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메달 손에 쥔 한강… 스톡홀름 시상식 현장 르포 [2024 노벨문학상]
“디어(Dear) 한강,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곳은 스톡홀름의 콘서트홀. 1926년 세워진 스웨덴의 이 역사적인 건물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이름이 불러졌다.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한국인 작가 이름이 불려진 건 이번이 1901년 시작된 노벨문학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강이 연단의 중심에 섰을 때 홀에 가득히 울린 웅장한 팡파르 소리는, 한강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여정과 헌신에 대한 예술적 보상이자, 한국문학사의 가장 큰 영예 중 하나로 기록될 ‘사건’이었다.
한강 작가의 이름을 호명한 이는 스웨덴한림원 종신회원이자 노벨위원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이 맡았다. 그는 노벨위원회(위원장 안데르스 올손)를 대표해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는 ‘이유’를 스웨덴 국왕과 세계 시민들에게 약 5분간 스웨덴어로 상세히 설명했다. 이 연설은 ‘노벨 스피치(Nobel Speech)로 불리며, 이를테면 노벨문학상 심사평이다. 2019년 노벨위원장에 오른 안데르스 올손이 2년, 엘렌 맛손이 다음 1년을 연설하는 등 노벨 스피치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진행 중이다.
11명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8번째로 소개된 한강은 자신에 대한 노벨 스피치가 시작되자 원고가 적힌 소책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또 맛손 심사위원은 “학살 후 쌓여 있는 시체들에서 흐르는 피는 어두워지고, 그것은 응답할 수 없으며 무시할 수도 없는 호소, 질문이 된다”면서 “흰색과 빨간색은 한강이 자신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 보는 노벨위원회의 깊이감 있는 시선으로 이해된다. 이번 노벨위원회 심사위원의 ‘노벨 스피치’는 노벨상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러면서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이제 앞으로 나와 ‘국왕 폐하’에게 노벨 메달을 받으시라”며 웃었다.
노벨 시상식에선 한강의 수상소감 연설이 없었으며, 시상식에 이어 진행되는 ‘노벨 만찬’(한국시간 11일 새벽 3시부터 약 4시간 동안 진행)에서 한강은 수상소감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노벨 메달에 새겨진 글귀는 ‘Inventas vitam iuvat excoluisse per artes’로 ‘예술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의 기쁨’이란 뜻인데,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시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노벨 재단에 따르면, 메달의 재료와 무게는 과거 ‘순금 200g’이었으나 현재는 ‘순금과 합금 185g’으로 조정됐다. 그러나 영롱한 황금빛은 그대로여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메달 지름은 66mm, 두께는 3mm 정도이며 스웨덴 조폐국에서 제작한다.
이날 한강이 입은 드레스는 철저히 비공개였다. 한강은 이날 연단에서 검은색의 끝단이 살짝 끌리는 긴 드레스를 입고 검은 구두를 신었다.
시상식 참석자들은 스톡홀름 콘서트홀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5~10분 거리인 스톡홀름 시청으로 이동한다. 올해 노벨 만찬의 참석 비용은 3600크로나(약 48만원)으로 책정됐다. 참석 인원은 1300명이며 국내 언론사도 대거 참석했다.
만찬에는 44명의 요리사가 4일 간 준비한 요리가 제공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빙 스탭만 190명이다. 서빙 직원들은 흰색 재킷과 진한 청색 견장, 은색 단추가 특징인 복장을 착용한다. 이번 만찬에 사용되는 식기와 도구들의 숫자도 놀랍다. 도자기 9240개, 유리잔 5230개, 식기류 9240개가 테이블을 가득 채워서다. 400병의 샴페인과 450병의 와인이 제공된다고도 노벨 재단은 밝혔다.
한편, 한강 작가는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을 방문하는 등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린드그랜은 한국인에게는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세계적인 동화 거장이다. 그의 이름을 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아동문학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한강 작가는 린드그린이 쓴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어린 시절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소년이 온다’와의 접점도 있다.
특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번역한 김경희 번역가가 1982년 74세인 린드그렌의 자택을 방문했던 일을 기고글에서 자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김경희 번역가가 1982년 린드그렌의 자택을 방문했으니 한강 작가의 린드그렌 자택 방문은 42년 만의 일이다.
스톡홀름 김유태 기자·서울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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