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연설 뒤 ‘작별하지 않는다’가 낭독된 까닭

임인택 기자 2024. 12.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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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한강 노벨상 연설의 의미</span>
‘빛과 실’ 제목 연설…두 배우 낭독
‘질문과 고통의 연결’ 정점인데다
영어권 앞서 스웨덴 번역 ‘각별’
7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한림원 그랜드홀에서 ‘노벨상 연설’을 하는 한강 작가. 노벨상 공식 유튜브 갈무리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타전된 작가 한강(54)의 30여분 ‘노벨상 연설’을 한마디로 추리자면 질문에서 질문으로 고통스레 이어지는 30년 작품 세계다. 전 작품이 ‘연작’인 양, 그 질문은 절망, 염세, 죽음으로부터 서서히 “응시하고 저항하며” 비관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 세계로 물어 나아가려는 작가 스스로의 구도와도 같다 하겠다.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만 여덟에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던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조차 한림원 연단에서 그가 처음 대중에 공개한 1979년 ‘시집’의 시 한 꼭지로 확연해졌다.

연설을 통해 한강이 언급한 작품은 모두 6종이다. 설명대로라면 ‘채식주의자’(2007),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이 절망에서 ‘절망하지 않음’으로 나아가는 문학적 증거다. 가해든 피해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견딜 수 있는가, 하여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질문이 질문을 파헤친다. ‘희랍어 시간’에선, 충격으로 말할 수 없게 된 여성과 독일 가족에게서 떨어져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 강사 사이 긴장이 교감으로 발전한다. 막상은 둘의 상처가 달라 사랑도 어긋날 듯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억지로 고기를 퍼먹이려는 월남전 유공자 아버지나 그를 보며 “뭉클한 부정( 父情)” 을 느낀다는 남편은 물론 어떤 누구로부터도 오롯이 감응받지 못하는 김영혜의 세계(‘채식주의자’)와 사뭇 다르다. 6일 스톡홀름 현지 기자회견에서 제 설명과 통역 사이 어감 차가 발생하자 통역가에게 “괜찮다, 당신은 낙관적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웃었던 한강의 ‘섬세한 낙관’,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답하는 세계관의 전개라고도 하겠다.

다른 2종이 한림원에 의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관한 “증언문학”으로 평가받은 5·18 광주 배경의 ‘소년이 온다’(2014)와 4·3 제주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고통을 고백해온 독자들이 던져준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란 질문이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 결과물이다.

7일 오후 스웨덴 한림원 그랜드홀에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구절을 스웨덴·영국에서 활동하는 배우 조 라이드아웃(Jo rideout)이 영어 낭독하고 있다. 왼쪽 객석에서 한강 작가가 경청하고 있다. 노벨상 공식 유튜브 갈무리

이는 정확히 ‘작별하지 않는다’에 수렴 재현된다. 작중 경하는 5·18 소설을 쓰면서 악몽을 꾼다. 그러나 출간 뒤에도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는 것과 작별하려 했기 때문이다. 경하의 말마따나 “언젠가 고통을 손쉽게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바랐기 때문이다. 그 경하가 친구 인선의 요청으로 제주 중산간 빈집에 홀로 남겨진 새(‘아마’)를 돌보러 눈보라를 헤쳐 간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이가 죽은 인선의 엄마다. 4·3 때 살아남았던 강정심. 5·18과 4·3이 연결되고, 사랑이 고통으로 이어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시적 서사가 가능해진다.

한강의 연설 뒤 한림원이 마련한 스웨덴어·영어 낭독 작품이 바로 ‘작별하지 않는다’인 이유이겠다. 더불어 각별한 작품이다. 올해 초, 영어권보다 앞서 스웨덴에 번역 소개된 작품으로 노벨상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얘기된다. 두 여성 배우가 두 대목을 읽었다. 작중 경하가 2012년 소설 자료 조사를 하면서부터 악몽을 꾸고 급기야 불면하던 새벽 거리에서 (죽은) 시민군(과 같은 사내들)을 다시 보는 대목, 결국 죽어버린 새 아마가 다시 살아나 경하로부터 보살핌받는 대목.

한강에게 목도된 “작별하지 않은 상태”의 실체다. 그 모든 질문의 시작은 여덟 살 소녀의 시에 담긴 “사랑은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 즉 ‘사랑의 궁구’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2025년 예고된 노벨문학상 이후 첫 작품도, ‘흰’(2016)의 형식을 잇는다는 이후 작품도 그 질문으로 독자와 연결될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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