아닌 동명의 제작분야 영화인이거나 관객, 학생인 것으로 확인됐다. 각 협회 등은 “명단 외 확인되지 않은 동명이인의 감독 및 배우가 기사화되지 않도록 유의하길 바란다”고 당부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 직후 강동원, 손예진 등은 이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연예인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을 자유가 있다. 자율적인 의사 표현이 지지받듯, 자율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지지받아야 한다”면서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몇몇 대중이 ‘왜 의사를 표현하지 않냐?’고 질타하는 것 역시 각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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