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어두운 밤에도 우릴 잇는 건 언어"(종합2보)
시상식 이어 연회서 영어로 수상 소감…검은 드레스 입고 환한 미소
(스톡홀름=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학가 반열에 우뚝 섰다.
한강은 이날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았다.
한강은 시상식 후 연회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고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상식은 국왕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이어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자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해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앉았다.
한강은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 이어 네 번째로 호명됐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선 5분가량의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들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맛손은 이어 영어로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고 부르며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가운데로 향하자 장내 참석자들이 모두 기립했고, 그가 메달과 증서를 받아 들고 환한 미소를 띠며 국왕과 악수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총 1천500여명이 참석한 시상식은 스웨덴의 주요 연례행사로 꼽히는 만큼 격식을 갖춰 진행됐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었고, 시상이 이뤄질 때마다 축하 음악이 연주됐다.
한강은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며, 문학상을 받는 것은 1901년 이 상이 처음 수여된 이래 123년 만의 일이다.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을 밟은 한국인은 한강이 처음이다. 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려 김 전 대통령은 오슬로에서 상을 받았다.
시상식을 마친 뒤에는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연회가 열렸다.
오후 7시에 시작된 연회는 국왕과 총리, 스웨덴 한림원 등 수상자 선정 기관 관계자 등 1천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사 사이사이 공연이 펼쳐지며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스톡홀름에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한강은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했고, 국왕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연회를 즐겼다. 수상자는 연회에 지인을 초청할 수 있어 한국 출판사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연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서는 각 수상자의 소감 발표였다. 행사 진행자는 한국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며 소감을 청했고, 한강은 4분가량 발언했다.
연회를 중계한 스웨덴의 공영 방송사 SVT는 이날 방송 중 한강을 인터뷰한 영상을 공개했다.
한강은 이 인터뷰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과정에 대해 "모든 조각을 모으고 싶었다"며 "살해당한 사람들의 일기를 읽었고, 이는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이었다. 어떤 사람은 저나 제 가족 대신 죽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한강과 함께 물리학상 존 홉필드(91)와 제프리 힌턴(76), 생리의학상 빅터 앰브로스(70)와 게리 러브컨(72), 화학상 존 점퍼(39)와 데미스 허사비스(48), 데이비드 베이커(62)가 메달을 받았다. 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57), 사이먼 존슨(61), 제임스 로빈슨(64)이 수상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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