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폐기후 금융시장 휘청…환율 1,440원 위협·주가 연저점(종합)
비트코인, 트럼프 규제 완화 기대에 1억4천만원 선 등락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이민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폐기 후 첫 거래일인 9일, 원/달러 환율이 장 중 1,440원대에 바짝 다가서고 코스피 지수가 2,360대로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이 국민의힘 의원들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주가가 연중 최저점까지 밀려났다.
환율 1,440원 육박, 2년여 만에 최고…"단기 상단 1,450원"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7.8원 뛴 1,437.0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6.8원 상승한 1,426.0원에 개장한 뒤 점차 상승 폭을 키워 오전 11시 41분께 1,438.3원까지 치솟았다.
윤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극도의 혼란이 빚어진 데 이어 대통령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자 금융시장은 최대 악재인 불확실성이 증폭됐다고 보고 있다.
야당은 가결될 때까지 매주 탄핵안을 상정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이번 주에도 탄핵안을 발의하고 14일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장기화 여부가 금융시장 변동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사태가 빠르게 수습될 기대가 낮아지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1,390∼1,450원에서 레벨을 높여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 연구원은 "정치적 리스크가 직접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고 환율에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 등 유동성 움직임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고착화한 현 상황에서는 이런 정치적 리스크가 더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정국 불안 장기화는 국내 증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재료"라며 "원화 위험자산 매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 연구원은 "이번 정치적 불안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악재라고 진단한다"며 "원/달러 환율 단기 상단을 1,450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당국 개입 경계감이 상승 폭을 제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유지하면서, 당국의 개입 의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 정치 리스크와 연동해서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있지만, 환율 방향을 바꿀 재료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연말·연초, 내년 1분기에 이런 상황이 지속하더라도 연간으로는 환율이 1,300원대 초중반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피·코스닥 연저점까지 밀려…개인이 1조원 넘게 투매
국내 증시에서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나란히 연저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67.58포인트(2.78%) 하락한 2,360.58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이날 35.79포인트(1.47%) 내린 2,392.37로 출발해 장중 2,360.18까지 내려 지난해 11월 3일(2,351.83) 이후 1년 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4.32포인트(5.19%) 하락한 627.01에 장을 마치며 4년 7개월여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탄핵 불발 이후 정국 불안정성이 오히려 강화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핵심 정책 실행 동력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개인투자자가 코스피에서 8천899억원, 코스닥에서 3천2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지난 6일까지 포함하면 이틀간 양대 국내 증시에서 개인 순매도액 규모는 무려 1조9천5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모두 매수 우위를 보이며 각각 3천91억원, 7천922억원 순매수했다.
이날 장 마감 시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2천246조1천769억원으로 계엄선포 이튿날인 4일 이후 144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업종별로 보면 철강 및 금속(-10.02%), 건설업(-5.64%), 화학(-4.98%), 전기전자(-1.30%) 등 대다수 업종이 내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총 1천272개로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1천357개) 이후 가장 많았다.
당국 '시장 안정' 주력…한국 경제 하방 위험 경고 잇따라
금융당국이 지난주 계엄 사태 이후 시장 안정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지만, 국내외 투자 심리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하면 신인도에도 악영향이 미친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한국 경제 하방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앞선 두 사례에서 한국 경제는 2004년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다"며 "반대로 2025년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도 전날 보고서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더 불안정한 위기를 막더라도 "정치적 마비는 이미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 역시 지난 5일 보고서에서 내년 1분기 한국을 방문할 중국인 관광객이 83만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도 장 시작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석한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일명 'F4' 회의)를 열고 "증시 안정 펀드 등 기타 시장안정 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과 관련해선 밸류업 펀드 중 300억원이 이미 투입됐고, 이번 주 700억원·다음 주 300억원이 순차 집행될 예정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다음 주에는 3천억원 규모의 2차 펀드가 추가 조성된다.
또한 외화자금시장에는 필요시 외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을 통해 외화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외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구조적 외환 수급 개선방안도 이달 중 발표하기로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 회장을 불러 금융 상황 점검 회의를 하고 금융 자회사들의 유동성과 건전성을 면밀히 점검하는 동시에 기업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친 가상자산 대통령' 트럼프 덕에 가상자산 나 홀로 강세…비트코인 ETF에 100억불 자금 유입
가상자산은 국내 주식, 원화와는 달리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가상자산 육성 공약에 가격 상승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영향이다.
1비트코인 가격은 지난주 국내 원화 거래소에서 사상 처음으로 1억4천만원을 넘어섰고 지금도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인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이날 오후 5시 4분 기준 1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0.82% 하락한 1억3천984만4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미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 이후, 100억달러 가까이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12개 펀드 발행사의 비트코인 직접 투자 ETF에는 미국 대선일인 지난달 5일 이후 99억 달러가 순유입됐다. 현재 이 펀드들의 총자산은 약 1천130억 달러다.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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