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름 넣을 때마다 내는 세금의 '시대착오' [추적+]

김정덕 기자 2024. 12. 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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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교통세, 전체 내국세의 3.5%
휘발유ㆍ경유 살 때마다 내
과거엔 ‘토건 예산’의 핵심
이젠 기후대응에도 활용 중
하지만 여전히 ‘토건’이 중심
기후대응 사용 비중 늘려야

우리가 기름을 살 때마다 '알게 모르게' 내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는 간접세이자 목적세다. 세금의 사용처가 정해져 있다는 거다. 신설 당시엔 건설 등 토건에 사용했다. 명칭에서 보듯 2000년대 이후엔 에너지나 기후환경을 위해서도 쓴다. 문제는 여전히 건설에 쓰는 비중이 70%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시대착오적이지만,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는 '토건 예산'의 핵심 재원이었다.[사진|뉴시스]

국세가 부족하다는 말을 뉴스를 통해 수없이 듣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국세가 과연 뭘까. 국세는 총 14개로, 크게 직접세와 간접세로 나뉜다. 직접세는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5개다.

간접세는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주세, 인지세, 증권거래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관세 등 9개다.[※참고: 일반적으로 국세는 국세기본법상의 내국세를 의미하므로 관세가 빠져 총 13개가 된다. 상속세와 증여세는 일반적으로 상속ㆍ증여세로 묶는다.]

국세를 규모 순으로 보면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상속ㆍ증여세〉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순이다. 지난해 징수액 기준으로 소득세는 115조8330억원, 법인세는 80조4195억원, 부가세는 73조7749억원, 상속ㆍ증여세는 14조6341억원,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는 10조8436억원이었다. 총 295조5051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내국세(309조6281억원)의 95.4%를 차지했다. 5개 세목이 내국세를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에서 눈여겨볼 건 바로 전체 내국세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다. 이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정부가 2021년 11월부터 세율을 인하해온 유류세(유류세 인하조치ㆍ13차례 연장ㆍ내년 2월까지)를 구성하는 세금이다.

그래서 '휘발유나 경유에 붙는 세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줄여서 교통세라고도 한다. 다양한 간접세도 여기서 나온다. 교육세(교통세의 15.0%), 주행세(교통세의 26.0%), 부가가치세(제세부담금 포함 공급가의 10.0%)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교통세의 목적이나 성격을 잘 모르는 듯하다. 요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관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교통세의 근거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법이다. 법에 따르면 교통세의 납세의무는 제조업자 혹은 수입업자에게 있지만, 휘발유나 경유를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轉嫁되는 '소비세'다. 그래서 소비자가 휘발유나 경유를 살 때마다 낸다.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소비자를 대신해서 미리 낼 뿐이다.

둘째, 교통세는 육상교통시설 확충, 대중교통 육성, 에너지ㆍ자원 확보, 환경 보전ㆍ개선 등의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세다. '어디에 써야 한다'는 꼬리표가 달려 있단 얘기다.

교통세는 주유를 할 때마다 낸다.[사진|뉴시스]

1994년 '교통세'를 신설할 당시엔 세입이 전액 교통시설특별회계(도로ㆍ철도ㆍ공항ㆍ항만을 짓는 돈)로 귀속했다. 신설 초기에는 아예 시행령으로 도로 건설에 세입의 절반을 배정하는 규정을 두기도 했다. '토건 예산'의 핵심이었다는 거다.

그러다 2001년부터는 지방양여금 재원으로 배분했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중앙정부가 국가사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면서 그 비용을 지원했는데, 그게 지방양여금이다. 당시 도로 건설 사무를 지방에 이관하면서 교통세도 지방에 배분했다.

그후 정부가 2005년 회계 통합(교통시설특별회계+균형발전사업회계)으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를 신설하고, 2007년 교통세의 명칭을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로 변경한 후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와 더불어 환경개선특별회계에도 세입을 배분했다. 자동차가 늘면서 휘발유와 경유의 판매가 늘어나 환경개선의 필요성도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교통세는 2022년부터는 기후대응기금에도 배분하고 있다. 현재 배분율은 교통시설특별회계(68.0%), 환경개선특별회계(23.0%), 균형발전특별회계(2.0%), 기후대응기금(7.0%)이다.

흥미로운 건 이 세금의 근거인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법이 일몰기한을 명시한 한시법이라는 점이다. 1994년 세목을 신설한 이후 지금까지 7차례의 연장을 거쳤고, 현행 기준으로는 올해 말까지 유지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 상정한 내년도 세법개정안에도 이 법의 일몰연장안이 들어있는데, 이번에도 연장하면 8번째이고, 유효기간은 2027년 12월 31일까지다.

이 정도면 교통세는 사실상 일반세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교통시설 건설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세금이었지만, 이후 지방교통시설 지원에도 사용하고, 교통 발달로 인해 생기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재원으로도 쓰는 등 용처用處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문제라는 건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난 부작용을 같은 명목의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건 잘못이 아니다. 쉽게 말해, 교통시설 건설 재원이 환경파괴를 방지하는 재원으로 바뀌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진짜 문제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되레 부족하다는 거다. 교통세를 환경개선특별회계와 기후대응기금에 배분하는 비중은 30.0%다. 여전히 교통시설에 68.0%를 사용한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세금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대응을 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최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선진국 주도로 연간 최소 3000억 달러(약 419조원)의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는 논의를 더 하겠지만, 그 방향성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제적인 기후대응기금을 걷을 정도로 지구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도 기후대응을 위한 기후예산, 수요 억제를 위한 기후조세나 탄소가격정책 등 다양한 기후대응 재원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교통세는 기후대응을 위한 중요한 재원이고, 명분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조세의 운영을 진지하게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배분에서부터 환경과 기후대응을 위한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선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봐도 교통세의 일몰연장만 고작 몇줄로 언급했을 뿐, 아무도 교통세의 역할 재조정을 거론하지 않았다. 기후대응을 외치는 정치인들조차 관련 개정법안이나 개정안을 제출한 걸 본 적이 없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때가 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소장
jcs619@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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