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교사도 못 지킨다

한겨레21 2024. 12. 11.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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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활지도 고시’가 학교 현장에 가져오는 딜레마 성찰한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2023년 7월4일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신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의 장소와 방법이 사람들에게 큰 슬픔, 분노, 충격을 안겼다. 많은 동료 교사와 시민들이 안타까운 죽음에 연대했다.

의아하게도 그 죽음은 곧장 ‘교권 추락’과 이어졌다. 주요 교사단체들은 ‘교권 강화’를 촉구했고 교육부는 그 대책으로 사건 두 달 만인 2023년 9월1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이하 ‘생활지도 고시’)를 시행했다. ‘생활지도 고시’는 “1.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불가능 2. 학생 분리 가능 3. 보호자 인계 가정학습 가능 4. 물품 분리·보관 가능 5. 생활지도 불응시 조치 가능!”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학생인권에 연대하며 모두가 존중받는 학교를 그리는 교사모임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은 학생의 권리를 박탈하고 교사의 지도·훈육 방식을 규율하는 고시 도입이 교권을 향상하기보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협소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음을 고민하고, 그 우려를 나눠왔다.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교육공동체 벗 펴냄)는 ‘생활지도 고시’의 내용과 생활지도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고시가 가져올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짚는다.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 활동하는 교사와 장애학생 부모로서 활동해온 활동가가 함께 썼다.

고시가 시행된 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기록하고, 담임교사가 벌점이 높은 아이를 분리하는 ‘상벌점제도’를 쉽게 볼 수 있다. 교실은 아이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상호 감시’의 공간이 돼버린다. 학교에는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정상/비정상’의 틀로 나누고 ‘비정상’을 낙인찍고 억압하는 문화가 자리잡는다.

학생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생활지도 고시’는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책임 전가 기제로 작동한다. 법률의 지위가 아닌 ‘고시’를 통해 학생을 통제하다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문제도 계속 제기되며 학교 현장은 ‘학생도 교사도 지키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책은 행정력을 통제에 낭비하기보다 ‘인권친화적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쓴다면 어떨지’ 대책의 방향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232쪽, 1만4천원.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압축 소멸 사회이관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8천원

대한민국은 산업화·민주화에 집중하며 전세계 유례없는 ‘압축 성장 사회’를 만들었지만, 경쟁과 성장에 과몰입한 결과로 지금은 ‘희망 소멸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실은 이해에만 골몰하는 정치인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역량도 의지도 없는 ‘정치 소멸’ 상태라는 것. “소멸을 막기 위해 정치부터 복원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투기 자본주의

피에르이브 고메즈 지음, 김진식 옮김, 민음사 펴냄, 1만8천원

투기는 탐욕의 폭발로 나타나는 병리 현상일까. 프랑스 경영학 분야 그랑제콜인 이엠리옹 교수인 저자는 투기가 “경제적 가치 창출을 합리화하는 새로운 방식”이며, “현재의 부채를 청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미래의 변화”에 대한 믿음이 금융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작동함을 설득력 있게 탐사한다.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진용선 지음, 틈새책방 펴냄, 1만9천원

시인 진용선은 커피 기록자다. 구한말 개화기부터 1980년대 이후까지 한국 커피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6개로 나눴다. 일제 강점기에 망국 이후 하와이 등의 커피 농장으로 떠난 사람들과 모던보이·모던걸문인 세 계층이 어떻게 커피를 향유했는지, 정작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은 왜 커피 불모지였는지 커피의 역사를 아카이빙한다.

피고인 김재규

김재홍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4만2천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왜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았는가. 1980년 언론자유 투쟁으로 해직당한 기자 출신 김재홍은 10·26 1심 공판 10회와 2심 공판 4회의 재판 녹음을 입수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했다. 김재규는 당시 군사법정에서 “다수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나의 가족과도 같은 각하 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박정희 살해 사건’을 다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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