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안정 총력”에도…외국인투자 빠지고 통상외교 ‘비상등’
한국 경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초유의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12·3 내란사태’ 책임이 있는 정부의 버티기와 정치적 불확실성 극대화로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며 경제가 그 후폭풍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제 기반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등 대외 악재가 동시다발로 덮치며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국내 증시와 원화 약세, 외국인 투자금 이탈은 정국·경제 불안의 신호탄이다. 당장 정부 정책이 추진 동력을 잃고 대외 개방 경제의 핵심인 경제 외교도 ‘올 스톱’ 될 처지다.
8일 관가에 따르면, 내년 1월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한-미 간 정상급 회담은 장기간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우리 정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 피의자로 전락한데다, 탄핵 절차마저 더뎌지면서 트럼프와 대화할 헌법적 맞상대도 찾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국무총리나 경제부총리 등 한 단계 격이 낮은 인사를 대상으로 회담할 가능성도 낮다. 한 수출 대기업 임원은 “지금처럼 통상이 중요한 시기에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상대)조차 공백 상태이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에 대응할 국제 공조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달 초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방한이 비상계엄 여파로 갑자기 연기된 데 이어, 이달 차기 집행부가 본격 출범하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동남아 등을 방문해 무역·통상 현안을 논의하려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해외 출장 일정도 보류됐다. 외교정책 사정을 잘 아는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관세 정책에 맞서 다른 나라와 공동 대응을 해야 하지만, 외국 실무진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부와 협상하겠다고 나서긴 쉽지 않다”며 “탄핵 정국 해소 전까진 정상적인 대외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외환시장 불안과 내수 침체 등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의 위기관리도 녹록지 않다. 이미 훼손된 대내외 신뢰와 정치 정상화 지연 등으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국정 현안 대처는 물론, 투자·소비 심리 회복 여부 등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당장 내년도 사업 계획을 짜는 데 트럼프 등 대외 변수와 국내 불안 등을 고려해 매출 목표 등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내란 사태 직후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경고하며 국내 증시 투자에 부정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경제부총리인 제가 중심이 돼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외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도 지난 3일 비상계엄 심의를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만큼 내란 사태 관련 수사 대상자로 수사당국이 분류할 공산이 높다.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지위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미국 포브스는 6일(현지시각) “엉터리 계엄령이 한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는 최 부총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면서도 “진짜 문제는 앞으로의 몇년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사회에선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 장기화되면 한국의 정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이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는 신뢰를 국민들과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오 남지현 최하얀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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