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쿠데타 앞에서 좌고우면한 그들, 방관자인가 공조자인가
“지금 즉시 중앙당사 3층으로 모여달라.”
긴박했던 12월3일 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당 소속 의원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 국회의원은 물론 원외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투표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달려가던 순간이었다. 국회에서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한 본회의를 준비하던 시점에 국회 의석 3분의 1 이상(108석)을 가진 여당의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직선 거리 약 600m 떨어진 당사로 의원들을 소집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추경호 원내대표는 ‘12·3 쿠데타’ 직후 여러 차례 의원총회 장소를 바꿔가며 오락가락했다. 계엄 선포 30여 분 후인 밤 11시3분에는 추 원내대표 명의로 ‘즉시 국회’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10분 뒤인 밤 11시13분에는 ‘중앙당사 3층’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이후 11시37분과 11시53분에는 본회의장 옆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12월4일 0시6분에 다시 장소를 중앙당사 3층으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의원총회 장소를 국민의힘 당사로 정리한 시각은 계엄사령부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는 포고령을 발표한 지 30여 분이 지난 때였다. 헬기를 통해 무장한 계엄군 230여 명이 국회 경내로 진입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의 정치활동 금지’라는 위헌적 상황, 계엄군의 국회 난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이런 판단을 내렸다.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김상욱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는 “한동훈 당대표는 본회의장으로 모여서 (계엄을) 풀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원내대표가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못 들어가게끔 계속 헷갈리게 했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당사로 불러모은 추경호 원내대표는 정작 자신은 국회 원내대표실에 머무른 채 본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추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표결에 왜 참여하지 않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 판단으로 안 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고 중앙당사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은 50여 명으로 알려졌다(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전체 108명 중 90명). 당사에 모인 의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고 알려졌다. TV를 통해 국회 장면을 지켜보던 일부 의원은 윤 대통령과 쿠데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는 후문도 들렸다. 당사에서 대기하다 뒤늦게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왔지만 결국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안철수 의원은 “경찰들이 없는 쪽으로 담 넘어서 들어왔는데 아쉽게 표결은 끝났더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반대 당론’을 모았던 국민의힘은 12월6일 오전부터 기류가 바뀌었다. 한동훈 대표가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을 바꿨다. “계엄령 선포 당일에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 등을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하도록 지시했던 사실, 대통령이 정치인들 체포를 위해서 정보기관을 동원했던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 확인했다”라며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계엄령 반대한 장관은 두어 명 정도”
그러나 이런 흐름은 하루 만에 뒤집어졌다.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105명이 불참해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만 표결에 참석했다.
이튿날인 12월8일 한동훈 대표도 입장을 완전히 번복했다. 한 대표는 한덕수 총리와의 공동 대국민 담화에서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 국무총리와 함께 매주 1회 이상의 회동을 정례화해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자신과 한덕수 총리가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권력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권한의 이양 역시 대통령 임의로 정할 수 없는 것이다. 즉각 대통령의 직무해제가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12·3 비상계엄도 모자라서 2차 내란을 획책하고 있다. 국민 주권을 짓밟는 해괴망칙한 발언과 처사”라고 직격했다.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최측근을 제외하면 쿠데타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이들이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 또는 해제할 수 있다. 12월3일 저녁까지도 대다수 국무위원은 쿠데타 정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밤 9시쯤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먼저 모였고, 밤 10시 전후로 국무회의 개원 정족수(11명)를 겨우 넘겼다.
이 자리에서 쿠데타를 건의한 이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 다수는 계엄 선포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이 흥분 상태여서 뜻을 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2월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령에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몇 명이었느냐”라는 질문에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두어 명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대표는 12월4일 윤석열 대통령, 여당 지도부 등과의 긴급회동 자리에서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몸으로라도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12·3 쿠데타 계엄령 집행에 가담했다. 12월3일 밤 쿠데타 직후 5개 경찰기동대를 국회 주변에 배치한 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지휘 아래 밤 10시46분부터 11시6분까지 20분간 ‘돌발 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이때 많은 국회의원과 당직자가 국회 문 앞에서 출입이 가로막혔다. 이후 밤 11시6분부터 11시37분까지 31분간 국회 관계자 등은 신분 확인 후 출입을 허락했으나 포고령 발표를 확인한 이후 11시37분부터 이튿날 1시45분까지 다시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윤석열 정부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하며 경찰 내 대표적 ‘용산 라인’으로 꼽히는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12월3일 밤 ‘을호비상’ 발령을 내리려다가 취소했다. 을호비상은 치안 사태가 악화되는 등 비상 상황 시 발령하는 경찰 비상업무 체계로, 갑호비상 다음으로 높은 수준의 비상근무다. 일각에서는 서울경찰청이 경찰력을 증원해 쿠데타 사태에 개입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찰의 국회 출입 통제와 관련해 “본청(경찰청)의 지시를 받고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전 위원장 등 전현직 경찰 3명은 12월4일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부당한 계엄령 집행의 핵심 실행자로서,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했다”라는 이유다. 고발장에 적시한 혐의는 내란죄, 직권남용죄 등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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