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의 고찰, '계엄령에 반응하는 6단계'
계엄이라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휴교령이 내려진 대학 기숙사에서 계엄군에게 단체로 끌려간 기억이 생생한 분들이 있고, 광주의 기억과 학살의 증거들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된 나 같은 사람이나,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울었던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이들에게 계엄이란 단어는 군홧발과 총검, 피와 죽음을 연상케 한다. 계엄은 “군의 지배(Martial Law)”를 거짓되고 근엄하게 번역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12월3일 밤 처음 대통령이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의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 사건의 전개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안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악을 각오했지만 최악은 면한 것이다. 군홧발을 보았지만 누구도 밟히지 않았고, 총을 보았지만 총성은 들리지 않았으며, 서로 간 몸을 부딪쳤으나 그 누구도 피흘리지 않았다. 국회는 계엄 해제 요구안을 성공적으로 의결했고 군홧발은 국회에서 철수했다. 민주주의가 마침내 승리했고, 우리들은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짧았던 계엄 체제가 마치 한 편의 짤막한 소극(笑劇)처럼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그다음으로 사람들이 느낀 자연스러운 감정은 비웃음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계엄씩이나 선포하면서 그것도 제대로 준비를 못했나 하는 한심스러움 말이다. 기왕에 위헌적으로 국회를 “금지”할 것이었으면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을 참고할 수도 있었겠다. 그토록 존경한다는 이승만이 계엄을 선포한 후, 등원하던 국회의원 40여 명을 통근버스째로 견인하여 연행했던 사건 말이다. 인터넷을 수놓은 수많은 재치 있는 댓글과 밈은 초기의 긴박함이 지나간 후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금 계엄 포고령을 읽어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유신정권과 5공의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처단”이라는 말. 그것은 적어도 정부가 국민에게, 혹은 의료인이나 어떤 특정 직업군에도 직접 쓸 수는 없는 위협의 언어다. 또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이들이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어떻게 분류하는지가 궁금해진다. 우리 공동체가 지난 40년 동안 피와 땀의 대가로 얻어낸 소중하고 작은 하나의 성취, 시민적 자유, 그것이 갑자기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훼손된, 모욕받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의문투성이다. 왜 계엄이라는 옵션을 선택했고, 왜 하필 그날이었는가. 누가 언제 무슨 명령을 내렸고, 왜 아무도 막지 않았는가. 왜 계엄군을 국회로 보냈으며, 왜 그렇게 쉽고 순순히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였는가. 왜 선관위와 강원 양구군에는 그렇게 많은 병력을 보냈는가. 굳이 경기도 과천, 수원, 서울 사당동에 펼쳐져 있는 선관위 기관들에 국회보다 많은 수의 계엄군 병력을 보낸 것은 소위 지난 “부정선거”에 대한 일종의 “압수수색” 수사였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당장 답을 알 수 없으며, 앞으로의 여러 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내용들이다. 그러나 어떤 질문들은 우리가 영원히 속 시원한 답을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결정이 합리적 동기와 정교한 계산으로 이뤄지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계엄령이 발효된 12월3일 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파동을 반복해서 앓고 있다. 이 과정이 피할 수 없는 것은, 그 끝에 비로소 계엄령을 발효한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공동체로서 우리가 마침내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할 때, 두렵다고 피하지 않고, 안심된다고 안주하지 않으며, 한심하다고 용서하지 않는 정당한 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 때문에 과하지 않으며, 동기를 밝히는 일과 무관하게 우리가 그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책임은 어떤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대통령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당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5년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이나 업적, 그리고 낮은 지지율은 그의 임기를 단축할 명분이 되지 않으며, 태도, 말과 행동 또한 그를 나쁜 대통령이라 부를 이유는 될지언정 하야의 명분은 되지 않는다. 부패나 범법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불소추 특권이 있으므로 이것 또한 임기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회를 폭력으로 해산하려 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었다. 포고령으로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했고, 계엄군을 국회로 보낸 것은 국회해산권이 있던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을 이미 넘어선다. 대통령이 정당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4년 임기를 인정하지 않고 “불신임”했으니, 국회로부터 본인의 남은 임기를 인정받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나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투표(탄핵 발의)가 국회의 지극히 의무적이고 대칭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대통령은 정치의 영역에 살상무기를 들고 들어옴으로써 우리 정치 공동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했다.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의 자격을 잃었으며, 그것만으로도 우리 정치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에는 항상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치라는 일은 그런 갈등과 투쟁의 타협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정확하게 언급한 것처럼, 그 일은 예컨대, 예산의 삭감과 증액을 위한 온갖 추악한 투쟁과 갈등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정치라는 전장(戰場)이 추악하고 더럽게 보일망정 적어도 말과 절차로 싸우는 필수불가결한 곳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래도 총칼을 들고 직접 싸우는 내전(內戰)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정파간 말이 험해지고, 절차가 무너지고, 심지어 몸싸움이 일어날지언정,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에 총칼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더럽고도 신성한 공간에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살상무기를 들고 들어옴으로써 스스로 대통령의 역할(정치)을 포기하였다. 포기하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정치 공동체의 가장 큰 위협임을 보여주었다. 계엄과 함께 다가왔던 여러 감정들, 두려움, 안도, 비웃음, 분노, 의문 이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빼고 다시 보더라도, 위의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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