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하나만 놓으면 '규제 면피': 우리가 모르는 무인가게 꼼수들

이혁기 기자 2024. 12. 9. 10:1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무인매장 불법과 꼼수➋
위생 부적절한 매장 속출
법망 피하려는 매장도 수두룩
라면가게에 놓인 가위의 함의
손님이 손질하면 음식점 아냐
정부 잡아내기 힘든 게 현실
소비자 피해 막을 대책 필요해
무인 라면가게에 왜 토핑용 가위가 놓여 있을까. 그 이유는 꽤나 석연찮다.[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 무인매장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넘어 라면가게, 반려용품 판매점, 사진관 등 다양한 콘셉트의 무인매장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흐름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인매장이 늘어날수록 그 속에 숨어 있던 문제점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식품을 팔거나 성분을 다르게 기재하는 등의 문제입니다.

# 석연치 않은 점도 있습니다. 사실상 요식업을 운영하는 무인매장 중 상당수가 '자유업종'이란 겁니다. 무인 라면가게가 대표적입니다. 조리식품인 라면에 여러 토핑을 판매하는 무인매장의 일부는 요식업종이 아닌 자유업종입니다. 매장 안에 '토핑용 가위'를 놔두는 방식으로 허가 절차가 깐깐한 요식업종을 피한 결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무인매장 불법과 꼼수' 2편입니다.

우리는 '무인매장 불법과 꼼수' 1편에서 무인매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무인매장은 가격이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아 지역 주민들의 '아지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만, 무인매장 중엔 절도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한 곳들도 숱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3515건이었던 무인매장 절도 건수는 2년 만인 2023년 1만847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절도뿐만이 아닙니다. 손님들이 무인매장에 놓인 일회용품을 남용하는 것도 무인매장 점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벽에 경고성 문구를 큼지막하게 붙여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직원이 없다 보니 소비자가 도를 넘는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막기가 쉽지 않습니다.

■ 문제➌ 매장 위생 = 물론 무인매장을 둘러싼 문제들의 원인이 소비자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무인매장도 수두룩합니다. 대표 분야가 '위생'입니다. 식품안전정보원이 발표한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무인매장 관련 부정·불량식품 소비자신고 건수는 2020년 9건에서 지난해 171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신고 내용으론 '소비기한 경과'가 가장 많았고, 이물질 발견, 제품 변질, 위생 점검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식품정보원은 보고서에서 "비대면 소비환경이 확대하면서 무인매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그러면서 매장에서 취급하는 식품의 종류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제품을 판매하는 무인매장은 그나마 낫습니다. 문제는 '무인 라면가게'처럼 유통기한이 짧은 냉장식품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기자가 방문한 한 무인 라면가게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곳에선 손님이 직접 물을 부어 라면을 끓여 먹는데, 토핑처럼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어묵·소시지·치즈 등 냉장식품을 곁들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토핑들을 언제 쌓아놨는지, 이들 제품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개중엔 말라비틀어진 어묵, 푸석푸석해진 소시지 등 한눈에 봐도 보관기간이 꽤 지난 듯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영양성분 표시가 실제와 다른데도 버젓이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8월 무인매장 29곳에서 판매하는 35개 식품의 안전성과 표시사항 등을 조사한 결과, 나트륨 함량을 축소한 제품이 4개, 소비기한·내용량·알레르기 유발 물질 등을 기재하지 않거나 잘못 표시한 제품이 6개였습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무인매장에서 식품의 유통기한이나 영양성분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잘못 표기돼 있다면 사실상 소비자가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매장 점주가 철저히 검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➍ 꼼수들 = 무인매장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꼼수를 써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매장도 적지 않으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기자가 방문한 또다른 무인 라면 매장은 숙주나물이나 청경채·콩나물 등의 토핑을 손질하지 않은 채 냉장칸에 진열해 놨습니다. 그 앞엔 가위가 놓여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 토핑을 직접 손질해서 먹으란 의도인 듯했습니다.

언뜻 보면 소비자를 배려한 서비스인 것 같지만, 여기엔 교묘한 꼼수가 숨어 있습니다. 이 무인매장은 '휴게음식점영업'으로 분류되는 걸 피하기 위해 가위를 가져다 놓은 겁니다.

무인 라면가게는 갖가지 냉장식품도 판매한다. 무인 라면가게가 위생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다.[사진 | 더스쿠프 포토]

휴게음식점영업은 다류茶類(일종의 마시는 차)·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패스트푸드점이나 분식점처럼 음식류를 조리·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손질하면 휴게음식점영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제 가위를 매장에 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손질하지 않은 토핑들을 손님이 직접 가위로 가공하면 이 매장은 휴게음식점영업에서 빠집니다. 그럼 어떤 업종이 되냐고요? 슈퍼나 편의점·문구점 같은 '자유업종'이 됩니다.

무인매장들이 기를 쓰고 '자유업종 타이틀'을 얻으려는 이유는 별게 아닙니다. 자유업종으로 분류되면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 사업자등록만 하면 영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점이나 주점 등에 적용하는 정부의 깐깐한 심사를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소속 관청에서 진행하는 위생검사나 관련 규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손님이 신고하거나 지자체가 직접 점검해 확인하는 것만이 현재로선 최선입니다.

이런 이유로 무인매장 중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곳들이 수두룩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는 '식품안전나라'에서 상호명을 검색해도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 무인매장이 태반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무인매장 통계가 현실과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정부는 무인매장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힘을 쓰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2021년부터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식품 품목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위생·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마라탕·양꼬치·샐러드 등 배달 음식점을 집중 점검했는데, 올해부턴 무인카페와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과 같은 무인매장도 단속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지난 5월엔 식품을 판매하는 무인매장의 위생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업체 자율관리 지침서'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엔 냉동·냉장식품 보관온도 준수, 소비기한 경과 제품 진열·판매 금지, 일일 위생관리 점검표 작성, 조리시설·기계 주기적으로 세척 등 위생 관리 지침을 상세하게 기록해 놨습니다.

[사진 | 뉴시스]

다만, 영업 신고조차 하지 않는 무인매장들이 이 지침을 얼마나 잘 따를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적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무인매장의 문제를 해결할 방침을 세우는 게 더 시급하단 겁니다.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는 "정부에서 당장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면 지자체가 나서서 무인매장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거나 규제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인매장이 급증하는 만큼 늘어나는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역주민의 핫플로 떠오른 무인매장의 뒤편엔 '불편한 그림자'도 깔리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무인매장을 '법적 사각지대'에 뒀다간 크고 작은 피해를 겪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정부와 지자체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현명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