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경고는 분명했다… "탄핵이든 하야든, 불확실성 즉시 제거하라"

강유빈 2024. 12. 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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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코스닥 연중 최저치 경신
환율은 2022년 10월 이후 최고
정부 불안 확산 차단 애쓰지만
대외 신인도 타격 우려 커져
"그냥 두면 국가 부도 사태까지..."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에 이어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까지 불발되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정치적 혼란 장기화로 우리나라 대외신인도가 타격을 입고, 주식시장과 원화 가치 추락도 가속화할 것이란 공포가 시장을 집어삼킨 분위기다. 최악의 사태로 치닫기 전 정국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게 시급하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67.58포인트(2.78%) 내린 2,360.58로 마감했다. 3일 밤 계엄선포 및 해제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해 종가 기준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다. 장중에는 2,360.18까지 떨어져 지난해 11월 3일(2,351.83)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스닥 지수낙폭은 더 컸다.전 거래일보다 34.32포인트(5.19%) 급락한 627.01에 장을 마치면서 2020년 4월 16일(623.43) 이후 4년 8개월 만의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계엄 사태 이후 나흘간 한국 증시에서 증발한 시총만 144조 원에 이른다.

그간 증시 하락 국면마다 저가 매수로 하단을 떠받쳤던 개인 투자자가 양 시장에서 대탈출하며 지수를 끌어내리는 데 앞장섰다. ‘패닉셀(공포 매도)’이다. 이날 개인은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서 8,896억 원, 코스닥 시장에서 3,020억 원씩 총 1조1,916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코스피에서 각각 1,011억 원과 6,919억 원, 코스닥에서 각각 2,049억 원과 1,002억 원 순매수했지만 하락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총 1,272개로 앞서 8월 5일 '블랙먼데이'(1,357개) 이후 가장 많았다.

원화 가치도 곤두박질쳤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 대비 17.8원 오른 1,437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25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지난 주말 윤 대통령 탄핵 불발로 짙어진 정국 불확실성이 위험 자산 회피 심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책이 표류할 것이란 우려도 투매 움직임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음 주까지 증시에 1,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불안 확산을 차단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회의) 참석자들은 주식시장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번 주 700억 원, 다음 주 300억 원 등 밸류업 펀드를 순차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3,000억 원 규모의 2차 펀드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증시안정펀드 등 다른 시장안정조치 또한 즉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고, 외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구조적 외환수급 개선 방안도 이달 중 발표하기로 했다.

다만 이는 단기 처방일 뿐, 근본적인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국 불확실성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우리나라 주식과 원화에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 하야든 탄핵이든 정치권이 빨리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며 “그냥 두면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국이 수습되지 않는다면 코스피 2,000선, 환율 1,500원 선도 보장할 수 없다”며 “대외신인도가 나빠지고, 이로 인해 시장은 더 악화하는 끝도 없는 블랙홀로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증권가에서도 연말까지 변동성 장세가 반복돼 주식·채권·외환의 ‘트리플 약세’의 추세적인 전환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 투자전략부는 탄핵 가결 후 헌법재판소 인용 및 조기 대선 국면 전환을 그나마 증시 친화적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이 경우 헌재 판결 전까지 불확실성이 반복되겠지만, 결국 정치 리스크 완화 수순에 진입하면서 이후 코스피가 2,400~2,700선까지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반해 현재처럼 여야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 저항이 확대될 경우엔 코스피 하향세도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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