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문해력 떨어지는 윤석열, 과학적 사실 근거 없이 부정한 트럼프…국민에겐 불행이다[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R&D 예산 대폭 깎은 윤 대통령
주술·무속 기반한 사고 의구심
한국, 친위 쿠데타로 신뢰 바닥
2기 트럼프 제대로 상대하려면
새로운 국가리더십 다시 세워야
“몸에 살균제 넣어 코로나 차단”
트럼프 1기 때 위험한 발언 후
표백제 관련 사고 2배 이상 ↑
‘기후협약 탈퇴’ 공약 실행 땐
전 세계 사람들에 치명적 영향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주사로 살균제를 몸 안에 집어넣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월, 그때 미국의 대통령이던 트럼프가 공개 석상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백악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국토안보부의 과학기술국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된 연구결과 중 표백제나 살균제가 바이러스를 죽인 사례를 소개하자 옆에 있던 트럼프가 큰 관심을 보이며 내뱉은 말이었다.
농약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의 충격과 공포를 겪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트럼프의 저 발언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이없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저 발언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실제로 그날의 브리핑 이후 뉴욕시에서는 살균제나 표백제 등과 관련된 사고 신고가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파문이 커지자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비꼬는 투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의 해명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하는 자리인데 수많은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많은 위험한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했다는 사실 자체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연히도 한국과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공식적으로 처음 발견된 것은 거의 같은 날(2020년 1월20일과 21일)이었지만 이후 두 나라의 대응은 전혀 달랐다. 한국은 방역 모범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미국은 초기 대응부터 실패하면서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미국이 초기 방역에 실패한 데에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안일한 상황인식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가 일조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사실 예고된 참사였다. 트럼프는 2016년 첫 대선에 나섰을 때부터 자신의 반과학주의적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가 사기라며 당선되자마자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던 공약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이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사를 환경청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백신에도 회의적이었던 트럼프는 백신안전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그 수장에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음모론을 신봉했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임명하려 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이다. 백신이 자폐증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의 근원은 1998년 유명 의학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그 자체로도 의문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사기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나 학술지에서 철회되었고 저자도 학계에서 추방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아주 잘 확립된 과학적 사실들을 설득력 있는 근거도 없이 무시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이 행성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위치에 오른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그때부터 횡행했었다. 미국이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예고된 불행의 사후검증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절치부심으로 권토중래한 2기의 트럼프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재가입한 파리협약을 다시 탈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아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미국인들이 백신을 맞지 않아 질병에 노출되는 것이야 남의 나라 일이라 치부하더라도, 세계 온실가스 배출 2위의 나라가 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산업화 이후 기온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려는 파리협약의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한탄도 이미 나오고 있다. 만약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또다시 헛발질로 재난을 재앙으로 키울 가능성이 클 것이다.
1기와 비교해서 달라진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은 테슬라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의 존재이다. 반과학주의적인 대통령과 과학기술 업계의 정점에 있는 CEO와의 만남이라니. 언뜻 과학과 반과학의 양 극단을 오가는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모습은 과학이든 뭐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장사꾼의 기질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현실의 사실관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은 무시한 채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만 골라 감각적인 언어로 포장해 대중을 설득하는 솜씨는 탁월해 보인다. 아마도 트럼프와 머스크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실행에 옮기는 능력인 것 같다.
트럼프는 머스크를 새로 신설한 정부효율위원회의 공동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부효율위원회는 정부 내 관료주의 해체, 과도한 규제와 지출 낭비 철폐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신기술을 개발해 세상에 없던 물건을 내놓는 머스크는 확실히 관료주의나 규제 따위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그런 머스크도 작년에는 최첨단 인공지능 개발을 6개월 동안 일시적으로 중단하자는 주장에 찬성하는 이름을 올렸다. 정부효율위원장으로서의 머스크는 과연 인공지능 개발을 일시 중단하거나 EU처럼 윤리규제를 강화하는 조치에 찬성할 것인가?
과학연구 활동이나 과학기술 개발의 과정에도 무한정의 자유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를 출생시킨 중국의 과학자는 중국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인간 배아를 연구하는 데에도 나라별로 제한을 두고 있다. 핵무기 개발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군사반란과 군사독재의 참혹함을 겪었던 우리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과학과 기술에도 비슷한 통제가 필요하다.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큰 현안이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조합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무척 궁금하다만 그게 ‘미국 우선주의’에 밀려 인류의 보편적인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은 아닐 것만 같다.
과학과의 거리가 멀기로 따지자면 윤석열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면서부터 반도체에 큰 관심을 가졌고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양자기술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과학기술의 문해력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과학방역, 과학경호를 외쳤으나 그 실체는 모호하고 공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학적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과학과 기술을 외쳤지만 급작스럽게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도 과정으로서의 과학적 사고와 문해력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인식과 사고 판단의 과정을 지배하는 요소는 과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주술이나 무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의혹이 더 크다. 온 국민이 다 지켜보는 당내 대선경선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나온 것도 그렇고, 무속이나 주술을 신봉하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여전히 석연치 않다.
며칠 전, 한밤중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사실상 친위 쿠데타를 감행한 것도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비과학적이다. 국회의원들의 합법적인 의정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계엄을 선포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너무 자의적이고 억지스러운 것이 주술을 닮았다. 지극히 상식적인, 조금이라도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런 억지 논리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다.
친위 쿠데타 실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직무를 계속 이어간다 하더라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윤석열과 트럼프 두 정상이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으로 이미 외교적 신망도 깎인 것 같고, 우리 대통령실을 도청한 미국에 변변한 항의조차 못했던 점이나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에 ‘퍼주기’만 했던 전력이 다시 떠오른다. 벌써부터 방위비 분담금은 재협상으로 많이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윤석열-트럼프의 첫 통화에서 트럼프가 우리의 조선업을 콕 찍어 도움과 협력을 요청했다고 하니 우리에게 협상의 큰 지렛대가 이미 생긴 셈이다. 분담금을 올려 주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우리가 얻을 수 있으면 된다.
이전 칼럼에서도 썼듯이 나는 무엇보다 우선 미국으로부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얻어냈으면 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핵무장은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지금 우리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닥쳐 ‘결단’을 내렸을 때 핵무장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2015년에 한·미원자력협정이 개정되기는 했으나, 한국이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려면 미국과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패전국인 일본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 수천발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대비된다. 핵추진잠수함은 재래식 탄도미사일을 탑재하더라도 재래식 잠수함보다 전략적 가치가 더 크다. 국가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우리가 재빨리 핵무기를 개발해 2차 보복공격능력을 갖출 수 있다면, 그 잠재력만으로도 주변국의 도발을 크게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는 현재 NPT 체제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방위부담을 줄이려는 트럼프의 계산으로도 한국이 자주국방의 능력을 증진하는 것은 아주 괜찮은 거래일 것이다.
다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때문에 한국의 정치가 굉장히 불안해졌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미국이 과연 순순히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의문이다. 트럼프를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이번 친위 쿠데타 책임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새로운 국가리더십을 빨리 다시 세워야 한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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