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최우선이다. '이재명'도 '한동훈'도 모두 정신차리라
정기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결국 무산됐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의 거듭된 호소에도 본회의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투표자는 총 195명에 그쳐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정족수(200명)에 미치지 못했고, 국회의장은 하릴없이 투표불성립을 선언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양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응당 탄핵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했다. 이번 12.3 사태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국정농단 사태와도 질적으로 다르다. 헌법에 의해 부여된 대통령의 권한을 자격 없는 민간인에게 맡겨 국정을 농단한 것이 2016년의 상황이라면, 이번에는 대통령이 스스로 '헌정 중단'을 자행했다.
그간 보수진영 등 대통령 탄핵 반대파는 대통령이 탄핵되면 헌정이 중단된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탄핵은 그 요건과 절차가 엄연히 헌법에 규정돼 있다. 탄핵소추나 헌재의 탄핵재판은 모두 헌법에 근거를 둔 행위다.
반면 12.3 비상계엄은 헌법 77조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계엄 선포 요건을 어겼고,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어겼으며, 계엄법에 따른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침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동법에 따른 국회 의결을 방해하려 한 것은 국회의사당에서 실제로 나타난 사태와 여러 군 지휘관 등의 증언 등으로 확인됐다. 이것이야말로 '헌정 중단'을 꾀한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이전 2번의 대통령 탄핵심판, 즉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의 헌법재판을 통해 확립한 판례를 보면, 탄핵의 필요조건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헌법 65조)이지만, 실제로 탄핵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그 위헌·위법성이 중대해서 파면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보다 이익이 커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그 요건에 의심 없이 부합되는 때이다.
역설적으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가장 먼저, 가장 정확히 지적했듯이 이번 계엄선포는 "위헌·위법"하고 "반헌법적"이었다. 즉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했고, 여당 대표조차 "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SNS를 통해 다급히 호소할 정도로 그 위반으로 인한 중대성이 컸다. 또한 역시 한 대표의 말처럼 "'혹시 이런 일이 또 있을지 모른다, 또 이런 일이 준비될 수 있다'는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드려야" 하고, "위헌 위법한 계엄에 관여하면 즉시 처벌된다는 것을 보여"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 크다.
그런데 우리 국회와 정치권은 과연 탄핵을 최우선으로 추진했는가? 여당은 물론 명백히 아니었다. 그들은 이 와중에 '다음 대통령 이재명 되면 안 된다'는 말이나 하고 있었다. 다음 대통령이 그들의 걱정대로 사기꾼이 되든 나라 망칠 포퓰리스트가 되든, 헌정을 중단시키는 비정상적 행동을 한 대통령을 단죄해 일벌백계하는 일보다 아직 선거가 공고되지도 않은 차기 대통령의 자격을 따지는 일이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2차 계엄은 없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사람의 말을 대체 뭘 보고,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계엄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사퇴한 전 국방장관 김용현은 불과 3개월 전 장관 인사청문회 때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느냐", "군도 안 따를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제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절대로' 없다.
만약 실제로 2차 계엄이 현실화된다면 12.7 탄핵소추안 표결을 부결시킨 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또 다행히 2차 계엄이 없더라도, 12.3 사태에 분노한 민심은 국민의힘을 향할 것이고 대가 추궁은 무섭고도 집요할 것이다. '국민 눈높이'를 중시한다는 말은 구두선에 그칠 것이고, 한동훈 대표는 유권자의 분노와 부활한 윤석열 대통령의 보복을 2중으로 염려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계엄 대통령'과 한 배를 탄 정치인에게는 정치적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야당은? 탄핵을 소리높여 외치고는 있으나, 과연 효율적인 방법으로 탄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 12.7 탄핵소추안 본회의 불발이라는 결과를 놓고 보면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12.3 사태와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의힘의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야당이 그것을 들추어내서 유권자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우선할 것인지, 그 과업은 언론과 시민사회에 맡겨두고 일단 이들을 어르고 달래서라도 탄핵 가결을 우선해야 했는지는 과연 판단해 볼 문제다.
특히 여당과 보수진영이 '이재명 대통령이 싫어서 탄핵은 안 된다'고 한다면, 법원에 의해 '사법 리스크'의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거나 또는 여당 지지층이 참여하는 결선투표제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겠다고 과감히 역제안을 한다든지, 차기 대통령 임기를 현 대통령 잔여임기 또는 2026년 6월까지로 하고 이후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는 큰 그림을 제시하는 등 창조적인 정치적 해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여야 거국일치 내각에서 더 나아가 임기 1~2년짜리 '거국 대통령'을 임시로 세울 수도 있고, 이 대표 본인 또는 민주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 푸틴 총리처럼 실권을 쥔 총리가 되어 사실상의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자기 희생에 가까운 결단을 누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외계인 침공 수준의 음모론으로 치부했던 탄핵 음모설은 적중했고,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이이자 현 집권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현 집권세력의 비위를 가장 매섭게 단죄할 이는 현 상황에서 분명 이재명 대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 탄핵은 헌법상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의 찬성'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일에는 선후와 경중이 있고, 현시점에서 가장 중대하고 우선시돼야 하는 일은 탄핵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지적했듯 헌정 중단 시도의 "재발 위험"을 막고, 어떤 대통령이든 헌법을 무시하고 계엄을 시도했다가는 바로 탄핵당한다는 엄중한 교훈을 전례로 남기는 일이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마당에 국민의힘을 자극하고 역으로 단결시킬 국무위원·여당지도부 내란죄 동조범 주장이나 감사원장·검사 탄핵 등이 꼭 필요했는지 아쉬움이 크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내란죄 적용, 당연히 검토해야 한다. 내란 동조자도 당연히 샅샅이 파헤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건희 특검, 당연히 임명해서 진상규명 해야 하고, 감사원장·검사 탄핵도 필요하면 국회에 주어진 권능으로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대통령 탄핵이 먼저다. 일점에 집중해서 가장 시급한 일부터 해결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때다.
이재명 대표는 7일 내외신 간담회에서 '이탈표를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고, 소통과 협력, 대화, 이런 것들은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압박 부분만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답변했다. 말뿐만이 아니길 바란다. 본회의장에서 "을사오적"이니 "망국적"(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7일 본회의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서)이니 거친 말로 압박만 한다고 여당에서 이탈표 8표가 갑자기 나오겠는가.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력이나 추진력, 계엄 사태마저 예견해낸 정치적 안목은 이제 검증됐다. 유권자가 바라는 리더의 자질 중 그의 약점으로 꼽히는 대목이 있다면 대의나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고 희생하는 모습, 청탁을 병탄하는 배포와 대범함, 투쟁적 야당 지도자가 아닌 사회 전체를 대표해낼 수 있는 국가적 지도자로서의 모습, 정파적 강경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정치적 타협을 끌어내 실질적 성과를 만들 수 있는 노련함과 성숙함일 것이다. 전략적 협상능력이든 자기희생적 결단이든 그 무엇을 통해서건 탄핵소추안 가결만 이끌어낸다면, 다음 대선이 언제 어떻게 치러지든 그는 이미 국민의 마음 속 대통령으로 여겨질 것이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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