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 KBS 사장 취임 첫날 ‘몰래 새벽 출근’···취임식도 안했다
10일 KBS 제27대 사장으로 취임한 박장범 사장이 예정된 취임식을 급히 취소하고 녹화방송으로 대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 피의자 입건으로 악화된 여론, KBS 구성원들의 반발 등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정 동력을 상실하면서 윤 정부가 지명했던 주요 인사들도 힘이 떨어지게 됐다.
박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에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스튜디오에서 열기로 했던 취임식을 열지 않았다. 박 사장은 이날 오전 4시20분쯤 기습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KBS 신임 사장들이 취임식 전 관례적으로 해 오던 현충원 참배도 취소했다. 박 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이날부터 2027년 12월9일까지다.
박 사장은 취임식을 여는 대신 사장실에서 녹화한 영상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박 사장은 “비상계엄 사태로 국정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다”며 “어떤 권력이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KBS의 주인인 국민만 바라보면서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점을 약속한다”고 했다.
박 사장은 “정파적이고 편향적인 인사, 보복성 인사나 징계, 편 가르기와 줄서기 문화는 이제 KBS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정치적 변화기 때마다 되풀이됐던 조직 내 집단주의적 충돌과 갈등, 그 결과로 뿌리내린 극단적 개인주의와 냉소를 극복해 내겠다”고 했다.
오전부터 본관에서 농성 중이던 KBS본부 조합원 400여명은 박 사장의 취임식 취소 공지를 듣고 인근 신관으로 이동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신관 외벽에는 ‘용산방송 거부한다, 국민이 KBS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조합원들은 ‘내란수괴 낙점받은 박장범은 물러가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성원들 무시하는 박장범은 자격없다” 등 구호를 외쳤다.
박상현 KBS본부장은 “조합원들에게 집회에 일찍 나와달라고 힘든 요구를 했지만 나쁜 사람들은 한발 빠르다”며 “사장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 KBS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물어보려던 것인데, (박 사장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칩거를 선택했다”고 했다. 박 본부장은 “박 사장이 앞으로 KBS본부 조합원들을 설득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으면, 취임식을 스스로 취소했듯 KBS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 사장은 이날 정인성 통합뉴스룸국장과 김철우 시사제작국장, 송웅달 시사교양1국장, 손성배 시사교양2국장을 임명했다. KBS본부는 박 사장이 단체협약과 사규에 명시된 국장 임명동의제를 무시했다며 반발했다. 임명동의제란 노조 조합원 과반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수 동의를 충족하지 못하면 사장이 통합뉴스룸국장 등 주요 보직자 지명을 철회하는 제도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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