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민중가요 공존한 집회, 정치와 일상 경계 허물다

정민경 , 윤유경 기자 2024. 12. 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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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은 바람 불어도 안꺼지잖아요" 탄핵 외친 응원봉 연대
K팝 선곡한 민주노총 행사기획팀장 "1020세대 환대의 의미"
"광장에 항상 있었던 대중문화 팬덤…일상 정치 실천해왔다"

[미디어오늘 정민경 , 윤유경 기자]

▲윤석열 탄핵 목소리 내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진=연합뉴스.

“지난번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때, 어떤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꺼지지 않는 불(응원봉)을 들고 나온 게 시작이라고 알고 있다. 저는 '비투비' 팬인데 트위터(현 'X')에서 '응원봉연대'의 깃발을 보고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왔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만난 조 아무개씨(25세)의 말이다. 그는 “계엄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이 진짜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데 대통령이 본인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계엄을 한 것 같아 정말 이 나라의 대통령이 한 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일각에서는 응원봉을 들고 (팬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하지만 내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기 보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이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 참여자들은 다양한 구호가 담긴 깃발과 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로 향했다.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이라는 바람이 담긴 응원봉연대 깃발이 그중 하나다. 또 다른 응원봉연대 참가자인 임청한씨(22세)는 '더 보이즈'의 팬이라며 “저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아이돌에게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위에 나왔다. 계엄 사태 때문에 팬미팅이나 아이돌 일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된 팬덤도 많아서 분노한 사람도 있다. 계엄령에 대해 솔직하게 욕이라도 한 사발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빨리 내려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응원봉연대 깃발 아래는 아니었지만 역시 응원봉을 챙겨 나온 윤아무개씨(20세)도 “집에 밝게 빛나는 물건이 보여서 가지고 왔다. 이왕 샀으니까”라고 말했다.

계엄령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집회에서 또 한 번 대중문화 팬덤들의 결집이 집중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같은 노동단체에서도 K팝(K-POP)을 틀며 대중고 접점을 넓히고 있다. 다만 집회·시위는 시대에 따라 늘 변화해왔고,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마다 '변화'를 부각하는 게 언론의 고정된 프레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중가요와 K팝 함께 울려퍼진 집회… 민주노총 행사기획팀장 “1020 '환대' 의미”

이번 집회의 선곡은 민주노총 소속인 김지호 윤석열 '즉각퇴진 국민행동'(가제) 행사기획팀장이 맡았다. 그는 9일 통화에서 “11월 초부터 집회를 하고 있었고 이미 그때도 시민들을 많이 만나는 행진 때는 K팝을 개사하거나 야구장 구호를 바꾸는 식으로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계엄 이후는 완전히 질적으로 바뀌었고 국민들이 다 뛰쳐나왔다. 탄핵 운동이 전국민으로 확대되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에 집회에 처음 오시는 분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집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7일 탄핵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할 무렵엔 무거운 분위기를 고려해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틀었다. 이후 국회대로에서 응원봉을 든 사람과 10대, 20대 시민들을 마주하면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틀었다. 인터넷이나 전화 연결이 어려운 집회 현장에서 지루해 할 이들을 고려한 선택이다. 그는 “우선은 많은 사람들, 또한 10대나 20대들이 집회의 주역으로 나섰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반가웠고 제 입장에서는 '환대의 의미'로 노래를 틀었다”며 “음향 업체 감독님이 가진 노트북에 있는 노래를 틀었는데 '삐딱하게'(지드래곤)나 '아파트'(로제), '위플래시'(에스파)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환호하고 굉장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사진=연합뉴스.

김 팀장은 다만 집회가 너무 가벼워선 안 되고 '투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는 “대중문화 팬덤들 역시 그러한 엄중함을 느껴 거리로 나선 것이고, 그들의 일상이 파괴된다는 것 때문에,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차원의 결심에서 나선 것”이라며 “정치 본연의 임무가 삶의 일상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정치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 혹은 일상적인 것을 정확히 분리할 수 없다는 관점”이라 말했다. 이어 “이미 SNS에도 '저는 민중가요도 듣고 싶었어요' 같은 말이 나올 만큼, 시위 참여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자정 능력이 있어서 잘 조율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국회 앞 집회에 응원봉을 들고 모인 사람들. 사진=윤유경 기자.

“광장에 항상 있었던 대중문화 팬덤 지우는 건 부당…일상의 정치 실천해왔다”

'변화된 시위'라는 평가가 프레임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집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이미 2008년도부터 나왔던 이야기이고, 당시 정치 고관여군이 아닌 분들이 대폭 많아지면서 '(정치적) 깃발은 내려라' 같은 말도 있었다”며 “이후 계속해서 대중문화 팬덤이나, 이번에 관심이 모인 '집에만 있고 싶은 사람 모임'처럼 재미있는 시위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시위에서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과, 시위 주최 측도 더 많은 시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하길 바란다는 마음이 합쳐져 이러한 장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의견가는 “이전에는 K팝 팬들이 시위에 나오면 '우리 오빠 광우병 고기 먹는 거 싫어서' 나온 사람들로만 소비하기도 했는데 사실 K팝 팬들은 이미 굉장히 많은 정치적 사건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근조 화환' 시위를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닌 정치적 경험이 쌓인 팬덤이 됐다”며 “집회에서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 받을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젊은 여성들은 항상 광장에 있었다며 “매번 시위가 있을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얘기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평론가는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부터의 문화를 기반으로 젊은 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계속 있었던 일이며 '촛불 소녀' 등으로 불린 여성들은 늘 광장에 있어 왔고, 특히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한 모임과 연대들은 쭉 있어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손 평론가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2030 여성들은 2008년의 그들과 다르다. 이들의 민주주의적 감각은 광장에서만 실천돼 온 것이 아니고, 팬이었던 아이돌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감옥 가라'고 얘기하던 것부터 있던 목소리들”이라며 “촘촘하게 오랫동안 민주시민으로서의 감각을 본인의 팬덤 실천 안에서 가지고 왔었던 사람들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은 K팝 산업의 구조적 문제, 비윤리적 작품에 대한 성토, 성범죄에 대한 거부 등의 목소리를 내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집회에서 퀴어·페미니스트가 집회 문화에 대해 발언할 때 일각에서 아유를 퍼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번 광장의 핵심은 물론 탄핵이지만, 동료 시민들과 탄핵 이후 어떤 사회를 계속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민주사회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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