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줄게 시장 다오"…콧대높던 中풍력, 韓에 러브콜
韓정부 '중국 싹쓸이' 막으려
공급망 기여도 등 평가 반영하자
中, 대형터빈 기술이전 약속
10㎿까지 생산 가능한 유니슨
터빈 용량 2배 늘려 기술력↑
"중국 기업 우회진출" 논란도
세계 5위 풍력발전용 터빈 제조사인 중국 밍양에너지가 국내 풍력발전 기업 유니슨과 손잡고 한국 해상풍력 시장에 뛰어든다. 국내 기업이 아직 개발하지 못한 15메가와트(㎿)급 터빈 기술을 밍양이 이전해주는 조건이다. 해외 기업이 풍력발전 핵심인 터빈 기술을 국내에 넘기는 첫 사례다.
전 세계 풍력발전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의 진입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입찰 문턱을 높이자 밍양이 핵심 기술을 넘기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밍양이 유니슨과 설립한 합작법인에 기술을 이전하더라도 여전히 한국 사업의 중심축이 될 것이란 점에서 “사실상 중국 기업의 우회 진출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1500억원 투입해 공장 건설
10일 풍력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밍양과 유니슨이 각각 45%, 55% 비율로 세운 합작사 유니슨·밍양에너지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이르면 이달 발표한다. 합작법인은 공정위 심사를 통과하는 즉시 1500억원을 투입해 경남 사천에 15㎿급 풍력터빈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완공 시점은 2026년이다.
밍양은 합작법인에 15㎿급 터빈 기술을 이전하고 풍력발전용 터빈 설계도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유니슨은 두산에너빌리티와 함께 국내 풍력 터빈 업체 가운데 기술력이 가장 앞섰지만, 10㎿급 터빈이 현재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최대치다. 밍양에서 기술을 넘겨받으면 단번에 터빈 용량을 1.5배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선 풍력발전이 사업성을 갖추려면 최소 10㎿가 넘는 대형 터빈을 장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정도 규모는 돼야 풍력발전 1기당 전기 생산량이 각종 비용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밍양은 세계 최대 규모인 18㎿ 터빈을 상용화한 데 이어 20㎿ 터빈 개발도 끝마쳐 이 분야 실력자로 통한다. 밍양은 기술을 넘기되 관련 지식재산권(IP)은 계속 보유한다. 합작법인이 터빈을 제조할 때마다 밍양에 ‘기술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박원서 유니슨 대표는 “기술 이전을 꺼리던 중국이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며 “2028년까지 중국 기술을 배운 뒤 내재화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기업 ‘러브콜’ 이어져
밍양이 유니슨과 손잡은 건 한국 정부가 발주하는 풍력발전 입찰을 따내기 위해서다. 정부가 이달부터 풍력발전 업체를 선정할 때 공급 가격 외에 경제 안보와 국내 공급망 기여도 비중을 대폭 높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업체보다 최대 40% 저렴한 중국 기업의 ‘한국 풍력 시장 싹쓸이’를 막기 위해 이런 조건을 추가했다. 밍양은 유니슨과 세운 합작법인을 통해 진입 규제를 우회하기로 했다. 유니슨 지분율이 밍양보다 높은 데다 한국에서 터빈도 만드는 만큼 경제 안보와 국내 공급망 기여도 항목에서 국내 기업과 똑같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선 밍양이 그동안 고수해온 독자 생산을 접은 이유로 한국 풍력발전 시장의 높은 성장성을 꼽는다. 핵심 기술을 넘겨서라도 ‘뜨는 시장’을 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공급 과잉 상태인 중국과 달리 한국에선 향후 2년간 7~8기가와트(GW) 규모의 해상풍력 입찰 시장이 열린다. 이는 원전 8기에 맞먹는 규모이며 금액으로 따지면 50조원에 육박한다. ‘2030년까지 국내 해상풍력 단지를 14.3GW 규모로 늘린다’는 정부 계획대로 되면 사업비는 100조원으로 늘어난다.
터빈은 전체 사업비의 35%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하지만 국내에 풍력발전용 대형 터빈을 제대로 만드는 기업이 없다보니 우리 정부가 입찰하는 사업인데도 번번이 중국과 덴마크, 독일 업체가 입찰을 따냈다.
업계에선 한국 풍력 시장을 둘러싸고 글로벌 기업 간 각축전이 한층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덴마크 베스타스는 정부 입찰을 겨냥해 전남 목포에 터빈 전용 공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독일 지멘스가메사는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와 손잡았고,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HD현대일렉트릭과 기술 협약을 맺었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유니슨이 대형 터빈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이 큰 이상 다른 기업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기술 이전 등 협력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오현우/김우섭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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