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배터리 약점은 中공급망 의존…韓 해법 부각시켜 기회 잡아야"

김은경 2024. 12. 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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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혹한기 배터리 업계, ‘트럼프 리스크’ 덮쳐
보편관세 10~20% 부과 시 소재 업체 타격
“소부장 업체 보편관세 예외적용 협상해야”
전기차 보조금·IRA 완전 폐지 가능성 낮아
‘中 배터리 굴기 저지’…美 견제 활용 필요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올해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 가혹한 한 해였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던 배터리 업체들 성장세는 하반기를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전방수요가 얼어붙고 중국과의 가격 경쟁 심화가 더해지며 국내 1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불과 1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월 1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 위치한 우주 발사시설 ‘스타베이스’에서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 우주선 스타십의 여섯 번째 지구궤도 시험비행을 빨간색 ‘MAGA 모자’를 쓰고 지켜보고 있다.(사진=로이터/뉴스1)
K배터리 美 진출로 소재 업체 수출 규모 커져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바라보고 조(兆)단위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어 미국 시장 의존도가 커진 우리 기업에 ‘트럼프 2기’ 출범은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 정책인 IRA 폐지를 강하게 주장해 왔다. 이에 따른 위기감도 크지만, 자칫 우리의 배터리 공급망 안보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단 점이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때 10~20%의 예외 없는 보편 관세 부과를 공약했다.

이 공약이 현실화하면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 배터리 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006400)·SK온 등 배터리 국내 셀 제조사들의 미국 투자가 늘면서 양극재·장비 등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대미 수출도 크게 늘어난 상태다. 포스코퓨처엠(003670)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체 수출 금액은 2022년 1조8492억원에서 지난해 3조3345억원으로 80.3% 증가했다. 반면 내수는 같은 기간 1조4527억원에서 1조4253억원으로 1.9% 감소했다.

에코프로비엠(247540)의 경우 수출 금액이 2022년 4조177억원에서 지난해 6조60억원으로 49.5% 뛰었다. 내수는 1조3399억원에서 8949억원으로 33.2% 축소했다. 엘앤에프(066970)는 수출과 내수 모두 증가하긴 했으나 수출이 2022년 3조8730억원에서 지난해 4조5607억원으로 6877억원 증가하는 동안 내수는 142억원에서 834억원으로 692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들 제품은 모두 현지 공장의 배터리 완제품 생산을 위해 공급된다. 이들 소부장 제품에 보편 관세가 적용되면 미국 현지 배터리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제3국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와 경쟁할 때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소부장 제품에 대해 보편관세를 예외 적용해 줄 것을 미국 정부와 적극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 공장 조감도.(사진=LG에너지솔루션)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IRA 폐지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법안이 폐기되기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는데, IRA에 의한 투자와 일자리가 공화당 우위 지역에 집중돼 있어 이들 지역 의원들이 법안 폐지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 투자와 일자리 효과가 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AMPC)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화당이 상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IRA 폐지를 밀어붙일 만큼 충분한 의석 확보는 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하원의 경우 4~5명의 공화당 의원이 이탈만 해도 과반 의석이 되지 않아 IRA 폐지가 어렵게 된다.

이런 배경으로 트럼프 정권 인수위는 ‘IRA 완전 폐지’ 보다는 7500달러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없애는 부분 폐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내년 말까지 IRA 법률 폐지를 기다리기보다는 대통령 행정명령, 행정부 행정지침 등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 폐지와 IRA 전기차 지원 프로그램 축소 또는 무력화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투자·일자리 창출 ‘미국 우선 정책’ 부합 강조해야

이에 업계에선 우리 배터리 기업들이 IRA 보조금 의존도를 줄이고 트럼프 2기 ‘대중국 견제’에서 기회 요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대(對)중국 제품에 대한 60%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 공약이 실행되면 BYD 등 중국산 전기차의 미국 진출은 원천 봉쇄될 전망이다. 반대로 미국에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우리 배터리 기업은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최근 유럽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인 스웨덴 노스볼트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한중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박 부회장은 “미국은 배터리 제조 기술 역량이 없어 그간 중국 공급망에 의존해 왔다”며 “우리 배터리 산업이 미국에는 없는 첨단 제조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한국이 미국의 약점을 해소하는 해법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는 트럼프가 강조해 온 ‘제조업 부흥’과 미국 우선 정책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배터리 3사는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한 러스트벨트, 선벨트 지역의 7개 주에 500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안보 협력’ 측면의 접근도 가능하다. 미국 국방수권법은 2027년부터 중국산 배터리 조달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자국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와 낙후 지역 에너지 공급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국산 배터리를 배제할 경우 대안 국가는 사실상 우방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박 부회장은 “한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공급망 안정이라는 핵심 자산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미국 내에 ‘첨단 배터리 제조 기지’를 세워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굴기 차단하기 위한 ‘한미 배터리 협력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은경 (abcd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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