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만에 무너진 50년정권…시리아 무능정치와 '전쟁 나비효과'

이지현 기자 2024. 12. 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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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반군으로부터 축출된 뒤 해외로 도피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러시아에 망명했다. 중동 인근에서 발생한 2개의 전쟁은 약 13년간 이어져 온 시리아 내전이 사실상 막 내리는 데 영향 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번 일로 향후 시리아 통치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중동 내 새로운 군사 충돌 우려가 제기된다.

[이스탄불=AP/뉴시스] 8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시리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축하하고 있다. 2024.12.09.

8일(현지시간) 타스통신, 리아노보스티 등 러시아 매체들은 크렘린궁 관계자를 인용해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해 정치적 망명을 허가받았다"고 보도했다. 두 매체에 따르면 익명의 크렘린궁 관계자는 "러시아는 항상 시리아 위기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해왔다"며 "유엔(UN·국제연합) 중재 회담이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시리아 반군 세력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고위 사령관 하산 압둘 가니는 전날 모바일메신저 왓츠앱을 통해 "우리는 다마스쿠스시(시리아 수도)가 독재가 아사드로부터 해방됐다고 선언한다"며 "전 세계 난민들에게 자유로운 시리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반군의 승리 선언과 아사드 대통령의 망명으로 약 50년간 이어진 아사드 가문의 독재는 마침표를 찍게 됐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도 13년 만에 끝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만에 50년 넘게 이어져 온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70년대 초반부터 아사드 정권이 철권 통치를 해온 시리아 역사에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라고 짚었다.

"시리아, 우크라전서 패배한 러시아 사령관들 망명지"…아사드 정권 몰락 이유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알 아사드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정권이 붕괴된 뒤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4.12.09 /AFPBBNews=뉴스1
외신들은 아사드 정권의 빠른 몰락이 시리아 경제가 파탄에 빠지면서 어려움에 처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크게 떨어졌고, 대다수 군인은 그를 위해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군인과 경찰들은 초소를 버리고 무기를 넘겨준 뒤 반군의 진격을 피해 달아났다"고 전했다.

군사적으로도 아사드 정권이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수년간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혼란에 빠지고, 중동에서 지난해 이스라엘이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를 비롯해 이란 및 그 동맹 세력과 충돌하면서 시리아 정부도 이에 따른 악영향을 받았다.

NY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시리아는 크렘린궁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곤두박질쳤다"며 "시리아 내 러시아 기지는 우크라이나에서 패배한 사령관들이 보내지는 곳이자 우크라이나의 참호를 피하려는 병사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 전문가는 NYT에 "시리아는 우크라이나 전장과 대비해 러시아 군인들의 휴양지로 변했다"며 "성적이 저조한 장군들에게 시리아에서의 복무는 일종의 망명이었다"고 말했다.

반군, 수개월 전부터 공격 준비해온 듯…"튀르키예에 계획 전달, 암묵적 승인받아"
시리아 반군의 점령지역 변화/그래픽=김현정
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반군의 거센 공격은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돼 빠르게 진행됐다. 당시 반정부 연합 세력은 시리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알레포' 인근에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고 사흘 뒤 알레포를 점령했다. 이후에도 반군은 빠르게 주요 도시들을 점령해 나갔고, 정부군을 지원해온 이란과 러시아마저 지난 7일 시리아 내 자국민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반군은 수개월 전부터 이같은 공격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9일 로이터통신은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시리아 반군은 약 6개월 전 튀르키예에 대대적인 공세 계획을 전달하고, 튀르키예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았다고 여긴 뒤 아사드 정권을 장악할 기회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다만 튀르키예의 한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HTS는 우리로부터 명령이나 지시받지 않으며, 우리와 작전을 조율하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당초 시리아 정부군과 대립해온 미국은 반군의 승리 선언 직후 시리아 중부에 있는 이슬람국가(IS) 기지를 공습했다. 혼란을 틈 타 IS 세력이 커지는 걸 막겠다는 취지였다. 중동 내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중부사령부는 이날 "B-52, F-15, A-10 등 공군 자산 여럿을 동원해 75개 이상 표적을 공격했다"며 "대통령의 승인에 따라 우리는 IS 전사와 지도자들이 대거 모이는 곳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시리아는 위험과 불확실성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며 시리아 문제에 계속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과도기 동안 시리아에서 어떤 위협이 닥쳐올 경우 미국은 이 지역을 지원할 것"이라며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시리아의 전환을 위해 모든 시리아 그룹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러시아가 아사드를 포기한 것이 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며 "그의 보호자, 러시아는 더 아사드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시리아에 대한 모든 관심을 잃었다. 결코 시작돼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중동 위기 불러올까…대내외 리스크 여전
시리아 반군이 7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시리아 국민들이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드 광장에서 반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 2024.12.8. /AFPBBNews=뉴스1
시리아 내부에서는 아사드 정권 붕괴에 환호하는 분위기와 함께 향후 권력 공백 가능성 등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WSJ은 "시리아의 주변국들은 더 깊은 무질서가 자국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사태 전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정권 승계를 계획하지 않은 채 정권이 급속히 붕괴할 경우 주변국으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중동 지역의 새로운 군사 충돌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스라엘군(IDF)은 이날 "이스라엘 국경 인근의 불안정이 급증할 것을 우려한다"며 골란고원 점령지의 비무장 완충지대에 진입했다. 이라크 역시 시리아와의 국경 검문소를 폐쇄하고 통제를 시작했다. 골란고원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시리아 영토였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이후 1974년 양국 휴전 협정에 따라 골란고원에 군사 완충지대가 설정됐고, 유엔휴전감시군(UNDOF)이 이 지역에 주둔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주유엔 대사를 통해 9일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회의를 개최를 요청했다. 폴리안스키 대사는 텔레그램에 올린 게시글에서 "골란고원에 위치한 UNDOF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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