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논란의 'AI디지털교과서' 대전서 민간에 첫 선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에서 영미권 원어민의 음성으로 "오, 왓츠 댓"(Oh, What's that)이라는 음성이 나오자 학생 역할을 맡은 관계자가 발음을 따라했다.
AIDT는 곧바로 관계자의 억양과 발음이 자연스러운지 판별하고, 원어민과 학습자의 음정 높낮이 차이를 도표로 제공했다.
10일 대전시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민간에 공개한 AIDT 고등 공통영어의 한 가지 기능이다.
시교육청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내년 새학기부터 초·중·고등학교에 도입되는 AIDT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검정 본심사에 합격한 12개 주출원사 총 76종이 전시됐다.
한 출원사 관계자는 "일상에서 원어민과 접점이 없는 학생들은 영어 발음을 교정하기 힘든데 AIDT 음성 평가를 활용하면 학생들이 알맞은 발화법을 숙지할 수 있다"며 "즉각적인 맞춤형 피드백이 제공된다는 점이 서책형 교재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출원사가 소개한 AIDT의 특장점은 이뿐 아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문제 정·오답 현황과 풀이 시간, 응시 여부, 진도 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고, 학생들은 차시별 성취도에 따라 실시간으로 문제 난이도가 조절돼 수준별 교육이 가능하다는 게 출원사의 설명이다.
이 밖에 교사가 학생들의 PC 화면을 통제하는 기능도 탑재돼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이른바 '딴짓'의 가능성도 일부 차단했다.
가령 교사가 '집중 학습 모드'를 선택하면 학생들의 화면이 특정한 학습 창으로 전환되거나 '깜깜이' 성능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화면이 암전되는 식이다.
초등 4학년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최소망(33·대전 갈마동) 씨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종이 책을 손으로 만지는 게 학습적으로 도움될 것이라 생각했다"면서도 "이번에 AIDT를 직접 확인하니 아이들 맞춤형으로 응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아직 문해력 발달 저하가 우려되는 국어 과목이 도입되지 않아 안심하긴 이르지만, 걱정했던 것보단 괜찮다"고 말했다.
이날 AIDT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지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우선 학습 도우미인 'AI 챗봇'이 사실상 개념 설명과 해석을 돕는 사전적 역할에 머무른 점이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한 출원사의 초등 수학에 접속해 챗봇에게 '1+1'의 답을 구하자 "아직은 교과서 관련 질문에 제한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수학은 정답을 기입하는 것보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학생들이 화면을 연습장 삼아 문제 풀이과정을 적더라도 교사가 원격으로 확인하는 성능은 구현되지 않았다.
다른 출원사의 AIDT를 이용하더라도 '0의 곱', '1단 곱셈구구', '1주일' 등 특정 열쇠말에 대한 뜻풀이만 제공했다.
이 같은 기술적인 한계도 문제지만 AIDT를 둘러싼 정치권의 의견 충돌, 교사 거부 등은 향후 실제 추진 여부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은 내년 새 학기부터 도입되는 AIDT의 지위를 두고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여당은 AIDT를 교과서로 인정해야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수학·영어 교과목 포기자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교육자료'로 명시해 각 학교별 자율적으로 선택·사용해야 한다고 맞서는 중이다.
여기에 AIDT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던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위기를 맞으면서 정책 지속성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주축으로 AIDT 거부 선언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전교조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의 치적 쌓기를 위해 천문학적인 공교육 재정을 투입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AIDT를 좌시할 수 없다"며 "AIDT 채택과 사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디지털 기기 과의존, 수업 방식 획일화 등을 제기해온 전교조는 "AIDT 거부 선언은 윤석열 교육정책을 전면 거부하는 첫 행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전교조 충남지부도 지난 9일 충남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충남 교사 1378명은 AI디지털교과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내년에 AIDT를 도입하겠다는 게 현재 교육부의 입장인 만큼, 대전시교육청은 교육부의 로드맵대로 차질 없이 추진토록 노력할 것"이라며 "학교 현장에 AIDT가 무사히 안착하게끔 교사 연수와 기반시설 구축 등을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로 다음 달 중 1000여 명의 지역 교사를 대상으로 한 AIDT 실물본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며 "(내년 도입되는) 영어·수학·정보 교과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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