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 ‘근거 없는 괴담’에서 현실이 되기까지

이은기 기자 2024. 12. 10.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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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그간 계엄설을 괴담 및 선동이라고 반발해왔다. 국회에 계엄 해제 권한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12월3일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계엄군은 곧바로 국회로 향했다.
2022년 4월25일 윤한홍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과 김용현 부팀장(오른쪽)이 청와대 개방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 초대 경호처장으로 군 통수권자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적임자라 판단했다.” 지난 8월12일 대통령실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용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령 선포’를 건의한 장본인이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그는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했고,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했다. 경호처장 시절,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정책을 비판하던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는 과잉 경호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관계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일었다.

 

 

“윤석열 탄핵으로 갈 때 혹시 계엄령을 선포해서 군까지 동원하는 거 아니냐는 국민적 우려가 일어나고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지명 엿새 뒤인 8월18일, 김병주 당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자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계엄설’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했다. 김용현 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건, 탄핵 정국이 오면 계엄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이었다.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으로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다.” 8월21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을 수차례 언급한 점, 김용현 장관이 경호처장 재직 시절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 등 이른바 ‘충암파’와 비밀 회동을 가진 점, (국회에 계엄 해제 권한이 있기 때문에 계엄을 선포할 리 없다는 반박에 대해)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을 참고할 때 국회의원이라도 현행범으로 만들면 계엄 상황에서 체포·구금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다. 계엄법 제13조(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따라,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4일 새벽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저는 안 따를 것 같다.” 9월2일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계엄 발동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군에서 충암고 출신이 등용되고 있다는 지적에는 “충암파를 말하는데 군 장성이 400명 가까이 있다. 이 중 4명을 가지고 충암파라고 하는 것은 군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머릿속엔 계엄이 있을지 몰라도 저희의 머릿속에는 계엄이 없다.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라면 (이재명) 당대표 직을 걸고 말하시라.” 9월2일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민주당에서 제기한 계엄설에 대해, ‘근거 없는 괴담·선동’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급한 게,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77조다. 하지만 12월3일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계엄사령부(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는 포고령(제1호)을 통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발표했다. 계엄군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국회로 향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48분부터 무장한 계엄군 280여 명이 두 차례에 걸쳐 국회 경내에 진입한 다음 망치와 소총 등으로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모인 국회의사당 안으로 난입했다.

 

 

“국군을 모독하는 행위다. (···) 제발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더 논란이 안 되면 좋겠다.” 9월5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야당의 계엄설은 ‘국군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2017년 트라우마가 있다. 지난 정부에서 계엄 문건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 단 한 명도 기소하지 못했고 그 당시 사령관이었던 조현천 사령관도 무혐의를 받았다. 1400명에 이르는 방첩사 요원만 축소됐다. 다시 방첩 기능을 보완해야 할 시점에 또 계엄 관련된 선동이 나와 우리 장병들은 그 트라우마를 되살리면서 저의가 뭐냐까지 생각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쿠데타적 계엄을 방지할 법·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 9월20일 민주당 김민석·김병주·박선원·부승찬 의원 등이 현행 계엄법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날 발의된 개정안은 전시(戰時)가 아닌 때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 찬성으로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계엄권 선포 요건을 엄격히 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국정원 1차장 출신 박선원 의원은 12월4일 “얼마 전(11월25일) 군 장성 인사에서 3성 이상 장군들에 대한 인사가 진행되지 않았던(3성 이상 장군들 인사 변동이 없었던) 이례적인 상황”이 계엄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주장했다. 3성 이상 장군에는 ‘충암파’로 분류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직접 실행에 옮긴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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