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던 거위는 어쩌다 천덕꾸러기 됐나 : 면세점 잔혹사
면세점 3사 3분기 실적 부진
희망퇴직 등 허리띠 졸라매기
외국인 관광객 회복했지만…
중국 단체관광객 돌아오지 않아
면세점 객단가 하락 수익성 악화
강달러에 내국인 수요도 부진
계엄 후폭풍에 면세점 주가 흔들
관광산업 위축 시 매출 타격 우려
#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면세점 업계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최근 국내 면세점을 찾는 일본·홍콩·싱가포르 등의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아무래도 '큰돈'을 펑펑 써대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만은 못하다. 여기에 고환율, 임대료 부담까지 면세점 업체들을 짓누르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계엄 사태'가 한국의 관광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야 성장하는 면세점 업계로선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 이 때문인지 몇몇 전문가는 면세점 업체들이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꼬집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면세점은 어쩌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걸까. 더스쿠프가 면세점 잔혹사를 짚어봤다.
3일부터 4일 새벽까지 이어진 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선포는 6시간 만의 해제 선언으로 끝이 났다. 후폭풍은 작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44.70원까지 치솟았고, 일부 국가는 한국 여행경보를 내렸다.
영국 외무부는 지난 4일 계엄령 해제 이후에도 자국민들에게 "현지 당국의 조언을 따르고 광화문, 용산, 여의도 등 시위 지역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도 "잠재적인 혼란이 예상된다"면서 "공공장소에선 주위를 기울이고 안전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사태의 후폭풍은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건 면세점 업계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과 외국인 관광객 수요 감소는 면세점 업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면세점 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내리막을 탔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의 주가는 4일 3만8950원으로 전일(4만50원) 대비 2.7% 하락했다. '신세계면세점(신세계DF)'의 모회사인 '신세계' 주가 역시 전일(12월 3일 13만8300원) 대비 3.9% 하락한 13만2900원으로 내려앉았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 교수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라면서 "향후 정치적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감소할 수 있고 이는 면세점 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굳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면세점 업계는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면세점 업계 '톱3(신라·롯데·신세계)'는 올해 3분기에도 부진한 실적을 이어갔다. 신라면세점(호텔신라 면세사업 부문)의 3분기(이하 누적 기준) 매출액은 2조5229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1818억원) 대비 15.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73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롯데면세점(호텔롯데 면세사업 부문)도 비슷한 실적 그래프를 남겼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9.0%(2조2446억원→2조4478억원)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17억에서 -922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매출액이 1.2%(1조4324억원→1조4508억원) 늘어난 신세계면세점의 영업이익도 적자전환(778억원→–4억원)했다.
수익성이 악화일로를 걷자 면세점 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8월 150여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신세계면세점도 11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업황이 단기간에 나아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로선 비용 효율화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점은 어쩌다 이런 위기에 몰린 걸까. 추락하는 면세점에 날개는 없는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면세점 업계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가 높은 중국 의존도다.
■ 구조적 문제➊ 중국 의존도 = 그동안 국내 면세점 업계는 씀씀이가 큰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와 '따이공代工(중국 보따리상)'에 의존해 성장해 왔다.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후 유커의 발길이 끊겼을 땐 따이공이 면세점의 성장을 이끌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따이공들이 쓸어가던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한풀 꺾였고, 유커의 여행 패턴도 달라졌다. 면세점을 필수코스로 들르던 대규모 단체 관광객 대신 개별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면서 올리브영·다이소 등의 인기가 높아졌다.
여기에 정국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자국 면세점을 키우는 기조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8년 하이난海南섬을 면세특구로 지정한 데 이어, 2020년엔 면세 한도를 3만 위안(약 584만원)에서 10만 위안(약 1947만원)으로 상향했다. 올해 8월에는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등 8개 도시에 신규 시내면세점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더 이상 국내 면세점 업계가 중국에 기댈 수 없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중국을 대체할 만한 국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판매 상품이 고가의 수입품이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으로선 굳이 면세점을 이용할 유인이 부족하다"면서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구매력이 중국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구조적 문제➋ 고환율 = 기대할 건 엔데믹(endemic·풍토병화) 전환 이후 급증한 내국인 관광객이지만 환율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면서 면세점 판매가격이 백화점 판매가격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 직구가 활성화한 것도 면세점 채널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더 큰 문제는 경기 침체의 장기화다. 최악의 경우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면세점 쇼핑을 즐길 '통 큰' 내국인은 많지 않을 공산이 크다.
■ 구조적 문제➌ 임대료 부담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천공항 면세점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임대료마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팬데믹 국면이던 2022년 기존의 '고정임대료' 제도를 폐지하고, 여객旅客(손님) 수를 기준으로 하는 '여객당 임대료'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고정임대료에 부담을 느끼는 면세점 업계의 의견을 일부 반영한 조치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임대료 기준을 '여객 수'로 바꾼 후 업체들은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였다. 예컨대 DF1, DF2 구역 사업권을 따낸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8987원, 9020원의 객당 임대료를 제시했다. 최소 객당 임대료(5000원) 대비 79.7%, 80.4% 높은 금액이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 시대가 열리면 '여객 수'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서였다.
하지만 이 예상은 결과론적으로 들어맞지 않았다. 여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지만 면세점 이용객의 객단가가 줄어들었다. 일례로, 올해 10월 면세점 이용객 수는 256만명으로 지난해 10월(215만명)보다 19.0%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16.4%(1조3292억원→1조1111억원) 줄었다.[※참고: 인천공항 출국객 수는 올해 1~10월 기준 2926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1~10월·2966만명)의 98.6% 수준을 회복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면세점 사업자들이 엔데믹 전환 기대감으로 높은 가격에 입찰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나타지 않으면서 임대료마저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면세점 업계가 마주한 문제들은 무엇 하나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면세점 업계가 '출구 전략'을 짜야 할 때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면세점 시장은 수요 대비 과잉 공급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말을 이었다. "면세점 외 다른 유통채널을 갖춘 기업이라면 온라인이나 편의점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채널에 집중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면세점 특성을 살린 하이엔드 상품을 강화하거나 달라진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킬러 콘텐츠를 키우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추락하는 면세점 업계는 과연 날개를 다시 펼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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