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수사 본격화…1997년 신군부 내란죄 판결 주목

박철홍 2024. 12.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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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 '국헌문란·폭동' 내란죄 판례 남겨
국회·선관위 장악 시도에 대한 판단 기준 제시
신군부 '통치행위론 면죄부' 무력화 판결…"쿠데타 처벌은 실천의 문제"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내란 혐의 등에 대해 최종 판단을 한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주목받고 있다.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처벌 대상이 아니다"는 신군부의 주장에 당시 대법원은 조목조목 처벌 근거를 판결문에 남겼다.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헌문란 목적의 계엄선포는 사법심사 대상"

전두환 등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등에 관한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윤관 대법원장) 상고심에서 신군부 측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는 논리로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다"며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계엄선포 요건 구비나 부당성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봤다.

그러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며 사법심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국헌문란의 목적성 증명'을 제시했다.

국헌문란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폭동과 함께 형법상 내란죄 성립의 요건이다.

신군부 판결에서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판시해 이번 국회나 선관위 장악 시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또 내란 혐의자의 폭동 행위에 대해서도 "다수인이 결합해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하면 '기수(旣遂)'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시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처벌 근거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선포함으로써 외형상 적법하였다고 하더라도,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는 절차적 적법성 외에도 범죄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기도 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과 노태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못 해" 통치행위론 넘어선 대법원 내란 판례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을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를 처벌한 과정은 이른바 '통치행위'라는 법리의 면죄부를 깨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 고발된 신군부의 내란 등 혐의 사건에 대해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995년 7월 "성공한 쿠데타(내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신군부 사건과 결이 다르지만, 해당 법리가 '통치행위' 이론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통치행위는 '국가기관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률이론이다.

즉 사법부가 행정부·입법부의 모든 행위를 사법 판단 대상으로 삼으면, 삼권분립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행정부) 등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해석이다.

과거 신군부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결국 전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신군부는 재수사받아 기소됐는데, 재판에서도 통치행위 이론은 주요 쟁점이 됐다.

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사 반란과 내란을 통한 정권 장악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쟁점에 대해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며 "(성공한 쿠데타라 하더라도) 군사 반란과 내란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해 통치행위론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12·3 비상계엄 내란 수사 본격화…역사적·사법적 초미의 관심

12·3 비상계엄 사태 내란 혐의자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어떤 결말이 날지 역사적으로나 사법적으로나 초미의 관심이다.

내란죄 성립 등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수사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섣부르게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5·18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자산인 전두환 등 신군부 내란죄 처벌 판결이 다시 한번 길을 제시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신군부 내란혐의 사건의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법 형사1부(권성 부장판사)의 판시 내용은 다시 곱씹어 볼 만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대부분의 쿠데타가 처벌되지 않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며 "쿠데타를 처벌하는 것은 법의 효력이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과 실천의 문제다"고 밝혔다.

[그래픽] '계엄수사' 공수처·검·경 수사 상황 [연합뉴스 그래픽]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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