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토막내서 삼켜주마!”...괴물뱀 잡은 악어의 포효
미국의 주류 악어는 ‘앨리게이터’...크로커다일 못지 않게 흉포한 사냥꾼
악어와 뱀. 파충류 월드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두 괴수가 충돌했어요. 철갑을 두른 몸통과 무시무시한 치악력으로 도륙하는 공격 스타일의 악어와 치명적인 조임으로 혼절시킨 뒤 통째로 삼켜서 몸속에서 녹이는 뱀. 전혀 다른 공략법으로 상대방과 물러날 수 없는 일전을 벌인 혈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최근 미국 ABC7 방송국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스르르르르...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가 모니터 밖까지 들리는 듯 해요. 미시시피악어가 제 몸뚱이의 갑절이 넘는 거대한 버마비단뱀을 노획해 의기양양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일(一) 자형으로 쫙 뻗어 직선이 된 놈의 몸뚱아리가 대체 어디가 대가리고 어디가 꼬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합니다. 혼이 빠져나가 송장이 된 뱀을 끌고 가는 악어의 배 속은 벌써부터 식욕으로 요동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죽은 사체를 노획했을 가능성도 있음직하지만 스케빈저(죽은 사체를 파먹는 짐승) 습성이 낮은 악어의 식습관으로 볼 때 아무래도 기습해 혈투를 치른 뒤 사냥에 성공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능성이 작아보이기는 하지만 뱀의 습격을 역습으로 뒤집었을 공산도 조금은 있고요.
이 동영상 뒤의 장면이 어떻게 끝났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악어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어요. 그러나 용도는 끊어내기 위함이지 씹기 위함이 아닙니다. 늪지 으슥한 곳으로 뱀의 몸뚱이를 끌고 온 악어는 곧바로 이 종족 특유의 필살기인 죽음의 회전, 데스 롤(death roll)을 시작할 겁니다. 삼킬 수 있는 적당한 길이로 타격 포인트를 잡은 뒤 몸을 뱅그르르 돌릴 것입니다. 그 강력한 회전축에 이미 혼이 빠져나가 굳어져가는 뱀의 근육과 살과 뼈는 속절없이 파괴돼 끊어지겠죠. 그렇게 숭덩 숭덩 또 숭덩 여러 토막난 뱀의 몸뚱아리를 입에 넣고 바로 꿀꺽 목구멍으로 넘길 것입니다. 바위처럼 단단한 거북을 산채로 아래위 턱의 협공으로 빠가각 등껍질을 으깬 뒤 절규하는 거북의 몸을 통째로 삼키는 가공할만한 치악력을 가진 악어에게 뱀의 몸뚱아리는 한장의 감태나 한점의 솜사탕처럼 보드라울 겁니다.
이 포식현장과 이후 전개됐을 포식장면에서는 시종일관 징그럽고 잔혹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사실 미국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럽고 기특하며 뿌듯한 순간일 수도 있겠어요. 토종 생태계를 거침없이 파헤치던 괴물 뱀에게 토착 파충류가 모처럼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지요.남아메리카에 아나콘다가 있다면, 북아메리카에는 버마비단뱀이 있어요. 다자란 몸길이는 6m로 아나콘다(9m)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괴물뱀의 카리스마는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버마비단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토종이 아니라는 거예요.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감당 못한 주인들이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습지에 내다버렸어요. 악어밥이나 되라는 심정으로 버렸을 그 뱀들은 그러나 완벽하게 적응하면서 플로리다 습지의 최대 괴수로 등극합니다. 처음으로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79년이었고 2000년에 들어서야 에버글레이즈에 정착해 번식하는 것이 확인됐어요.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지 않은 지금 플로리다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 등극합니다. 도마뱀·거북·사슴.... 죄어 죽인 다음에 꾸역 꾸역 삼킬 수 있는 것은 죄다 먹어치웁니다. 무엇보다 버마비단뱀의 식단에는 에버글레이즈 토종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인 미시시피악어까지 포함돼있다는 사실이 직접 확인됐죠. 이는 절망을 넘어선 공포입니다. 1년 내내 따뜻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에버글레이즈는 악어의 천국에 이어 괴물뱀의 낙원이 됐어요. 아무리 퇴치 대책을 세운다해도 한 배에 많게는 96개까지 알을 낳는 이 거대 뱀을 퇴치하기는 늦은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버마비단뱀이 포식자가 아닌 먹잇감으로 사냥당해 혼이 빠져나간 모습이 생생하게 카메라에 포착됐으니, 지역 생태계 파수꾼들을 넘어서 미국인들이 특히 반가워하는 소식이었겠죠. 사실 악어가 버마비단뱀을 잡아먹는 장면이 포착된 것은 여러 차례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다 자란 성체 악어가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어린 비단뱀을 포식하는, 당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자칫 꿀꺽 삼켜질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악어가 포식자가 될 수도 있었던 버마비단뱀에게 승리를 거뒀으니,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언더독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강과 연못을 휘젓는 배스·블루길·황소개구리가 토종 괴물 물고기 가물치의 쩍 벌린 입속으로 빨려들어갈 때와 비슷한 벅참이 아니었을까요?
흔히 미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원주민의 토템 신앙에도 자주 등장하는 회색곰(불곰)·흑곰·들소(바이슨)와 나라새로 당장하게 대우받고 있는 흰머리수리 정도가 생각나지만 동·남부 지역의 미시시피악어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미시시피악어는 악어족 4대 분파 중 덩치와 포악함으로 부동의 ‘넘버 2’인 앨리게이터에 속하는데 줄여서 ‘게이터(gator)’라고 통칭돼요. 알려진대로 악어의 제왕은 크로커다일입니다. 아프리카의 나일악어·호주의 바다악어가 여기에 속하고, 위에서 내려봤을 때 뾰족한 주둥이, 아래위턱을 앙다물었을 때 큼지막한 이빨이 삐져나오는게 특징이요. 앨리게이터는 위에서 볼 때 둥근 주둥이, 입을 다물었을 모난돌이 정맞는듯 단정해지는 치열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순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강력한 치악력에 기반한 데스롤, 머리를 마구 흔들어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먹잇감을 산산조각내는 공포의 식습관은 크로커다일류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앨리게이터의 대표주자 미시시피악어의 동족 포식 장면을 한 번 보실까요? 동물 콘텐츠 로링어스 페이스북에 올라온 장면입니다.
미국에도 크로커다일이 없는 건 아녜요. 플로리다부터 카리브해와 접한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있는 아메리카악어가 바로 크로커다일인데, 덩치와 식성은 전형적인 악어이지만 아무래도 존재감은 앨리게이터에 밀리는 편입니다. 사는 곳이 해안지역에 국한돼있거든요. 플로리다 전지역에서 늪지를 나와 심지어 골프장이나 주택가까지 어슬렁거리는 앨리게이터에 비하면 은둔자에 가까워요. 심지어 앨리게이터는 디즈니 만화 캐릭터로도 등장해요. 2009년 개봉한 ‘공주와 개구리’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인 루이지애나 늪지에 사는 악어 ‘루이’로 등장합니다. 이 루이는 게다가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의 의인화캐릭터이기까지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커다일과 함께 앨리게이터도 종종 끔찍하고 참혹한 인명사고의 장본인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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