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오독오독 씹으니 감칠맛 ‘톡톡’…작지만 ‘알찬’ 겨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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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안, 특히 묵호항 부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기억날 법한 간식거리가 있다.
바로 겨울철 산란기를 맞는 도루묵 알이다.
불향이 살아나도록 바싹 구운 도루묵은 4마리씩 나오는데 터져나올 듯한 알을 오독오독 씹으면 입안에서 감칠맛이 넘쳐난다.
겨울철 찬바람이 오히려 그리워지게 만드는 도루묵은 한끼 반찬이나 안주로 꽉 찬 알만큼 충족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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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엔 좋은 대접 못 받아
은어에서 이름 바뀐 야사 유명
일본 수출도…명태 자리 대체
겨울철 알배기 바싹 구워 즐겨
깔끔한 맛…찌개·조림도 제격
강원도 동해안, 특히 묵호항 부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기억날 법한 간식거리가 있다. 바로 겨울철 산란기를 맞는 도루묵 알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저렴한 생선이었던 도루묵 알을 커다란 대야에 담아 파는 행상들이 학교 부근에 많았다고 한다. 이미 산란한 알은 껍질이 고무처럼 질긴데, 오독오독 껌을 씹는 느낌의 주전부리였다.
수백년 전 조선시대에도 도루묵이라는 생선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듯하다. 너무나 유명한 은어에서 도루묵이 됐다는 야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루묵 이야기는 허균의 ‘도문대작’에도 언급돼 있으며, 선조 때 이식의 시 ‘환목어’에도 나온다. 야사의 주인공은 선조라는 설과 인조라는 설이 함께 존재한다. 전란으로 피난을 떠난 왕이 이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피난지는 강원도 동해안이 아니라 북쪽 국경지대인 의주와 충남 공주시이므로 동해안에서만 나는 도루묵을 맛봤을 가능성은 낮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가설은 2016년 김양섭 전북대학교 무형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이 제시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바로 설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정종에게 양위한 후 태조는 함흥에 갔던 적이 있고, 함흥은 도루묵이 많이 나는 고장인 데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은어라는 명칭을 썼다고 한다.
도루묵의 수요가 높아진 계기는 일본 수출이다. 동북부 아키타현에서 특히 겨울 별미로 즐기는데 ‘숏츠루’라는 이름의 피시 소스로 가공하거나 숙성된 도루묵을 초밥으로 만들어 먹는다. 일본에서도 서민적인 이미지의 생선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에도 무말랭이 조림에 된장국, 도루묵 구이라는 간소한 저녁상 묘사가 나온다. 수온 상승으로 명태가 잡히지 않자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도루묵이다.
알배기로 많이 먹지만 비린내가 없고 흰살생선 특유의 깔끔한 맛이 있어 반건조 구이나 찌개·조림으로 먹어도 좋다. 산란기가 되면 튀어나올 만큼 알이 가득하다. 강원도 현지인들은 한겨울 딱딱한 알보다 10월경에 잡힌 것이 부드러워 식감이 좋다고 한다. 끈적한 점액 성분은 열을 가해 조리해도 그대로인데, 이 점액 때문에 알배기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다.
2006년부터 해양수산부에서는 도루묵 어족자원 회복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2015년경이 되자 해변에 밀려온 알이 썩어갈 정도로 개체수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요가 늘면서 최근 8년간은 어획량이 뚝 떨어졌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진 것, 개인이 통발로 알배기를 잡는 일이 많아진 게 어획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 변화 등으로 사라져가는 식재료들을 지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있는 ‘을지오뎅’에서는 겨울 한철 별미인 도루묵 구이를 부담 없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저녁시간이면 어묵집에서 간단히 술 한잔을 기울이려는 직장인들로 붐비는 곳이다. 도루묵은 조림으로도 판매한다. 불향이 살아나도록 바싹 구운 도루묵은 4마리씩 나오는데 터져나올 듯한 알을 오독오독 씹으면 입안에서 감칠맛이 넘쳐난다.
가정에서 요리할 때는 고추장찌개를 만들어도 별미다. 소금구이도 맛있지만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우면 풍미가 한결 살아난다. 겨울철 찬바람이 오히려 그리워지게 만드는 도루묵은 한끼 반찬이나 안주로 꽉 찬 알만큼 충족감을 준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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