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 받아요" 국회 앞은 축제 분위기…'시험 공부'도 여기서 했다[르포]

김지은 기자, 이현수 기자, 이찬종 기자 2024. 12. 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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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앞둔 20대들… 간이 책상 설치하고 시험 공부 진풍경 (종합)
김지호 서울민예총 사무처장이 9일 촛불집회를 위해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 소녀시대 '다시만난세계'부터 GOD '촛불하나', 이적 '하늘을 달리다' 등 대중가요들 제목이 보인다./사진=이현수 기자


"이제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집회가 열리는 9일 오후 6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 중앙 무대 바로 앞 음악 부스에서 김지호 서울민예총 사무처장은 음악 플레이리스트 목록을 신중히 보고 있었다. 인기그룹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부터 GOD '촛불하나', 거북이 '아싸' 등이 적혀있었다.

김 사무처장이 손끝으로 클릭 버튼을 누르자 여의도 한복판에는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곳에 있던 수많은 시민들은 다같이 응원봉에 피켓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후렴구에는 '아모르파티' 가사 대신 '윤석열 퇴진' 가사가 흘러나왔다.

현장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일부 시민들은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너무 덥다"며 손 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음악 마지막 후렴 구간에는 다같이 촛불 파도타기가 진행됐다. 부스 안에 있던 관계자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리듬을 타며 음악을 즐겼다. 김 사무처장은 "젊은 세대가 많이 나와줘서 노래가 다채롭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신청받아요" 함께 만드는 축제 분위기

9일 김지호 서울민예총 사무처장이 손끝으로 클릭 버튼을 눌러 촛불집회 음악을 재생하는 모습. 김 사무처장의 클릭 한번에 여의도 한복판에는 '다시만난세계', '아모르파티' 등 음악이 울려퍼졌다./사진=이현수 기자

사흘째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집회가 열린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분위기를 살린다며 입을 모았다. 온라인상에는 중년 참가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최신곡들도 미리 익혀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김 사무처장은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음악 신청을 받았다. 신청란에는 '함께 떼창하기 좋은 노래' '추위를 날려버리는 노래' '윤석열 탄핵을 앞당기는 노래' 등이 적혀 있었다.

2006년부터 집회·시위 관련 음악을 담당했다는 김 사무처장은 이날 7시 기준 신청곡 5곡이 들어왔다고 했다. 가수 안예은의 '봄이 온다면'을 비롯해 플레이브 '멈추지 않아', BTS 'Am I Wrong' 등 다양했다.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노래는 가수 에스파의 '수퍼노바'였다.

김지호 서울민예총 사무처장이 온라인에 올린 탄핵집회 플레이리스트 신청란. 온라인 상에는 중년 세대가 음악 목록을 미리 연습해간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독자제공


현장에는 7080세대 노래도 흘러나왔다. 가수 양희은의 '아침이슬' 노래가 흘러나오자 50대 여성 오모씨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는 "80년대 학번으로서 5·18 운동 때 선배들과 시위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며 "끈기와 열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음악을 통해 함께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1020 세대 중에는 중장년을 배려한 선곡을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며 "오늘 첫 순서로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등의 노래도 넣은 이유"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 조모씨는 "집회를 생각하면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만 생각하는데 이렇게 노래 부르고 춤도 추니까 어렵지 않고 좋다"며 "주권을 행사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수능 마치고 찾아온 고등학생 곳곳에… "시험만큼 집회도 중요해"

9일 오후3시30분쯤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간호학과 재학 중인 신모씨와 정모씨가 기말고사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 달에는 국가고시도 있지만 집회에 꼭 참여하고자 아이패드를 들고 현장에 나왔다./사진=이찬종 기자

"집회는 포기 못하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집회가 열리는 9일 오후 4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 털모자에 장갑을 쓴 여학생 두 명이 바닥에 자리를 잡더니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간호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다음 주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가방 옆에는 핫팩과 간식, 촛불 등이 잔뜩 놓여있었다.

펜을 잡고 한참 동안 시험 자료를 쳐다보던 신모씨(23)는 "계엄령은 상상도 못 했다"며 "다음 달에 국가고시가 있고 다음 주에는 시험이 있어서 공부를 놓을 수는 없지만 집회를 안 나올 수도 없어서 이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사흘째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집회가 열린 가운데 집회 참가자 중에는 시험 기간을 앞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자동 폐기된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직접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늘 진치고 공부하자" 국회 앞에 책과 함께 나타난 20대들

9일 오후 3시30분쯤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에서 취업준비생 권모씨와 김모씨가 각각 컴퓨터활용능력1급 공부와 PPT 작성에 열중하고 있다. 김씨는 앉은뱅이 의자까지 챙겨와 자리를 잡았다./사진=이찬종 기자

이날 집회 시작 전부터 책가방에 노트북, 아이패드를 챙겨온 20대 학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취준생 권모씨(23) 역시 검정색 롱패딩을 이불처럼 두른 채 친구와 집회 현장에서 공부에 열중했다. 간이 책상까지 가져온 그는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시험공부를 했다.

김씨는 "집회가 시작되고 노래가 나오면 책상을 접고 집회에 집중할 것"이라며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 하고 집회는 나와야 하니까 시간을 아끼고자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 김모씨(24)는 "토요일에도 집회를 나왔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며 "오늘은 국회 앞에서 진 치고 공부하자는 심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들은 다양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이곳을 찾았다. 박모양(19)은 '윤석열 탄핵이야' 등의 필름지를 오려서 무제 응원봉에 직접 붙였다. 그는 "국회의원들에게 윤 대통령 탄핵을 바라고 있는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다"며 "수능이 끝나서 월요일에 오는 것이 부담 없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이모양(19)은 평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에 직접 전구를 달고 '윤석열 퇴진' 팻말을 만들었다. 이양은 "작은 전등만 달고 오니까 아쉬워서 큰 전등도 달았다"며 "앞으로 깨끗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매일 저녁 국회 앞 상황… 집회는 계속된다

9일 오후 7시 30세 조모씨와 오모씨가 시위 현장에서 '내려와라'라는 곡을 따라 불렀다. 어제 집회에서 처음 들은 노래지만 열성적으로 따라 부르던 이들은 이내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덥다며 손부채를 부쳤다./사진=이찬종 기자

이날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개최한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3만명, 경찰 비공식 추산 4000명이 참가했다. 범국민촛불대행진 역시 오는 13일까지 매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앞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집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도 매일 계속된다. 자유통일당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오는 14일까지 매일 오후 2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주사파 척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5명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해당 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담화를 통해 "대통령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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