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 출신 학살자…결국 야반도주한 '중동의 불사조' 아사드
자국민에 화학무기까지 쓴 국제범죄자 대명사
갖은 위기 넘겨오다 반군에 몰려 푸틴 품에 망명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중동의 불사조'로 불리는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59)의 몰락으로 54년간 이어진 아사드 정권의 집권이 막을 내렸다.
아사드 대통령은 30년간 집권한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시리아를 철권 통치하며 민간인들을 탄압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처음부터 부친의 후계자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1965년 다마스쿠스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아사드는 부친이 권좌에 올랐을 때 불과 5세였다.
일찍부터 군대와 정치에 관심을 보인 형제·자매들과 달리 과학과 의학에 관심이 많은, 온순한 아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이자 장남인 바셀 알아사드가 부친의 후계자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청년이 된 아사드는 권력에서 멀어져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안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곳에서 나중 아내가 되는 아스마 아크라스를 만났다.
그러던 그에게 1994년 운명을 바꾼 사건이 발생한다.
후계자였던 형 바셀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에 아사드는 시리아로 돌아왔고 29세의 나이에 형 대신 후계자가 됐다.
형의 장례식에서 아사드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랑하는 형, 나는 형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고 뭐라고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라는 추도사를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중동 특별조정관 등을 지낸 미국 외교관 데니스 로스는 "그는 항상 아버지의 기대에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따라서 어느 정도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부친인 하페즈 전 대통령이 2000년 사망하자 시리아 의회는 40세 미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이후 아사드는 단독 후보로 선거에 출마해 무려 99.74%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였다.
영어와 프랑스어, 컴퓨터에 능숙했던 그는 취임 초기 현대적 지도자를 표방하며 강압 통치를 버리고 정치활동 규제를 풀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강화했다.
임기 초반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개혁가로 생각됐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이 일어나며 저항 세력이 봉기하자 그는 민간인을 유혈진압 하는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3월 초 시리아 남서부 다라의 학생 15명이 담벼락에 아사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이에 분노한 민중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 여러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아사드 정권의 군대는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후 시위가 무장 반란으로 커지자 아사드 정권은 염소·사린 가스 등을 살포하고 반대파 활동가들을 납치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러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프랑스 법원은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 무기를 사용한 혐의로 아사드 대통령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내전 발발 2년 만에 무장 반군이 북부 시리아 등 일부 지역을 장악하자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아 군사 작전을 벌인 끝에 국토의 3분의 2를 되찾는 등 시리아 내전은 13년간 이어졌다.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의 합동 공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2020년까지 내전으로 시리아인 수십만명이 사망했고 1천200만명이 집을 잃었다.
내전은 계속됐지만 아사드는 건재했다. 지난해에는 아랍연맹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 외교 무대에 복귀했으며 같은 해 중국 시진핑 주석과도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북서부에서 세력을 키운 반군이 공세를 시작하자 정권은 열흘 만에 무너졌고 아사드는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기 직전 피신해 자신의 최대 우군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통치하는 러시아로 망명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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