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촛불 성지 광화문→여의도 왜?” ‘촛불’의 지정학 [취재메타]

홍석희 2024. 12. 10.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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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후 여의도가 집회 성지… 보수는 광화문
광화문, 조선시대 때부터 민중 의사표현 장소
여의도 집회엔 에스파 ‘위플래시’ 축제 분위기
국회의장이 국회 담을 넘다… 국회 신인도 상승?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0만명 이상이 함께 드는 ‘촛불’이 다시 켜졌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번엔 여의도 국회 앞이 무대라는 점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돼 계엄군이 국회를 점령하고, 국회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을 긴급 해제하고, 다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부결(정족수미달) 되는 지난 7일간의 ‘다이나믹 코리아’의 현장은 모두 여의도, 그중에서도 국회가 무대였다. 야당은 ‘매주 탄핵안’ 상정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국회 앞 대규모 ‘촛불 집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의 무장 계엄군이 지난 3일 국회에 난입하고 있다.[신현주 기자]
‘광화문’ 집회 1번지… 이번엔 여의도 국회가 무대

광화문은 조선시대 이래로 민중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장소였다. 1893년 동학농민혁명군이 ‘상소’를 올렸던 장소가 광화문 앞이었고, 현대에 들어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태가 빚어졌을 때도,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도, 2013년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의혹 사건 때에도 역시 성난 시민들은 광화문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물결의 현장 역시 광화문이 공간적 배경이 됐다.

광화문은 지리적으로 청와대가 가까이 있어 국민들의 목소리를 국가 지도자에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됐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쇠고기 협상’ 파동으로 시위가 극에 달했을 때, 청와대 뒷산인 삼각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밝힌 바도 있다. 다만 현재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주도로 보수 단체 인사들의 주 무대가 광화문 집회로 남아있다. 특히 동화면세점 앞부터 대한문까지의 거리는 거의 일년 내내 집회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 됐다.

‘집회 현장’은 시대와 이슈에 따라 옮겨가기도 했다. 지난 2019년 가을께에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소재한 서초동 4거리가 대규모 집회의 중심이었다. 윤석열 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초동 집회 현장에 모였던 군중들은 과 검찰 개혁을 외쳤다. 당시 광화문에서는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보수인사들의 집회가, 서초동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수석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집회가 매 주말마다 반복됐다.

시간이 흘러 2024년 12월 촛불집회의 현장은 여의도 국회로 옮겨왔다.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 이후 1주일간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은 국회로 쏠렸다. 계엄군은 상부로부터 ‘계엄 해제권’을 가진 국회에 ‘150명이 넘으면 안된다’는 지령을 받고 작전에 투입됐었다고 증언했고, 현재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언제 통과 되느냐 여부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20여개 대학 학생들이 참여한 ‘대학생 시국대회’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리고 있다.[박준규 기자]
교수·정치학자·대학생들까지 ‘시국선언’… 현장은 여의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주장은 ‘세대불문’이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다, 세상일에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대학생들이 이번 시위에 참가한 것은 계엄 사태 이후 빚어진 주요 변화 포인트 중 하나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는 ‘윤석열 퇴진 대학생 시국대회’가 열렸다. 시국대회는 △가톨릭대 △건국대 △경희대 △국민대 △경북대 △고려대 △동국대 △부산대 △서울교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아주대 △인천대 △제주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 등 31개 대학 학생들이 참여했다. 시위 참가 인원은 1500명 안팎이었다.

시국대회 참가자 김상천 경북대 학생은 “계엄령이 터졌을 때 대학생·청년들의 정치 무관심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치욕스러운 약점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고, 참가자 정모씨는 “시국선언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점 하나만 고르기였다”고 말했으며, 또다른 대학생은 “1980년 광주와 2016년 광화문광장, 2024년 지금 이곳에서도 우리 대학생들은 시대의 부름에 언제나 응답해왔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들이 참가하자 집회 양상도 바뀌었다. 비장한 종류의 음악 대신 에스파의 ‘위플래시’가 지난 7일 밤 여의도 집회 현장에 울려퍼졌다. 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투애니원 ‘내가 제일 잘 나가’, BTS ‘불타오르네’, 로제·브루노마스 ‘아파트’ 등 유명 대중가요들이 현장에 흘렀다. AFP통신은 국회 앞 시위 소식을 전하며 “K팝 속에서 참가자들이 즐겁게 뛰어다니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일부 시위는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고 보도했다.

교수들과 정치학자들이 입을 모아 대통령 탄핵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은 약 20여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시국과 관련한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8년 만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 5일 오후 교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전체 학생총회를 열고 ‘윤석열 퇴진 요구의 건’을 의결했다.

정치학자 573명도 시국선언을 내고 “탄핵 외의 방법은 없다. 탄핵은 헌정의 중단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무슨 헌법적 권한으로 총리와 여당이 국정을 주도한다는 말인가”라며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눈속임이다. 대통령 아닌 다른 이가 국정을 대신하는 것은 불법이며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역 인근에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박지영 기자]
보수세력은 ‘광화문’으로… “계엄령, 이유가 있겠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은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들은 9일 오후 2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주사파 척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오는 14일까지 매일 탄핵 반대 집회를 열 방침이다. 집회 현장에선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대해 이해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인사들이 많았다.

지난 7일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린 것에는 민주당의 의회폭거가 이유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다고 검사·판사 등 줄줄이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필수 예산까지 삭감해버리는 것이 과연 책임있는 정당이냐”고 비판했다. 60대 김순화 씨는 “솔직히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는 놀랐다”면서도 “하지만 대통령이 계엄령까지 선포했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이번에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나라가 더 엉망이 됐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비토 목소리도 컸다. 한 집회 참가자는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이번에도 한 대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보수 세력으로부터 버림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3일 오후 11시경 대통령 비상계엄으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OECD 만년 ‘꼴찌’급… 국회 신인도 올라갈까?

급박하게 전개된 ‘비상계엄 선포’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해 계엄 해제에 성공한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지도 관심이 쏠린다. 올해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4 OECD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의 국회 신뢰도는 20.56%로 2021년 조사(37.29%)에 비해 16%포인트 넘게 크게 하락했다. 이는 OECD 평균치인 36.52%와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다. 국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매일 싸움만 한다’, ‘당리 당략만 노린다’ 등이 이유였다. 그런데 12월 3일 계엄 사태 이후엔 그 어느 기관보다 빠르게 ‘계엄해제’를 성사시켰다.

특히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 주재를 위해 국회 담벼락을 넘는 장면은 계엄 사태에 대응하는 국회의 상징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우 의장은 3일 밤 11시께 국회 담장을 넘었다. 우 의장은 국회 정문을 이용해 진입할 경우 경찰에 연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통행인이 많지 않은 국회 담장을 넘어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본회의 의장석에 오른 우 의장은 ‘빨리 처리하자’는 아우성에도 “국회가 정한 절차에 오류가 없도록 진행해야 한다”며 신중을 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개혁신당 국회의원들과 국민의힘 내 한동훈 계 의원들도 신속하게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해 계엄 해제에 필요한 재적 과반(150명)을 넘겨 본회의를 열 수 있게 됐고, 최종 결론은 재석 192석에 만장일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이끌어 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한 지 불과 155분만에 이뤄진 극적인 연출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배경과 국회의 즉각적인 해제를 소개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일부 외신 방송은 계엄 선포와 해제, 수용 상황을 전하면서 ‘이 모든 것을 두시간만에 해냈다. 밥 먹기도 빠듯한 시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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