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 주역들 ‘반도체 기술상’ 휩쓸어

윤진호 기자 2024. 12. 1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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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의 하이닉스 이끌어

올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과 중 하나는 SK하이닉스가 만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전 세계 AI용 데이터센터에는 미국 엔비디아의 AI 가속기(AI 모델의 연산을 빠르게 하는 반도체)가 90% 이상 들어간다. 이 AI 가속기의 필수품인 HBM을 사실상 SK하이닉스가 독점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기술 개발 주역들이 올해 반도체 관련 상을 휩쓸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 설계 담당 박명재 부사장은 11일 반도체공학회가 주최하는 해동반도체공학상을 받는다. 고(故)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의 유지에 따라 제정된 것으로, 2021년부터 반도체 산업에 공을 세운 사람을 뽑아 시상하는 국내 최고 권위 반도체 상이다. HBM 개발자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다. 박 부사장뿐 아니라 HBM 미세 기술과 상용화에 기여한 이들이 국제적 권위의 상과 산업훈장을 잇따라 받았다. 단일 기업에서 이처럼 대거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픽=양인성

◇입사 8년 만에 속도 빠른 HBM3 개발 성공

HBM 시장은 최근 2년간 급성장했지만, 처음부터 주목받은 반도체는 아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HBM(1세대)을 개발했고, 2년 뒤 삼성전자가 2세대 HBM(HBM2)을 내놨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9년 SK하이닉스가 3세대 HBM(HBM2E)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필요 이상으로 속도가 빠르고 용량이 크다 보니, 기술 개발 속도에 비해 시장이 따라오지 않았다. 2010년대 업계에서 HBM 관련 조직은 ‘오지(奧地)’로 부르며 기피 대상이었다.

박명재 부사장은 사내 뉴스룸 인터뷰에서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시장 성장이 예상보다 더뎌, 비관론이 쏟아졌다”며 “하지만 최고의 제품만 개발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확신으로 밀고 나갔다”고 밝혔다. 박 부사장은 2021년 4세대 HBM(HBM3)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기술을 개발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처리 속도가 78% 빨라지면서 HBM의 성능을 질적으로 완전히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HBM3 양산을 시작하자 생성형 AI가 기술업계 판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HBM의 위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박 부사장은 “HBM3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고 했다. HBM 시장 성장성을 간과했던 경쟁사들의 기술력이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부사장은 “공격적인 기술 개발과 투자를 계속해 온 SK하이닉스가 1위 굳히기에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 첫 IEEE 전자제조기술상

성인 손톱만 한 크기의 HBM은 우수한 개발자 1~2명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메모리 반도체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고, 데이터가 원활히 전달되게 해야 한다. 고질적인 발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난제다. 성능을 높이려고 더 많은 메모리를 쌓다 보면, 휘어지는 문제도 있다. 설계부터 생산 공정까지 다양한 기술을 조화롭게 접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강욱 패키지 담당 부사장은 2019년 3세대 HBM부터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이라는 패키징(조립) 핵심 기술을 적용해 휘어짐 문제를 해결했다. 2세대 HBM에서 경쟁사에 밀리다 보니, 이를 따라잡기 위해 고심 끝에 공정 과정을 완전히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 기술은 쌓아 올린 칩 사이에 보호재를 넣은 후 전체를 한 번에 굳히는 공정이다.

기존 방식보다 열 방출이 36% 줄고, 생산성은 3배 이상 향상됐다. 이 공로로 이강욱 부사장은 지난 5월 세계 최대 공학 학술 단체인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서 전자제조기술상을 받았다. 1996년부터 전자·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는 이 상을 한국인이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HBM의 또 다른 핵심 기술인 실리콘관통전극(TSV)을 개발한 김춘환 부사장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TSV는 칩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메모리를 서로 연결하며 쌓는 기술이다. 하나의 HBM에도 많은 칩이 탑재되는데, 칩 하나하나에 나노미터 수준의 구멍 수천 개를 뚫고, 각 구멍을 선으로 모두 연결해 데이터가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김 부사장은 TSV 개발 초기였던 2008년 당시를 회상하며 “고도의 정밀성과 미세한 제어가 필요하다 보니 난도가 높았다”며 “무엇보다 생산 비용은 많이 들어가는데, 시장 수요가 적어 수익성 확보가 어려웠다는 점도 부담이었다”고 밝혔다.

반도체를 제품 형태로 패키징하고 고객 요구에 맞게 테스트하는 조직을 맡고 있는 최우진 부사장은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최 부사장은 2020년 4세대 HBM의 열 방출 설루션 개발에 성공해 제품 성능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빅테크 고객사 확보 등 HBM 시장 확대에 기여한 이상락 부사장은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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