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노벨평화상의 도시 오슬로…반전시위에 국제 현실 고스란히
10일 평화상 시상식 하루 앞둔 회견서는 "핵은 인류에 금기" 호소
(오슬로=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하루 앞둔 9일(현지시간) 오전 노르웨이 오슬로의 의사당 앞 광장에는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찍힌 노벨평화상 현수막과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기마경찰 건너 "국경을 열어라!" "부끄러운 줄 알라!"는 구호도 울려 퍼졌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노르웨이 의회를 방문하자 그 앞에서 가자지구 전쟁을 멈추고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해 이집트 국경을 열라고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 있던 국제앰네스티 노르웨이의 한 관계자는 "오늘(12월 9일)은 유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기념일이라 가자지구에서 인종학살을 멈추라고 촉구하고 있다"며 "동시에 이집트 대통령이 방문했기에 그에게 정치범 석방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과 반나절 전인 이날 아침 이곳에선 "더 이상의 히로시마, 나가사키는 안 된다"는 현수막을 든 일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의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이 광장 바로 건너편에는 시상식 연회가 열리는 그랜드호텔이 있다.
이들 앞으로 서 있는 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에는 원폭 피해자와 평화의 상징물인 종이학이 여러 개 걸려 있었고, 견학 온 오슬로 현지 초등학교 학생들도 재잘거리며 이를 지켜봤다.
이렇게 대비되는 두 가지 모습은 인류 복지에 기여한 이들에게 영예를 안겨 세계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벨평화상의 취지가 무색하게 참혹한 전쟁이 멈추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0일은 노벨의 기일로,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다. 오후 시청에서 본 시상식이 개최되고 저녁에는 노벨평화센터부터 그랜드호텔과 의사당 앞 광장까지 횃불 행렬이 진행된다.
주요 행사가 열리는 오슬로 곳곳은 9일 오후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슬로 시청도, 노벨평화센터도 정문은 굳게 닫은 채로 간혹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시상식 준비로 오늘은 문을 닫았고 12일 다시 연다"며 돌려보냈다.
이에 시민이나 관광객들의 발길은 뜸했고 경찰관과 경비원들, 카메라 앞에서 리포팅을 준비 중인 일본 기자들만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한 일본 기자는 "당연히 일본에서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일본에서 취재진 약 120명이 오슬로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다른 5개 부문인 생리의학·물리학·화학·문학·경제학상 시상식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것과는 별도로 오슬로에서 열린다.
노벨이 유언으로 노르웨이 의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에서 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공식적인 설명은 "아무도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해 작고한 역사학자 게이르 룬데스타드 전 노벨연구소장은 노벨이 유언장을 작성하던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연합왕국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 노르웨이 의회가 1890년대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강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 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국의 사상 첫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오슬로에서 평화상을 받았고,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은 올해 스톡홀름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
이날 노르웨이 노벨연구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내년이면 원폭 80년이 될 만큼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전쟁이 이어지고 핵 위협이 제기되는 현실을 반영한 질문이 전 세계 기자들로부터 쏟아졌다.
젊은 세대가 원폭 생존자들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이번 수상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핵무장으로 방위를 하기를 원하는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직접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예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핵보유국에 전하는 우리의 메시지는 원폭 피해자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는 것"이라며 "인류가 '핵 금기'를 유지하고 이를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무기로 낙인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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